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영국 어학연수를 준비하며 휴학을 했다. 마침 어학연수 or 워홀을 준비하고 있다가 학교에서 보내준 아일랜드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놀러간 영국에 반해서 영국으롤 정했다. 마침 박지성도 있었고
복학하고 매 학기 성적 장학금을 받았으니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2년을 달렸으니 잠깐은 쉬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다시 와우를 설치했다. 오전엔 영어회화 학원에 가고 조금 공부를 하다가, 저녁이 되면 게임을 켰다.
세상은 데스윙이 쪼개 놓은 대격변이었다.
그리고 이때 나는 레이드가 아니라 캠핑에 빠졌다. 부러진송곳니 앞에서 열흘을 기다리던 대학교 1학년이 다시 돌아온 거였다.
노스렌드의 야수 정령 로크나하크, 아크튜러스, 곤드리아를 차례로 길들였다. 대격변에서는 유령게, 마그리아, 반탈로스, 화염거북이까지 내 야수 우리에 들어왔다. 나중에는 이름을 댈 수 있는 희귀 야수는 거의 다 가지고 있었다. 숄라자르 분지의 크루쉬 왕은 길들이기도 하고 잡기도 했다.
캠핑하는 재미에 탈것도 따라왔다. 폭풍우 봉우리를 돌고 돌아 잃시비를 얻었고, 에오낙스도 탔다. 노스렌드 희귀 몹 업적도 하나씩 채워 나갔다. 울둠 사막 어딘가에 숨어 있는 낙타를 찾아내 낙타 조련사 칭호도 달았다.
나중엔 거의 습관이었다. 접속하면 먼저 희귀 야수 자리부터 한 바퀴 돌았다. 녀석들이 뜨면 사냥꾼 게시판에 몇 시에 어디서 떴다고 글을 올렸다. 나처럼 기다리는 사람이 헛걸음하지 않도록. 기다리는 동안엔 근처 물가에서 낚싯대를 던졌다.
그런 나를 보고 100골마 형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진짜로 아제로스를 즐기고 있다고.
딜 미터기 위에서는 늘 아래쪽이었지만, 아제로스 구석구석에서 누구보다 오래 서 있었던 사람은 아마 나였을 것이다.
2011년 6월, 나는 영국으로 떠났다.
처음 몇 달은 잘 지냈다. 그런데 6~7개월쯤 지나자 향수병이 찾아왔다. 유럽 친구들은 대부분 방학이나 한 학기, 길어야 석 달 정도만 머물다 갔다. 친해졌다 싶으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고,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 처음부터 다시 친해지는 것도 지쳐갔다. 그러자 또 와우가 생각났다.
영국에서 한국 서버에 접속하니 핑이 말도 안 되게 높았다. 스킬 하나 누르면 한참 뒤에야 나갔다. 할 수 있는 건 혼자 하는 렙업 퀘스트뿐이었다. 그래서 난생처음 부캐를 키웠다.
사냥꾼 하나만 붙잡고 있던 내가 부캐를 키운 이유는 딱 하나,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였다.
그 무렵 100골마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영국에 있다고 하니 형이 부탁을 했다. 한국이랑 시간이 반대니까, 자기 아이디로 들어가서 에오낙스랑 잃시비 좀 잡아봐 달라고. 기쁜 마음으로 들어갔다. 메아리섬에서 랩터를 사주던 형에게 드디어 뭔가 돌려줄 수 있는 기회였다. 결국 형에게 탈것을 안겨주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길드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처음으로 길드 레이드라는 걸 갔다. 막공 손님도, 휴가 나온 군인도 아닌 길드원으로.
하지만 영국과 한국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바닥에 장판이 깔리면 공대장이던 길마 형이 피하라고 외쳤다. 나는 피했다. 내 화면에서는.
서버에서의 나는 이미 바닥을 밟고 한참 서 있었다. 한두 번 따라가다 결국 내가 먼저 그만뒀다. 핑 핑계를 댈 수 있었던 마지막 전구 시절이었다.
영국에서 와우를 많이 하진 않았다. 큰 이야기도 없었다. 외로운 밤에 잠깐씩 켜는, 고향 같은 게임이었다.
2012년 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마지막 대학 생활을 위해 복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