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게임업계 최초의 파업이 남긴 숙제들

기획기사 | 이두현 기자 | 댓글: 24개 |
네오플 노동조합이 단행한 게임업계 최초의 파업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이하 던파 모바일)'의 중국 흥행으로 영업이익 1조 원 시점에서 터져 나온 이 파업은, 5개월간의 진통 끝에 노조의 핵심 요구였던 PS(초과이익분배) 4% 지급안이 좌절되며 사실상 빈손으로 막을 내렸다.

네오플 노조의 주장과 사측의 입장을 종합해 보면, 노사 간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성공의 주체는 누구인지, 성과의 원천은 무엇인지,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심리는 어떠한지 등 다각도에서 짚어볼 지점들이 산적해 있었다.

이번 사태는 유저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답이라는 사실을 증명함과 동시에, 게임업계의 노사 문화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알렸다.


1. "네오플의 성과" vs "넥슨그룹의 성과"




갈등의 발단은 네오플이 벌어들인 높은 수익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였다.

네오플은 2024년 '던파 모바일'의 중국 성공에 힘입어 매출 1조 3,783억 원, 영업이익 9,824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46.4% 증가한 수치이자, 넥슨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약 88%에 달하는 규모다.

노조는 "이러한 성과는 경영진의 과도한 목표 설정과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뎌낸 조합원들의 초과 근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회사가 중국 서비스 지연을 이유로 당초 약속했던 성과급(GI) 기준을 30%에서 20%로 일방적으로 하향했다고 비판하며, 투명한 분배를 위해 영업이익의 4%를 지급하는 'PS(수익배분) 제도화'를 요구했다.

반면 사측은 이를 '팀 넥슨(Team Nexon)' 생태계의 승리로 해석했다. 성과가 특정 자회사의 개발력뿐만 아니라, 넥슨코리아의 IP 관리 능력과 그룹 차원의 인프라 지원이 결합된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 조직이 그룹의 지원을 받아 낸 성과에 대해 영구적인 배분(PS)을 독점하는 것은 전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2. 개발(Labor) vs 사업(Business)




성과를 바라보는 시각차만큼이나, 성과의 '원천'에 대한 해석도 엇갈렸다. 노조는 고된 노동을 강조했지만, 넥슨에게 '던전앤파이터'는 이미 검증된 자산이자 파트너사의 사업 역량이 돋보이는 프로젝트였다.

만일 노조가 완전한 신작에 노동력을 투입해 성공을 일구었다면 초과이익분배 요구에 설득력이 더해졌을 것이다. 신규 IP 개발은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여 개발자의 창의성과 헌신이 절대적인 변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던전앤파이터'는 출시 20년이 된 IP로, 이미 성공 궤도에 안착한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중국에서의 매출 폭발이 현재의 개발 노력도 중요하지만, 지난 20년간 축적된 브랜드 파워와 중국 내 대기 수요가 폭발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성과의 핵심 원천이 '노동'이 아닌 'IP' 자체에 있다는 점은 노조의 PS 요구를 비합리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누가 돈을 벌어왔는가"에 대해서는 국내와 중국의 수익성 지표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네오플의 2023년 국내 매출은 1,209억 원이었으나 2024년에는 896억 원으로 25.9% 감소했다. 반면, 중국 매출은 2023년 7,542억 원에서 2024년 1조 2,833억 원으로 70.1% 증가했다. 네오플 전체 매출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86%에서 2024년 93.4%로 확대됐다.

이러한 수치는 성과의 무게중심이 개발 노동보다는 중국 파트너사인 텐센트의 사업 역량에 있음을 시사한다. 텐센트는 중국 내 안드로이드 앱 마켓들이 요구하는 고율의 수수료를 거부하고, 자사 메신저(웨이신)를 통해 직접 유통하는 강수를 뒀다. 사측은 이로 인해 절감된 수천억 원의 수수료 수익을 개발자의 성과가 아닌, 텐센트의 사업적 결단이 만들어낸 몫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3. 현재 vs 미래




감사보고서 등에 따르면, 지난해 네오플 직원의 1인당 평균 급여는 2억 1,888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임직원 총급여액에서 경영진 보상액을 제외한 뒤 전체 직원 수 1,402명을 나눈 수치다. 상장 게임사 중 평균연봉 상위권인 시프트업(1억 3,100만 원), 크래프톤(1억 900만 원), 엔씨소프트(1억 800만 원)는 물론, SK텔레콤(1억 6,100만 원), 에쓰오일(1억 5,400만 원)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노조가 'PS 제도화'를 강력히 주장한 배경에는 개발자의 불안정한 정년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게임 업계에는 '개발자 수명은 40세까지'라는 자조 섞인 정년설이 존재한다. 프로젝트 실패 시 팀 해체나 권고사직이 빈번한 환경 속에서, 개발자들은 자신의 직업 수명을 매우 짧게 인식한다. 노조의 강경한 태도는 "커리어가 끝나기 전,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한 몫을 챙겨야 한다"는 생존 본능의 발로다.

반면, 회사는 IP의 수명을 10년, 20년으로 늘려야 하는 '지속 가능한 경영'과 '리스크 관리'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게임 산업은 대표적인 고위험 고수익 시장으로, 하나의 성공작이 수많은 실패 프로젝트의 비용을 감당하고 차기작 개발을 위한 실탄을 마련해야 하는 구조다.

경영진 입장에서 이번 1조 원의 이익은 당장 나누어 가질 전리품이 아니라,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비하고 '아크 레이더스'나 '마비노기 모바일', '퍼스트 버서커: 카잔'과 같은 미래 먹거리에 재투자해야 할 자금이다. 이미 업계 최고 수준의 고정비를 지출하는 상황에서,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영구히 지급하는 'PS 제도화'는 경영의 유연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족쇄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4. 경영진의 아쉬운 실책



▲ 네오플 윤명진 대표

이번 파업 사태는 결과적으로 노조의 판정패로 끝났지만, 경영진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측은 법리와 시장 논리에서는 승리했을지 몰라도, 조직 관리와 신뢰 구축이라는 경영의 본질에서는 허점을 드러냈다.

270억 원의 '돈 잔치'가 부른 상대적 박탈감은 파업의 불씨를 당겼으며, 그 결정적인 원인은 경영진의 정무적 감각 부재였다. 사측은 직원들의 성과급 지급률(GI)은 축소하면서도, 정작 경영진 3명에게는 전년 대비 10배나 증가한 270억 원 이상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직원들에게는 "회사가 어려우니(혹은 출시가 지연됐으니) 고통을 분담하자"는 시그널을 보내놓고, 임원들은 역대급 성과급을 챙긴 사실은 직원들에게 박탈감을 안겼을 것이다. 이는 노조에게 "회사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직원에게 주기 싫은 것"이라는 강력한 도덕적 명분을 제공했고, 파업의 기폭제가 되었다.

개발진에게 약속했던 성과급 요율을 중국 성과가 거대해지자 30%에서 20%로 축소 통보한 것은 경영진의 신뢰 자산을 스스로 깎아먹는 행위였다. 사측은 "중국 출시 지연에 따른 불가피한 조정"이라고 해명했지만, 개발 초기부터 중국 시장을 목표로 야근을 감내해 온 직원들에게 이는 명백한 말 바꾸기로 받아들여졌다. 예측 가능한 보상 시스템 대신 회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보상 규모가 달라지는 고무줄 잣대는 조직 전반에 냉소주의를 확산시켰다.


5. 노조를 무너뜨린 유저의 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업이 남긴 가장 큰 시사점은 "노조도 유저를 이길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경영진의 명백한 실책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업은 '노사'와 '소비자(유저)'의 삼각 구도로 전개되면서 노조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특히 '던전앤파이터' 20주년 행사 취소의 책임론이 불거지자 유저들은 사측보다 노조에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노조 측은 "상황이 안타깝고 언제까지 멈춰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호소했지만, 게임을 서비스로 소비하는 유저들에게 노조의 파업은 "나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이른바 '황금 수갑의 딜레마(Golden Handcuffs Dilemma)'가 작동한 것이다. 높은 보상은 평소 인재 유출을 막는 '수갑' 역할을 하지만, 노사 분규 시에는 대중의 공감을 차단하는 '족쇄'가 된다. 경영진의 '200억 보너스' 논란에도 불구하고, "평균 연봉 2억 원을 받으면서 더 달라고 파업하냐"는 '귀족 노조' 프레임은 노조를 고립시켰고, 파업의 사회적 지지 기반을 무너뜨렸다.


6. 노노(勞勞) 갈등, 동료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파업의 마침표를 찍은 것은 사측의 탄압이 아니라 내부의 분열이었다. 파업은 네오플 분회가 소속된 상급 단체인 넥슨 지회의 대의원 회의에서 지회 해산이 가결되며 강제 종료되었다.

넥슨 본사나 타 계열사 노조원들의 냉정한 외면은 뼈아팠다.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을 받는 타 조합원들에게 네오플 개발자들의 'PS 제도화' 요구는 '그들만의 리그'로 비쳤을 가능성이 크다. 네오플 노조가 먼저 PS 제도화를 이루고, 넥슨 그룹 전체에 확산시킨다는 희망은 설득력이 부족했다.

더구나 네오플 노조는 자체적인 파업 동력이 부족해 넥슨 노조에 지속적으로 지원금을 요청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명분을 잃어갔다.

네오플 노조의 강경 투쟁이 그룹 전체의 협상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자, 넥슨 노조 대의원들은 결단을 내렸다. 이는 네오플 노조가 동료 넥슨 노동자들에게조차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할 명분을 제시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7. 상처뿐인 빈손, 명확해진 과제들




결국 최종 합의안에서 노조가 사활을 걸었던 'PS 제도화'와 '성과급 요율 복구'는 모두 무산되었다. 회사는 성과급을 시스템이 아닌 재량(스팟 보너스)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데 성공하며 판정승을 거뒀다.

하지만 이번 네오플 파업 사태가 남긴 흔적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번 사태는 IP의 자산 가치와 개발 노동의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을 포착해냈고,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개발자의 단기적 보상 욕구와 지속 가능성을 좇는 회사의 시각차를 드러냈다. 무엇보다 경영진의 정무적 감각 부재가 어떻게 조직의 신뢰를 무너뜨리는지, 그리고 게이머와 동료의 공감을 얻지 못한 투쟁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비록 파업은 멈췄지만, 게임업계의 노사 관계는 이제 막 거대한 성장통의 입구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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