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를린의 설명에 따르면 게르미날의 장남 데무트는 4년 전 가출하여 배를 탔다고 한다. 메르체리나 제국으로 가는 자렐린 상선에 견습 선원으로 승선한 데무트는 그 후 1년 만에 견습 딱지를 떼고 정식 선원이 되어 돌아왔다. 물론 게르미날과 패를린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항해를 그만 두기를 바랐지만, 데무트는 부모님의 반대에 굴하지 않았고, 게르미날과 패를린도 결국 데무트가 바닷사람이 되는 것을 허락했다. 데무트가 승선한 배가 라모기 항에 일 년에 4번씩 정기적으로 기항을 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2년 전에 비보가 전해졌다. 메르체리나 제국을 거쳐 라모기항을 지나 자렐린으로 돌아가는 중에 해적의 습격을 받아 데무트가 타고 있던 배가 침몰했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배가 전한 바에 따르면 제국의 식민지와 자렐린 일대를 주무대로 삼고 있는 노리시 해적단이었다고 한다. 노리시 일당은 자렐린 근해에서는 힘깨나 쓴다는 유명한 해적이었다. 두목인 노리시의 현상금은 만 골드에 달했다.
사망과 다름없는 데무트의 실종 소식에 패를린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게르미날은 데무트의 유품과 함께 전해진 보상금과 재산을 털어 데무트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의 사촌 형제들은 미친 짓이라며, 게르미날을 말렸지만 게르미날은 패를린과 이쉴라와 함께 데무트를 찾아 자렐린과 세나콘 왕국 근해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데무트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근해에서 데무트의 행방을 알 수 없자, 먼 바다까지 떠돌았다. 제국의 식민지로 향하던 중에 폭풍을 만나, 게르미날은 무인도에 잠시 기항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폭풍을 피해 들어간 해변의 동굴에서 숨겨진 장소를 발견한 게르미날은 패를린의 만류에도 그곳을 탐사하였고, 놀랍게도 보물이 가득 들어있는 상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연하게도 게르미날 일가가 기항한 섬이 이름 모를 옛 해적이 보물을 숨겨두었던 보물섬이었던 것이다.
지난 1년의 항해 동안 재산을 거의 소모한 게르미날은 그 보물을 처분하여 자본을 다시 마련한 후에 항해를 계속하기로 하였다. 라모기까지 안전하게 보물들을 가져온 게르미날은 보물에 대한 소문이 나면 가족들의 신변이 위험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왕국 법에 따라 보물의 절반을 영주에게 바치기로 하였다. 행정관을 하고 있는 말론의 친우를 통하여 라모기의 영주 디르미로 데 라모기 자작에게 절반을 바치고 나머지 절반의 보물을 처분한 게르미날은 그 날로 바로 다시 출항을 하려 하였으나, 라모기 자작의 호출에 라모기 성으로 향하였다. 알고 보니 약 만 골드에 달하는 보물을 바친 게르미날에게 준남작의 작위와 라모기 인근에 봉토까지 하사한 것이다. 말론의 친우의 말에 따르면, 보물의 액수도 액수이지만. 게르미날이 바친 재물 중에 라모기 자작 가문이 찾고 있던 보물이 있었다고 했다.
“정말 놀랍구만....허면, 데무트는?”
흥미진진한 패를린의 이야기에 숨을 죽이고 듣고 있는 로자레일과 마르텡과는
달리 말론은 데무트의 소식을 물었다.
“그 이후로는 바다에 나가보지를 못했습니다. 1년 동안의 항해로 체력이 다했던지,
제가 한동안 크게 아팠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 고개를 저으며 말한 게르미날은 목이 탔던지 물을 한잔 들이키고 이어서 말한다.
“병이 다 나은 후에는 나이를 생각한 부인의 만류에 사람을 써서 수색을 하고 있지만,
직접 감시를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 영 믿음이 가지를 않습니다.”
“그랬구만.... 노예교역소는 찾아보았나? 살아남았다면 필시 그곳을 거쳤을 터인데.”
“물론입니다. 하지만...”
게르미날은 말론의 물음에 마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다. 그가 보기에도 데무트가 살아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어쩔 셈인가? 앞으로도 계속 찾아야지?”
말론도 데무트가 죽었다고 여겼지만, 자식을 아끼는 어버이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고
그의 손자이기도 하기에 알면서도 물어본다.
“예, 그 아이가 살아서 노예 생활을 한다고 생각을 하면....”
게르미날은 이번에도 말을 마치지 못한다. 옆에서 이쉴라의 눈물을 닦아 주는 패를린의 마음도
마찬가지 인듯하다.
“그래, 나도 그 아이가 살아있으면 삶에 여한이 없겠어.”
잠시간 침묵이 흐른다. 그 분위기가 마치 데무트를 위해 묵념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 마르텡이지만, 살아있기를 바라는 게르미날 일가나 말론 앞에서 입 밖에 낼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생각도 했다.
“저, 말론씨,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로자레일 선장님이 데무트 군의 수색을 맡는 것입니다.”
“오! 그거 좋은 생각이구만, 여차하면 나도 그 배에 타겠네!”
마르텡의 말에 말론은 손뼉을 치며 기뻐한다. 그가 지켜본 로자레일은 심성이 곧고
무예가 출중한 훌륭한 청년이었다. 비록 로자레일의 출신성분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인물이라고 여긴 것이다.
“아버님이 그리 말씀하신다면 저도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배를 운영하고 있는 선장이 과연 납득을 할런지가 문제이군요. 이분이 나이도 어리고 이름도 없다보니...아,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니까요.”
로자레일을 폄하할 의도는 아니었으나 말을 하다보니 로자레일을 낮추는 결과가 되었기에 게르미날은 로자레일에게 사과한 것이다.
“선장이 누구인데 그러나?”
“제 이종사촌 동생인 쥐로크입니다.”
“그거 곤란하구만, 계약이야 계약금을 물고 파기하면 그만이지만, 식구들끼리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니.”
게르미날의 대답에 말론도 수긍한다는 태도이다.
“그래도 제가 밀어붙이면 어떻게든 될 것입니다.”
말론이 실망한 눈치이자, 게르미날이 얼른 말한다. 데무트와 마찬가지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장인이 살아서 돌아왔는데, 그런 장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저 때문에 형제간의 의가 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로자레일의 말에 게르미날이 고심한다. 말론의 추천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의 이종사촌 쥐로크를 납득시키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자레일이 저렇게 말한다는 것은 로자레일이 거절의 뜻을 비춘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게르미날의 생각이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패를린이 운을 띄우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한다.
“목장 근처에 있는 동굴의 고약한 요정 때문에 일꾼들이 애를 먹고 있어요. 어차피 사람을 고용해서 처리하기로 한 일이니, 그들의 지휘를 로자레일 군에게 맡기고, 일이 해결되면 그 일을 들어서 쥐로크 씨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죠!”
“좋은 생각이구나!”
“음.”
13년 만에 귀환한 아버지의 뜻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한 패를린의 의견에 모두가 긍정의 표시를 한다. 게르미날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론은 빙그레 웃으며 기뻐한다. 이번에는 모두의 시선이 로자레일에게 집중된다. 그러나 로자레일은 의외로 고민스런 표정이다.
“알겠습니다. 그 일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리고 일단은 저와 여기 이, 마르텡 둘이서 해결해보도록 하고, 곤란한 일이 생기면 그 때 지원을 부탁 드리겠습니다.”
로자레일이 마르텡을 가리키며 말한다. 로자레일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은 표정이지만,
마르텡은 마치 일이 해결된 마냥 벌써부터 만족스러운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