주의 : 대학원에서 배우는 여러 용어나 인물, 논리들이 나옵니다
이 글은 심각한 졸음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밤에 졸리실 때 읽으면 꿀잠이 가능합니다.
당신은 누구인데 이런 헛소리를 씁니까?라면 저는 '역사는 무엇입니까?'에 대해 가르치는 직업을 가졌습니다.
잊을만 하면 나오는 떡밥 중 하나는 '호드=전범' '호드 옹호=나치 옹호'입니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특히나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적 비극을 경험한 한국인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반면 문학이나 가상의 상황에 엄격한 도덕률을 들이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집단도 있습니다. 중세라는 시대상을 고려했을 때 전쟁범죄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반박하는 이도 있고, 또는 허구의 세계에서 지나치게 정의만을 바라본다는 스토리의 진행이 단순하게 흘러갈 것임을 우려하기도 합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개개인의 생각은 누구나 다를 수 있스니까요. 학술적으로 이러한 개개인의 생각을 '역사관' 이라 부르고 이는 '역사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역사관'을 자신의 '관점'이라고, '역사의식'은 '역사관의 근본이 되는 자아개념, 존재의식'이라고 개념을 정의내립니다.
좀 어려운 내용이니 쉽게 말하자면, 역사의식은 각 시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서 나타나는 날카로운 비판의식입니다. 또한 여러 단계로 나뉘죠.
뤼젠이라는 저명한 역사학자가 사용하는 예시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각색이 아니라 진짜로 논문에 실린 비유임
'고대의 호드 부족은 얼라이언스 부족에게 커다란 신세를 졌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얼라이언스의 후손이 도움을 청한다면 그가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숨겨주겠다는 약속이 기록으로 내려어고 있습니다. 만약 오늘 얼라이언스의 후손이 범죄를 저지르고 도움을 청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뤼젠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크게 4종류로 구분되며, 이는 각각의 역사의식 단계가 반영된 결과라고 보았습니다.
전통적 유형의 사람들은 '과거의 신세를 갚는다'라면서 얼라이언스를 도와야 한다고 봅니다.
전형적 유형의 사람들은 '약속은 지켜져야만 한다'면서 얼라이언스를 도와야 한다고 보고,
비판적 유형의 사람들은 '과거에 약속했을지라도 시대가 바뀌며 사회체제와 법질서도 역시 바뀌었으니 범죄자를 도울 수 없다고.
발생적 유형의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는 다를지라도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도와야 한다' 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변호사를 구해 준다던지 하는 방식으로요.
뤼젠은 이러한 예시에서 4단계를 가장 발달된 단계로 생각합니다. 지금의 역게에 놓고 본다면,
3단계는 '전쟁범죄는 과거에 없던 개념이다. 호드에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과거와 현재를 전혀 상관이 없는 단절적인 입장에서 보는데 반해
4단계는 '비록 과거에 인권이나 전쟁범죄에 대한 개념은 없었지만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단 그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인권, 전쟁범죄와 같은 가치를 찾아낸 것이 중요하다'라는 입장입니다.
지금 역게의 상황에 이런 말을 하면 뭔 개소린가 싶겠죠?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이라면 호드가 나쁘냐? 착하냐? 에 대해 답을 내려줘야 하는데 말이죠
근데 사실 역사학자들, 특히나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논쟁에 답을 내려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답을 내려주는게 아니라 답을 내리는 과정을 마련해주는 사람이죠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에 영향을 받아 '답이란 없다'라는 극단론자들도 있습니다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역사가가 답을 정해 주지 않는 이유는 '역사가가 정해준 답 따윈 의미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역게의 포세이큰들에게 실바나스가 나쁘다고 백날 말해 봐야 의미 없고, 바인을 지지하는 틀딱들에게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소용 없는 짓 따윈 하지 않죠.
역사가란 찬성측에도 주장과 근거를, 반대측에도 주장과 근거를 마련해준 뒤 토론장까지 마련해는 사람입니다.
대신 논리와 이성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인신공격과 비방만을 이어간다면 제재하는 심판의 역할까지도 수행하죠
이 토론장에서 승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 타인에 대한 존중, 공공선, 연대의식이라는 보상을 받아가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보상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건강한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개짓거리같다고요?
아니요. 현대 시민교육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보이스텔바흐' 합의의 내용입니다.
독일에서 다시는 히틀러같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든 교육정책 합의이자 독일 시민의식, 정치의식의 근간이죠.
전 세계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합의문으로, 실바를 옹호한다고 나치 찬양은 아니지만 이 합의를 부정하면 그건 나치입니다. 리얼로
따라서 역사가의 입장에서, 역게에서 나아가야 할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교화나 주입을 금지합니다. 내 생각만이 옳다고 강요하여선 안 됩니다
둘째로 해당 주제가 논쟁적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실바나스는 다양한 가치관에 의한 의견 표출이 가능한 주제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회 문제에는 정치적, 경제적 논리가 깔려 있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모든 요소를 정확하게 고려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포세이큰이라서 친 포세이큰 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마땅한 행동이지만, 더 넓은 범위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포세이큰은 호드의 일원임을, 나아가 아제로스의 거주민임을 생각했는지 확인해봐야 합니다. 포세이큰을 위한 행동이 꼭 아제로스를 위한 방법이라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P.S. 그럼 역사가는 현대사에 대한 모든 논쟁에 대해 긍정적이냐? 라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만,
답은 '아닙니다'입니다. 역사가는 사실의 정오문제에 대해선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사실에 기반한 문제에 여러 가치판단이 내려지는 것은 건강한 역사의식이지만
거짓에 기반한 판단을 가치판단의 문제라고 결정짓지 않습니다. 독도라던가 아베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