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바다이야기 트라우마 벗어나야"…尹 정부 게임정책 보고서

게임뉴스 | 이두현 기자 | 댓글: 7개 |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게임산업의 청사진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비공개 상태였던 '게임산업 규제개선 및 진흥방안 연구' 보고서 전문이 16일 취재 결과 확인됐다.

국무조정실 산하 규제혁신추진단이 발주해 2023년 7월 31일 마무리된 250페이지 분량의 이 보고서는, '바다이야기 트라우마' 이후 고착화된 규제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게임을 핵심 문화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보고서는 등급분류제도, 내용수정신고, P2E(Play to Earn) 게임, 웹보드 게임, 이용자 보호 등 10가지 핵심 아젠다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규제 개선 및 진흥 방안을 제시했었다. 특히 그동안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게임산업에 대한 정부의 자세, P2E 게임의 사행성 문제와 웹보드 게임 규제, 이용자 권익 보호 강화 방안 등에 대한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게임은 핵심 문화산업…정부는 '풍토 조성'에 집중해야"
보고서는 게임산업을 우리나라의 핵심 수출 동력이자 고부가가치 문화산업으로 규정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2021년 기준 게임산업 수출액은 전체 콘텐츠산업 수출액의 69.6%를 차지하고 세계 시장 규모 4위를 기록하는 등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명시했다.

보고서는 "게임과 게임산업을 문화이자 창조적 산업의 하나로 인식하는 근본적 수준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늘날 문화국가에서의 문화정책은 그 초점이 문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생겨날 수 있는 문화풍토를 조성하는 데 두어야 한다"며 정부의 역할이 직접적인 개입이 아닌 기반 조성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P2E 게임, '선 허용' 아닌 '사회적 공론화'가 우선
당시 업계의 최대 관심사였던 P2E(Play to Earn) 게임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법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P2E 게임 내 NFT 등 가상자산이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행 게임산업법상 '경품'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는 사행성 조장 금지 규정과 충돌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법원이 P2E 게임의 사행성을 인정해 등급분류를 거부한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사례들을 언급하며, 현행법 체계 내에서의 허용이 쉽지 않음을 시사했다.

다만, 해외에서는 관련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어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발생하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이에 보고서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게임이라는 것과 경품을 통한 사행성 조장이라는 논란이 작지 않다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보고서 "아케이드 게임, 별도 특별법으로 분리해야"
보고서는 아케이드 게임 산업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현행 법체계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게임산업법은 역사적으로 아케이드 게임을 중심으로 규제가 생성되었으나, 이 규제들이 온라인·모바일 게임 등 성격이 다른 플랫폼에 그대로 적용되면서 불합리한 결과를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아케이드게임과 非 아케이드게임을 분리하여 별도의 법률로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장기적으로 아케이드 산업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경품·웹보드 규제, 유연성 확보 및 재평가 필요
보고서는 경품 및 웹보드 게임물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게임산업법은 경품 제공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청소년게임제공업소의 1만 원 이하 완구류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만 허용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것이 다른 콘텐츠 산업에 비해 과도한 차별이며, '사행성 조장'에 대한 판단 기준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원칙적으로 경품 제공을 허용하되 사행성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 전환과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을 제안했다.




웹보드 게임물에 대해서는 사행성 우려로 규제가 집중되고 있으나, 산업에 기여하는 긍정적 측면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네오위즈가 개발한 'P의 거짓'이 유럽 최대 게임쇼에서 3관왕에 오른 것은 웹보드게임물을 통해 발생한 수익으로 개발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며 웹보드 게임이 콘솔 게임 등 장르 다각화를 위한 투자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용자 간 재화 이전 가능성이 없는 단독형(AI 대전) 웹보드 게임에 대한 규제 개선과, 게임머니를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BM 구조의 정상화'를 제안했다.


이용자 보호 강화, '무료 게임' 보상 체계 도입해야




보고서는 게임산업의 규모에 비해 이용자 권익 보호 장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광고 시청이나 부분 유료화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무료' 게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용자가 보상받을 근거가 부족한 점을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표준약관의 이용자 보상제도 도입'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아이템을 유료로 구매한 경우 또는 이용자의 광고이용으로 회사가 수익을 발생한 경우는 기회비용을 산정하여 배상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표준약관에 신설할 것을 제안하며, 사실상 유료 모델인 게임에 대한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바다이야기 트라우마 벗어나야"…정부에 일관된 정책 촉구
보고서는 결론적으로 한국 게임 정책이 '바다이야기' 사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규제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고서는 "게임산업에 대한 규제는 게임이 갖는 SW적 특성 때문에 SW산업 규제가 되고, 한편으로는 문화규제가 될 수 있다"고 전제하며, 현재의 규제 정책이 게임의 산업적, 문화적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게임 출시 전에 등급을 받아야 하는 '사전 등급분류제도'가 모든 규제의 핵심으로 작용하며 산업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P2E 게임 등 신기술 분야에 대해서는 정책 당국이 겪는 어려움을 인정했다. 보고서는 "P2E 게임은 구조적으로 경품으로 제공하는 암호화폐 등이 거래소를 통해 환전이 가능한 구조"라며, 이는 '바다이야기' 사태를 이끌었던 환전 이슈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정책 당국이 규제를 풀기 어려운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에 보고서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향후 게임 정책이 나아갈 방향으로 '자율규제'에 기반한 생태계 조성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산업의 속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해관계자는 산업계이기 때문에 산업계에서 해당 산업의 성장을 위한 전권을 위임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산업정책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역할은 직접적인 통제가 아닌, 게임이라는 문화적 산물이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보고서는 자율규제가 방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자율규제를 악용하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시장 퇴출까지 고려하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며, 유럽의 게임 등급분류 시스템인 PEGI가 자율 강령을 위반한 사업자를 시장에서 배제하는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종적으로 보고서는 "정책당국은 예측가능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나가야 할 것"이며, "사업자들도 공정한 시장환경에서 사업을 영위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며 정부와 산업계 양측의 노력을 촉구했다.



▲ 이재명 대통령(가운데)의 후보 시절 모습

지난 정부에서 마련된 이 보고서는 현 정부에 중요한 정책적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정권 교체에 따라 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릴 경우 게임산업은 불확실성에 놓일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과거 정부의 정책이라도 산업 발전에 타당하다면 이를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자세가 필요하며, 본 보고서가 캐비닛 속에 머무는 대신 실질적인 정책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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