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봄, 복학하고는 와우를 일절 켜지 않았다. 마지막 학점을 관리하며 취업과 대학원 사이에서 고민했다. 사실 마음은 이미 대학원 쪽이었다. 그래서인지 남들 자소서 쓸 때 나는 비교적 편하게 학교생활을 마무리했다. 게임을 해도 와우보다는 롤이었다. 취미로 수영도 배웠다. 졸업할 때까지 일곱 달을 열심히 다녔고, 그 뒤로도 1~2년에 몇 달씩은 지금까지 수영장을 찾는다.
그리고 대학원에 들어갔다. 요즘도 가끔 뉴스에 나오는 그런 교수 밑이었다.
나와 동기는 학부 시험 문제를 직접 내고, 답안지를 워드로 하나하나 만들어 교수에게 검사를 받았다. 채점도 우리 몫이었다. 좌표계부터 식, 풀이 과정, 답까지 감점 기준을 하나하나 따졌다. 1학기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소문이 났는지, 2학기엔 수강 인원 미달로 폐강됐다. 그땐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그때 쌓인 지식이 꽤 큰 도움이 됐다.
학기 중엔 수업 준비, 저녁엔 실험. 새벽 4~5시에 자고 10시면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길게는 3주 동안 집에 못 간 적도 있다. 그렇게 1년쯤 버텼다. 학교에서 멀리 보이는 한강을 바라보며 나쁜 생각까지 들던 무렵, 속으로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딱 세 번만 더 참자. 그리고 그만두자. 마지막 세 번째는 사실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그만두지 않으면 영영 못 그만둘 것 같았다. 그래서 나왔다.
대학원 시절에도 와우와의 인연은 있었다. 연구실 박사과정 형 둘이 가끔 와우를 해서, 같이 하자는 말에 아즈샤라 서버로 캐릭터를 옮겼다. 하지만 같이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박사과정 형들과 석사 나부랭이가 연구실에서 나란히 게임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연구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온 나는, 또 향수병처럼 와우를 켰다.
100골마 형과는 어느새 연락이 끊겨 있었다. 형도 서른이 넘었을 테니, 각자의 현생이 있었을 것이다.
아즈샤라에 있던 사냥꾼을 다시 듀로탄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집에 당당하게 선언했다. 마지막으로 진짜 딱 한 번만 놀고 취업하겠다고. 그게 그렇게 길어질 줄은, 흙밭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나름의 꽃길로 올라오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릴 줄은 그땐 몰랐다.
대학원 1년 사이에 수영으로 날씬했던 몸은 20킬로가 불어 90킬로 가까이 돼 있었다. 헬스와 수영을 다시 시작해 한 달에 2~3킬로씩 뺐다. 지금도 사람들에게 말한다. 백수가 운동하면 안 된다고. 자기가 열심히 살고 있는 줄 안다고.
운동하는 세 시간을 빼면 거의 와우였다.
새 길드에 들어갔다. Alive 호드, 아마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길마(제노) 형을 만났고, 시간이 남아도는 나는 자연스럽게 길드 지킴이가 됐다. 거기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오그리마 공성전을 정말 재미있게 했다. 최고 난이도 가로쉬까지는 못 갔지만, 블랙퓨즈 사냥꾼 특임도 하며 즐거웠다. 사냥꾼과 전사 템렙이 오르고 나서는 1+1로 가로쉬를 잡아주며 길드원들에게 계승 무기를 챙겨줬다. 그렇게 무기를 쥐여준 길드원이 열 명이 넘었다.
메아리섬에서 100골을 받아 랩터를 탔던 녀석이, 이번엔 누군가의 가방에 무기를 넣어주고 있었다.
현생은 백수. 와생은 길드 지킴이. 그렇게 나의 판다리아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