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를 처음 본 건 TV 광고였다. 2004년 겨울, 고2에서 고3으로 넘어가던 무렵. 드워프 사냥꾼과 나이트엘프 드루이드가 나오던 그 광고가 이상하게 오래 머리에 남았다. 새 게임이 나왔다는 말에 친구들과 PC방으로 몰려갔다. 광고 속 드루이드가 멋있어 보여서 다 같이 나엘 드루를 만들었다. 곰으로 변신하는 것까지 해보고, 우리는 수능 준비를 하러 흩어졌다. 그게 내 첫 아제로스였다.
2006년 봄, 대학교 기숙사. 네 명이 같이 쓰는 방이었고, 4학년 형 한 명이 와우를 하고 있었다. 전사였고 레벨은 55쯤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전사는 렙업이 유독 느린 직업이었다. 형을 따라 PC방에 가서 다시 와우를 켰다. 당연히 형이 있는 듀로탄 서버, 호드. 그때 무슨 캐릭터를 만들었는지는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다.
1학기 땐 내 컴퓨터가 없었다. 지방대 보내놓고 컴퓨터까지 사달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2학기에 카티아 같은 설계 프로그램을 배워야 한다는 이유가 생겼다. 반은 진짜 이유였고, 반은 게임이었다. 여름방학에 드디어 내 컴퓨터가 생겼고, 집에서 트롤 사냥꾼을 새로 만들었다. 이후 20년 동안 쓰게 될 그 이름으로.
솔직히 열심히 하진 않았다. FM도 하고 위닝도 하고, 와우는 여러 게임 중 하나였다. 렙업이나 레이드엔 관심도 없었다. 와이번을 타고 비행경로를 따라 날아가며 아래로 지나가는 아제로스를 구경하는 게 좋았다. 스킬을 새로 배워야 한다는 것도 몰라서 한참 동안 1레벨 스킬을 쓰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전구의 싹은 그때부터 보였던 것 같다.
방학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와서도 와우보다는 동아리 사람들과 술 마시는 게 더 좋았다. 와우는 시간 날 때 가끔 켜는 게임이었다.
그런데 딱 하나, 진심이었던 게 있었다. 펫이었다. 사냥꾼을 하다 보니 귀여운 펫, 성능 좋은 펫에 자꾸 눈이 갔고, 그러다 부러진송곳니를 알게 됐다. 황야의 땅에 나타나는 희귀 고양이, 공격 속도 1.0
테이밍할 수 있는 레벨이 되자마자 다른 건 다 제쳐두고 황야의 땅으로 갔다. 그리고 열흘 넘게 기다렸다. 쪼렙이라 지나가던 만렙 얼라에게 몇 번이고 누웠고, 겨우 나타난 날엔 다른 사냥꾼에게 밀렸다. 오죽했으면 방형이 물었다. "부송 꼬셨냐?"
결국 꼬시긴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성공한 순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그랬던 것 같다. 20년이 지나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오히려 그 열흘이다. 같은 자리에 서서 화면을 바라보던 시간, 얼라에게 누워서 시체 찾으러 뛰어가던 길, 방형의 그 한마디. 와우는 원래 그런 게임이었던 것 같다. 얻은 것보다 기다린 시간이 더 오래 남는.
그 무렵 아제로스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길드 이름에 익숙한 동네 이름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반가운 마음에 귓말을 걸었는데, 정말 같은 동네 사람이었다. 나보다 몇 살 많은 형이었고, 나는 그렇게 첫 길드에 들어갔다.
그때 나는 100골이 없어서 탈것도 못 사고 걸어 다니고 있었다. 사정을 들은 형은 나를 데리고 메아리섬까지 직접 가줬다. 그리고 랩터 상인 앞에서 골드를 건네며 말했다. 이걸로 랩터 사라고.
처음으로 내 탈것에 올라탔다. 메아리섬에서 오그리마까지, 형과 나란히 달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길을 같이 달리던 장면만은 20년이 지나도 선명하다. 그 뒤에야 트레이너를 찾아가 밀린 스킬들도 배웠다. 그 형 닉네임은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100골과 오그리마까지의 그 길은 아직도 기억난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와우를 가장 순수하게 즐겼던 시절이었다. 누구보다 빨라야 할 이유도, 딜 미터기도 없었다. 1레벨 스킬을 쓰면서도, 펫 하나에 열흘을 쓰면서도 그저 즐거웠다.
2007년 1월, 불타는 성전이 나왔다. 어둠의 문을 넘어 아웃랜드에 발을 디디긴 했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게임보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PC방에 몰려가 다른 게임을 하는 게 더 좋았다. 아웃랜드를 제대로 구경하기도 전에 3월 초가 왔다.
나는 군대에 갔다. 아웃랜드에 트롤 사냥꾼과 부러진송곳니를 남겨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