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라이엇과 PC방, 적이 아니라 ‘혈맹(血盟)’이다

칼럼 | 김병호 기자 | 댓글: 30개 |
국내 PC방 점유율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라이엇 게임즈와 그들의 최대 파트너인 PC방 업계가 요금 인상을 두고 정면충돌했다.




라이엇 게임즈가 15년 만의 요금 인상을 발표하자, 한국인터넷PC카페협동조합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강력히 규탄하는 단체 행동에 나섰다. 라이엇 게임즈 역시 곧바로 공식 입장문을 통해 인상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맞받아쳤다. 서로를 향해 날 선 공방을 주고받고 있지만,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바라보면 이 싸움에는 승자가 없다. 두 주체는 서로가 필요한 ‘악어와 악어새’, 아니 그 이상의 ‘혈맹’ 관계이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11월 2주차 게임트릭스 주간 종합 게임 동향에 따르면,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점유율은 39.31%로 압도적 1위다. 2위 배틀그라운드(11.21%)와는 3배 이상의 격차다. 여기에 3위를 기록한 같은 라이엇 게임즈의 슈팅 게임 ‘발로란트’ 역시 8.24%의 점유율로 상위권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두 게임의 점유율만 합쳐도 50%에 육박한다. 이는 PC방 매출의 절반 가까이가 라이엇 게임즈의 IP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반대로 라이엇 게임즈에게 PC방은 한국 e스포츠 문화의 산실이자,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는 강력한 소셜 허브다. 혼자 즐기는 ‘다크 소울’ 류의 콘솔 게임이 유행하는 시대에도, 라이엇 게임들이 장수하는 비결에는 "PC방 가서 한 판 하자"는 한국 고유의 놀이 문화와 PC방이 제공한 e스포츠 인프라가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양측의 주장은 서로 고개를 끄덕일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라이엇 게임즈의 입장을 보자. 2011년 서비스 시작 이후 약 15년이다. 강산이 변하고 물가가 치솟는 동안 라이엇은 PC방 과금 요율을 동결해왔다. 지속적인 신작 출시, 서버 인프라 구축, 보안 투자 등 늘어나는 운영 비용을 감당하려면 가격 현실화는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기업 활동에서 15년 만의 가격 인상을 무조건적인 ‘악’으로 규정하고 비난하기만은 어렵다.

하지만 PC방 협동조합의 반발도 단순한 떼쓰기가 아니다. 핵심은 ‘가성비’와 ‘효용감’이다. 현재 라이엇이 제공하는 프리미엄 혜택의 골자는 ‘스킨 15종 무료 체험’과 ‘전 챔피언 사용’ 등이다. LoL에는 170개가 넘는 챔피언과 1,500개에 달하는 스킨이 존재한다. 이 방대한 콘텐츠 속에서 고작 15개의 스킨을, 그것도 매달 로테이션으로 제공하는 것이 과연 ‘프리미엄’이라 불릴 수 있는가? 유저들이 "PC방 혜택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결국 해법은 ‘빅 딜(Big Deal)’에 있다. 서로를 위해 양측은 한 발씩 양보해야 한다.

PC방 업계는 라이엇 게임즈의 ‘요금 인상’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대신, 라이엇 게임즈는 인상분에 걸맞은, 아니 그 이상의 ‘파격적인 혜택’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처럼 생색내기용 스킨 15종이 아니라, PC방에서 접속하면 대폭 확대된 스킨 라인업을 사용할 수 있게 하거나, IP 부스트 혜택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등 유저들이 "이건 돈 내고 PC방 올 만하다"라고 느낄 정도의 확실한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

라이엇과 PC방은 서로의 목을 겨눌 때가 아니라, 서로의 손을 잡아야 할 때다. 싸움이 길어지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PC방이라는 공간을 사랑하고 라이엇의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이다. 대화하자. 그리고 그리고 ‘가격’이 아닌 ‘가치’를 논하자. 15년 동안 함께 동행한 이에게 서로 그 정도의 신뢰는 있지 않나.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