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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단편소설]불에서 태어난 자 -11- 숙성된 음모

논리왕징기
댓글: 4 개
조회: 992
2021-11-14 09:28:54

불에서 태어난 자 -11- <숙성된 음모>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하메라가 이크툰의 배를 찌르자 관중석의 모든 악마 지도자들이 놀랐다. 이크툰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쓰러진 지옥군주는 서서히 변하더니 본모습을 드러냈다. 나스레짐이었다.


  이크툰으로 변장했던 데서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올려보았다. 하메라는 그의 가슴팍을 밟은 채 빛의 몰락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선언했다.


  나 하메라와 아주운은 승리를 오직 아스타르님께 바친다.”



 

  티콘드리우스는 크게 분노했다. 그는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손을 아스타르에게 뻗으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짓이지? 우린 손을 잡았을텐데?”


  아스타르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 상황에서도 손을 잡았다고 이야기하다니 나스레짐의 뻔뻔함은 알아 줄만 했다. 그는 티콘드리우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런. 자네 손이 꿈쩍도 않는 모양이로군.”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아스타르는 티콘드리우스의 옆에 놓인 잔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튕겨 떨어트렸다.


  “설마 그게 독이었나?”


  “티콘드리우스, 내 오랜 친구여. 독은 너희의 전문분야 아니었나? 이건 독이 아니라네. 볼카트의 발명품 중 하나일세. 일명 지배의 물약이지. 은밀히 준비하라고 했던 물건이지. 이 물약을 마신 자는 서서히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네. 자네가 이걸 들이키는 순간 미소가 절로 나오더군. 자네한테 말하지 않았던가? 아 자네한테는 술과 기다림은 오래될수록 좋다고만 했었군. 사실 술과 음모는 오래될수록 좋은 것이었네.”


  어리석은 놈! 나와 함께 군단을 지배하면 되는 것을!”


  티콘드리우스가 고함을 치자 아스타르는 검지만 일자로 들어 입 가까이 댔다.


  “이미 나는 군단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네. 하메라의 선언을 듣지 못했는가? 귀가 마비되지는 않았을 것인데.”


  티콘드리우스는 애써 몸을 움직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몸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기만자의 아들을 이용하면 군단을 쉽게 접수할 것이라 믿었는데, 도리어 이용당하고 말았다. 기만과 음모의 대가인 나스레짐을 감히 기만하다니. 아스타르를 영원토록 용서치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우위를 점한 건 티콘드리우스 자신이 아니었다.


  “오랜 친구여.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군. 하지만 우리 나스레짐은 군단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종족이지 않은가? 앞으로 우리 나스레짐은 새로운 군단의 지배자가 된 그대에게 충성을 바치겠네. 부디 서로 간의 오해를 푸는 게 어떻겠는가?”


  아스타르는 티콘드리우스가 계속 떠들게 내버려 두었다. 그는 한층 누그러진 티콘드리우스의 태도를 즐겼다. 웃음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송곳니를 드러내던 녀석이 자신들의 유용성이나 늘어놓으면서 충성을 바치겠다고 말하는 꼴이 우스웠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아스타르에게 주인님이라고 존칭을 붙이며 자신을 살려달라고 구걸했다. 나스레짐은 목적을 위해 큰 굴욕도 감내할 수 있는 족속인 게 분명했다.


  악마 지도자들은 새로운 지도자로 선언된 아스타르를 어떻게 대할지 난감했다. 특히 비쥴은 지금 서약을 어길지 고민했다. 하지만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아스타르가 하늘을 향해 손을 들자 엄청난 수의 함선들이 차원도약으로 투기장 상공에 나타났다.


  군단의 원정함대인 아스타리 함대였다. 게다가 차원문이 열리면서 벨리스라 휘하의 에레다르 병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벨리스라는 병력을 함께 집결시킨다는 약속을 지켰다. 아스타르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녀 역시 특유의 음흉한 미소로 화답했다.


  카자크는 뿔피리를 불었다. 그는 아스타르를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선포했다.


  “불타는 군단의 새로운 주인님은 아스타르님이오! 주인님께 모두 충성을 서약하시오!”


  악마 지도자들은 잠시 주저했다. 벨리스라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나 대학자 벨리스라는 아스타르님께 충성을 서약합니다.”


  그제서야 하나씩 충성을 서약했다. 아스타르는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마지막은 비쥴의 차례였다. 비쥴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비쥴. 네놈은 감히 나를 거짓 에레다르라고 칭했다. 그에 대한 해명을 들어볼까?”


  모든 악마 지도자들은 아스타르의 목소리에서 서늘함을 느꼈다. 오만방자한 비쥴조차 목소리에 깃든 살기에 위축되었다.


  “이런. 진정한 에레다르께서 말하는 법조차 잊었나 보군. 내가 친히 가르쳐드려야지. 놈을 굴복시켜라.”


  아주운은 날개를 펼치더니 곧장 날아서 비쥴의 뒤에 섰다. 비쥴은 고함을 지르며 아주운에게 맞서려고 했다. 하지만 철퇴가 더 빨랐다. 비쥴은 아주운의 손에 목이 잡힌 채 철퇴를 수차례 맞았다. 비쥴의 뜨거운 피가 주위에 뿌려졌다. 아스타르는 손을 들어서 아주운에게 그쯤 해두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는 얼굴이 짓뭉개진 비쥴을 패대기쳤다.


  “아무래도 네놈에게 쉬운 죽음을 선사하면 안 되겠군. 내가 친히 고문할 것이다. 네놈이 맞이할 운명으로 군단의 위계를 다시 세우겠다.”


  아스타르는 티콘드리우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티콘드리우스는 자신이 살 가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나는 너희가 미처 몰랐던 진실을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 군단은 필멸자들에게 뜻하지 않은 패배를 맛보았다. 하지만 이 패배의 원흉은 우리의 나약함이 아니었다. 불타는 군단은 무한한 무적의 군대였지만 내부의 배신자들에게 오랜 세월 철저히 기만당했다. 심지어 우리가 섬겼던 지도자들조차 놈들이 퍼트린 독을 눈치채지 못했지. 바로 나스레짐이다. 놈들은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하며 우리의 충실한 동지인 척했지만 모두 거짓이었다.”


  아스타르는 티콘드리우스의 머리를 붙잡더니 미소를 지었다.


  “. 놈을 보아라. 놈이 우리가 맞이했던 패배의 원흉이다. 아키몬드께서 필멸자들을 앞두고 방심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킬제덴의 부름에 응해야 하는 군단을 교란했다. 게다가 아르거스에 필멸자들이 침공해온 순간 방위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지. 그 결과 우리 군단은 굴욕적인 패배를 맛보았다. 너희의 새로운 군주인 나 아스타르가 너희에게 묻겠다. 우리 군단은 배신자들에게 어떤 처분을 내려왔는가?”


  고통! 파멸! 망각!”


  아주운이 선창하자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쳤다. 배신자에게 어울리는 결말은 끔찍한 최후 뿐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배신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군단은 배신자의 가죽을 벗기고 눈알을 파내고 지옥불로 끔찍한 고통을 맛보게 할 뿐만 아니라 다시는 기억될 수 없다는 망각의 공포를 선사해왔다. 배신자에게 어울리는 결말은 너희의 말처럼 고통과 파멸, 그리고 망각 뿐이다!”


  티콘드리우스는 체념한 듯 웃었다.


  “짧은 승리를 만끽하라, 아스타르. 네놈들은 우리 주인님이 오래전 계획했던 기만의 결과물에 불과하다. 곧 네놈도 깨닫게 될 것이다. 그저 복종하면 되었을 것을.”


  아스타르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네 유언인가? 정말로 가소롭구나, 티콘드리우스. 네놈이 맞이할 고통은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 군단은 너희 나스레짐들을 이 세상 끝까지 쫓아가서 모조리 숙청할 것이다. 그곳이 네놈들이 태어난 어둠땅이든 저 너머에 있을 공허이든 상관없다. 마음껏 도망쳐보아라. 우리가 너희를 쫓을 것이다. 그리고 네놈의 창조주인 대영주란 녀석도 군단을 거스른 대가를 제대로 치를 것이다. 내 반드시 약속해주마. 그놈도 네놈과 같이 망각의 길로 던져질 것이다.”


  주인님을 불경하게 거론하다니!”


  티콘드리우스는 격분해서 별별 말을 다 했다. 그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본 악마지도자들은 아스타르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스타르는 티콘드리우스의 헛소리를 들어주다 그의 입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의 손에서 일어난 녹색 불꽃이 티콘드리우스의 입을 녹이면서 불태웠다. 티콘드리우스는 끔찍한 고통 때문에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비 때문에 고통은 못 느끼려나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군.”


  아스타르는 너스레를 떨더니 데서록에게 시선을 돌렸다.


  “데서록. 설마 내가 네놈을 몰라볼 줄 알았느냐?”


  데서록은 배가 뚫려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이런. 이런. 배가 뚫려서 말도 못 하니 참으로 가엽구나. 네놈이 들고 있었던 도끼는 내가 친히 이크툰에게 하사했던 도끼였지. 난 네놈에게 그 도끼를 피의 탐식자라고 불렀지만 사실 그런 이름을 지어준 적이 없다. 그 이름은 네놈을 떠보기 위해 했던 말에 불과하지. 어리석은 네놈은 내 미끼를 제대로 물더군. 덕분에 네놈이 우리에게 감쪽같이 침투했다고 믿도록 만들었다.”


  아스타르는 하메라를 향해 손짓했다.


  “녀석에게 알아내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말만 할 수 있게 회복해라.”


  하메라는 고개를 숙이더니 데서록의 양손을 잘라냈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메라가 주문을 외우자 그의 배에 난 상처만 회복되었다.


  “데서록. 내 질문에 제대로만 대답해준다면 네놈에게 다른 운명을 선사해주겠다고 약속하마. 내 말뜻을 이해하나?”


  데서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벌벌 떨고 있었다.


  “내 부관 이크툰은 어찌 되었느냐?”


  데서록은 침묵했다. 하메라는 주저하지 않고 빛의 몰락을 데서록의 허벅지에 꽂았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고통을 견디기에는 데서록의 의지가 너무 나약했다.


  “다 말하겠소! 다 말하겠소! 처음에 우리는 놈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소. 당신에게 반기를 들 생각인 줄 알았소. 하지만 우리의 제안을 듣더니 곧장 도끼를 휘둘러 우리 형제들을 많이 살해했소. 우리는 할 수 없이 놈의 입을 막으려고 죽였소.”


  “죽인 자가 정확히 누구였지?”


  “그건 우리 형제를 밀고하는 거나 마찬...”


  데서록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의 분노가 붉은 기운을 내뿜었다. 그는 허벅지가 타들어가는 고통에 또 비명을 질렀다.


  “아네테론이었소. 아네테론이 배후에서 찔렀소.”


  아스타르는 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을 듣고 싶었다, 데서록. 내가 원하는 답을 해줬으니 약속을 지켜야겠지?”


  데서록은 고통에 찬 눈물을 흘리며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 네놈에게 특별히 마지막 임무를 맡겨주마. 네놈의 동포에게 돌아가라. 그리고 오늘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빼먹지 말고 전하거라. 우주 어느 곳에 있어도 군단은 너희를 끝까지 쫓아갈 것이다. 특히 내 부하를 죽인 아네테론은 반드시 찾아내서 내 분노를 맛보게 할 것이다.”


  하메라는 허벅지에 박힌 검을 돌렸다. 데서록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스타르님께 고맙다고 해라.”


  “...고맙...습니다, 아스타르.”


  데서록은 울면서 대답했다. 나스레짐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제법 볼만 했다. 아스타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천만에. 그런데 데서록. 전령 노릇에 다른 것은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이 드는군. 어차피 네놈이 동포에게 돌아가서 전하려면 날개와 입만 있어도 충분하지 않겠느냐?”


  하메라는 아스타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데서록의 양다리를 잘랐다. 그리고 데서록의 두 눈을 빛의 분노가 내뿜는 열기로 지졌다. 데서록의 비명이 투기장 너머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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