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3년 째. 기자로서 바라본 그간의 지스타는 언제나 변해 왔다. 겉으로 볼 때는 늘 비슷하게만 보이는 행사도 속내를 까 보면 계속 조금씩 변하고 있다. 외장을 그대로 유지하는 올드카도 내부 부품은 계속 새 것으로 갈아 끼우듯, 언젠가 폭발적으로 달려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나씩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십수년이 지나오며 내가 생각하는 처음의 지스타와 지금의 지스타는 무척 다르다. 참여 게임 라인업은 그 해 게임 농가가 얼마나 힘을 썼느냐에 따라 달라지기에 풍년도, 흉년도 있고 때때로 힘이 쭉 빠질 정도로 아쉬울 때도 있지만, 행사 진행의 퀄리티나 외연, 그 밖의 많은 것들은 조금씩이나마 더 나아 지고 있다. 과거엔, 줄도 제대로 안 만들어져 입구가 포화 상태에 이르던 시기도 있었다.
그리고, 이 지스타도 그냥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1년을 바라보고 기획되는 행사이며, 수많은 노력과 고민이 더해져 만들어진다. 2025 지스타의 마지막 날. 이 거대한 행사를 총괄하는 이를 만나,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게임산업협회 정승우 실장 Q. 먼저, 본인 소개가 좀 필요할 것 같다. 정확히 어떤 직책을 맡고,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줄 수 있나?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승우 실장이다. 2014년부터 지스타 진행에 합류했고, 현 시점에서는 지스타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고 있으며, G-CON의 실질적인 기획과 진행도 담당한다. 실무자로서는 가장 깊게 관여하고 있으며, 매년 지스타와 G-CON을 어떤 방향으로 운영할지, 어떤 테마와 주제 의식을 표방할지, 나아가 구체적인 운영은 어떻게 해 나갈지를 기획한다. 전반적으로 모든 과정을 총괄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Q. 지스타 외에도 협회에서 진행하는 게임 관련 행사가 꽤 많지 않나. 그것들도 함께 담당하는 건가?
“지스타 외에도 인식 재고 사업이나 협회 회원사들을 위한 행사, 간단한 체육대회 같은 수부적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한다. 거대한 행사의 경우 대행사와 함께 진행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맡고 있는 일이 적은 편은 아니다.
작년까지는 대한민국 게임대상도 담당했었다. 장소 섭외나 식순, 전반적인 무대 구성 등을 짜는 일이다. 첫 해 게임대상때가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데, 당일에 포항 인근에서 지진이 발생해 기차 운행이 중지되는 등 온갖 악재가 터졌다. 당시 야외에서 진행했던 행사였다 보니 신경 쓸 구석이 많았는데, 재해까지 터지다 보니 진땀 빼며 행사를 준비했던 기억이 있다.
Q. 지스타 규모의 행사를 총괄하려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다. 매 년 행사 진행을 반복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내부에서 바라보는 지스타라는 행사와,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의 간극이 굉장히 크다는 점이 가장 어려운 요소로 다가온다.
우리는 매년 전시 퀄리티를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지난해보다 이런 점이 좋아졌다'라는 느낌을 받지만 사실 외부에서 볼 때는 이런 개선점들이 눈에 딱 들어오진 않는다. 아무래도 외부에서 지스타를 평가하는 가장 큰 기준은 타이틀과 기업의 라인업이 주가 되기 때문일 거다. 그 외에도 우리가 생각했던 개선점이 전혀 유용하지 않을 때도 있고, 의도한 바와 다른 오해가 생길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건 지스타 뿐만 아니라 모든 행사를 기획하는 모더레이더들의 숙명이자, 과제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단번에 좋아질 수 없다. 조금씩 더 좋은 행사로 바꿔 나가는게 우리의 장기적인 목표다.
▲ 지금과는 또 달랐던 2014년의 지스타
Q. 그럼 말이 나온 김에 묻자면, 올해 행사에서 내년에는 이 부분을 개선해야겠다고 느낀 부분이 있었을까?
“대외적으로 지스타는 게임인들의 축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전시회'의 본질은 꽤 명확하다. "지스타에 와야만 새로운 게임을 할 수 있고, 새 게임의 소식을 알 수 있다"라는 인식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올해는 그 부분에서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좋은 기업들이 많이 합류했지만, 팬 이벤트 성격의 부스로 끝난 경우도 있었고, 만족스러운 게임 경험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보기 좋았지만, 이것이 지스타라는 전시회와 딱 맞아떨어지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내년에는 '지스타에서만 먼저 경험할 수 있는' 게임 타이틀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국가의 어떤 개발사와 이야기를 해 나가야 할 지를 가장 큰 숙제로 보고 있다.
Q. 국내 기업의 수가 적은 건 아니지만, 모두 개발과 출시 사이클이 있다 보니 국내 기업만으로 지스타의 수요를 충족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해외 기업의 적극적인 유치도 생각하고 있다는 뜻인가?
“개인적으로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스타가 글로벌을 표방하고 로컬 게임쇼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외 기업의 참여는 필요하다 생각한다.
특히, 콘솔 게임 수요가 매년 폭증하는 것이 실감됨에도 아직 국내 개발사들의 메타는 PC, 모바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때문에 수요에 맞춘 게임을 공급할 수 있는 일본이나 서구권, 중국 개발사들과 접촉을 보다 활발히 해 볼 예정이다.
Q.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는 변화가 코스플레이어들이 굉장히 늘어났다는 점이다. 과거엔 외부 공간이 별도의 전시 공간이나, 진입을 위한 동선 정도로 여겨졌다면 올해는 외부에서 어우러지는 코스어와 관객의 수가 유독 많아 보인다.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시선에서는 정말 좋은 변화 중 하나다. 지스타가 전시장 내부라는 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외부를 넘어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축제로 나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재미있는 점은, 게임에 별 흥미가 없는 이들도 이제 지스타라는 행사를 구경하기 위해 온다는 점이다. 지스타는 분명 게이머들을 위한 행사이지만, 게이머 외 계층을 배척하는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들도 잠재적인 게임인이고, 같은 문화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흔히 서브컬쳐로 분류되는 문화군도 게임과 깊은 연관이 있기에, 이런 방향으로라도 행사 참가자들이 늘어나는 건 지스타가 원하는 방향성과도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 방문한 이들은 알겠지만 올 해는 관객 반 코스어 반이었다. 진짜로
Q. 'G-CON'(지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과거 인벤과 함께 행사를 진행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나날히 퀄리티가 좋아지고 있는 모양인데, 이 정도 퀄리티를 유지하려면 1년 내내 쉬지 않고 신경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지스타가 진행 중일 때도, 2026년 강연을 위한 연사 섭외는 진행 중이다.(웃음)
컨퍼런스라는 행사가 그렇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어떤 메시지와 담론을 담을 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과적으로 컨퍼런스의 이름을 알리는 건 '헤드라이너가 누구인지'다. 행사의 이름보다, 연사의 이름이 훨씬 더 강한 홍보력과 호소력을 지닌다.
올해 지콘의 테마는 서사와 내러티브였다. AI가 업계의 화두인 지금, 내러티브는 유일하게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분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AI또한 이야기의 얼개를 짜낼 수 있고,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만, 인간이 만들어내는 메시지의 본질까지는 닿지 못한다. 그리고, 앞으로 몇 년 정도는 이 테마를 이어갈 방침이다. 그리고 이 서사와 내러티브가 게임 뿐만 아니라 영화나 애니메이션, 만화, 소설 등에도 함께 적용되는 콘텐츠 산업의 핵심 요소다 보니 올해 라인업은 이런 분야에서도 연사를 초청하는 형태로 기획했다.
Q. 안그래도 지콘에 만화 작가나 영화인들이 참석하면서 컨퍼런스 연사 구성이 이질적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실제 기획 의도는 어떤 것이었나?
“당초 계획은 영화나 만화, 소설 등 다른 문화 콘텐츠의 전문가와 게임 산업의 전문가가 함께 대담을 나누며 '차이'를 실감하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해내는 과정을 담는 것이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복수 산업에 이해도를 지닌 모더레이터가 필요했고, 각 연사들의 이해관계나 상황도 달랐기에 이상적인 강연 구성은 할 수 없었다. 올해는 시범적인 시도였으니, 내년엔 보다 본격적으로 이 계획을 진행해 볼 예정이다.
▲ 사카모토 신이치 같은 거물 만화가가 참석하기도 하고 ▲ '킹오브킹즈'의 장성호 감독 같은 영화인이 연단에 오르기도 했다
Q. 그래도 굉장한 연사들이 많이 나왔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로버트 쿠르비츠나 샌드폴의 '제니퍼 옌(제니퍼 스베드버그-옌)' 작가들의 경우가 그랬던 것 같다. 이들과의 접촉은 어떻게 이뤄졌나?
“제니퍼 옌 작가는 올해 가장 초청하고 싶은 인물 중 하나였다. 가장 유력한 GOTY 후보 타이틀의 전체 서사를 담당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개인적인 기준이 아닐까 싶어 접촉은 하면서도 이를 숨긴 채 모든 팀원들에게 '클레르 옵스퀴르: 33원정대'를 플레이해 달라 부탁했다.
이후 팀원들이 전부 다 엔딩을 보고 나서 무엇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를 물었는데, 절반 정도는 게임의 서사가 너무나 멋졌다고 답했다. 이 지점에서, 클레르 옵스퀴르의 서사가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것을 자각했고, 팀원들에게 제니퍼 옌 작가를 섭외 중이라 밝혔다.
제니퍼 옌 작가의 경우 섭외까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연사기도 하다. 처음으로 컨퍼런스에 오르는 경우기도 했고, 클레르 옵스퀴르 자체가 이들의 첫 작품이다 보니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부담을 덜어주고자 대담자를 한 명 더 섭외하기로 했고, 제니퍼 옌 작가가 좋아하는 게임인 '디스코 엘리시움'의 작가인 '로버트 쿠르비츠'를 섭외하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또 난관이었다. 로버트 쿠르비츠는 연락처도 없었고, 전 개발사인 'ZA/UM'이 말 그대로 공중분해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접촉할 수단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로버트 쿠르비츠가 가장 최근 참석했던 행사가 뭔지를 파악한 후 해당 행사의 주최측에 전화를 걸어 연락처를 얻어내 연락이 닿았다.
연락처를 얻고, 참석을 확정한 후에도 위기가 있었다. 로버트 쿠르비츠는 에스토니아의 '탈린'이라는 도시에 거주하는데, 부산까지 오려면 폴란드 바르샤바를 거쳐 인천 공항에 들어오고, 다시 서울로 이동해 기차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이동 과정에 연락이 잘 닿지 않다 보니 노심초사였고, 얼굴을 보았을 때 그 어느 때보다 안도할 수 있었다.
▲ 로버트 쿠르비츠와 제니퍼 스베드버그-옌, 그리고 스토리캠프 이종범 팀장
Q. 그러고 보니 조쉬 소여(폴아웃: 뉴 베가스의 디자이너)도 참석했다. 조쉬 소여도 업계의 리빙 레전드 중 하나인데, 어떻게 참석하게 된 건가?
“조쉬 소여의 섭외는 정말 우연하게 이뤄졌다. 올해 초 GDC를 방문해 원래 목표였던 '리스 모블리(호그와트 레거시의 크리에이티브 리드)' 연사를 섭외하고자 강연에 들어갔는데, 조쉬 소여가 그 자리에 청중으로 앉아 있었다. 강연이 끝난 이후 리스 모블리와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 조쉬 소여가 함께했고, 그 자리에서 긴 대화를 나눴다.
리스 모블리는 원래 한국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언제쯤 한국에 가보고 싶었다 말했기에 대화가 잘 풀렸는데, 그 자리에서 조쉬 소여도 "그럼 나도 갈래"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함께 이야기하던 '케이트 돌러하이드(펜티먼트의 개발자)'도 합류하면서 패널 토크 세션 하나가 뚝딱 나와 버렸다.
Q. 그러고 보면 올 해 지콘은 단독 연사의 강연보다 패널 토크 형태의 세션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런 방식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상당히 고민을 많이 한 결정이다. 한국의 경우 단독 연사의 강연에 훨씬 익숙하고, 사실 진행 면에서도 그게 훨씬 편하긴 하다. 하지만, 올해 테마인 '내러티브'는 정답이 없는 분야다. 많은 이들의 관점을 볼 수 있을수록 더 다채로운 내용이 나오며, 이들이 나누는 대화 자체도 일종의 내러티브라 볼 수 있기에 문맥 상으로도 합당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강연을 패널 간의 대담으로 구성했고, 키 비주얼을 짤 때도 훈민정음을 모티브 삼아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세션의 수를 작게 가져가되, 하나하나를 키노트 급으로 채우는 방향을 지향하는 지콘과는 썩 잘 어울리는 구성이었다고 생각한다.
▲ 조쉬 소여와 리스 모블리가 참석한 패널 토크. 올해는 이런 강연이 많았다
Q.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꼭 모시고 싶었지만 불발된 연사 분들도 꽤 있을 것 같다. 궁극적으로 모시고 싶은 연사 분은 어떤 분들인가? 바로는 어렵지만 꼭 한 번쯤 섭외하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말이다.
“'20세기 소년'의 작가인 '우라사와 나오키'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실제 섭외 기획 단계까지 갔지만 무산되었기에 굉장히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또한, 영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인 봉준호 감독님도 가능하다면 꼭 모시고 싶다. 봉준호 감독님의 내러티브는 다른 이들이 말해줄 수 없는 또 다른 독특한 관점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매 번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한 프롬소프트웨어의 미야자키 히데타카 디렉터가 있다. 개인적으로 목표로 삼고 있는 분이기도 하다.
이렇게 말 하고 나니 너무 대단한 분들인데, 원래 내가 목표를 좀 크게 잡는 스타일이다. 더 멀리 봐야 조금이라도 더 멀리 가지 않겠나.(웃음)
Q.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질문하고 싶다. 앞으로의 지스타, 그리고 앞으로의 지콘이 바라보는 방향은 어디인가?
“올해로 지스타가 21년 째다. 잘 된 부분도, 그만큼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이 아쉬운 부분들을 채워나가는게 운영 사무국으로서 매 년 해나가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새로운 타이틀과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지스타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확실히 늘리고 싶고, 참가사에 너무 과하게 의존하는 구조를 줄이기 위해 우리가 직접 만들어내는 콘텐츠의 비중도 늘릴 생각이다. 특히 인디 쇼케이스는 교토에서 진행되는 '비트서밋(BitSummit)'처럼 바로 퍼블리싱이나 소싱까지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연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온라인 외연 확장도 추진 중이다. 더 게임 어워드나 서머 게임 페스트의 경우 글로벌 미디어와의 연계를 통해 채널을 늘리고, 더 많은 영향력을 보여주곤 한다. 지스타도 비슷한 형태로 외연 성장이 가능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