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시미이나리 신사에서 나와 향한 곳은 료안지(龍安寺, 용안사)와 닌나지(仁和寺, 인화사)입니다. 이 두개의 절 중 닌나지는 1945년 일본의 항복에 얽힌 스토리가 하나 있고, 당시 일왕이었던 히로히토가 주지스님이 될 뻔했던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료안지입니다.
료안지의 이런 정원이 마음에 들어, 일본의 정원 리스트가 담겨 있는 책을 료안지에서 덜컥 하나 구매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가끔 들춰보며, 아 여기도 가줘야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닌나지입니다.
1945년 일본의 패망이 이제 일본 군부와 정계에서도 가시화되던 시기, 일본은 항복 조건을 연합군측에 다음처럼 제시합니다. 천황제의 유지, 한반도를 식민지로 남겨줄 것, 연합군이 일본 본토에 들어오지 않고 일본 스스로의 무장해제 및 자체 전범재판 등입니다. 항복 조건인지 아니면 정전협상에서 블러핑을 날리는 것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의 내용이며, 마지막까지도 한반도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쥐고 있으려는 집착이 얼마나 강했는지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천황제의 유지에 이 닌나지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천황제를 유지하되, 현 일왕은 퇴위하여 승려가 되고 다른 사람(아들이든 아니면 동생이든)이 일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일왕이 승려가 될 경우 들어갈 사찰로 선정된 곳이 바로 이 닌나지였고 그래서 닌나지의 개보수에 관련된 예산을 편성하기도 했습니다. 일왕이 닌나지로 올 경우, 주지스님의 자리를 일왕이 맡는 것도 논의가 되었습니다.
이게 과거 전국시대나 막부시대의 사고방식인데, 당시에는 영주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책임을 지거나 밀려날 경우 승려가 되어 출가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생을 마치는 경우도 있었고, 상황에 따라 환속하여 다시 복귀하는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또 일왕의 자리에서 물러나 상왕이 되어 막후에서 움직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결국 일왕이 출가하여 닌나지로 들어간다는 것은, 연합군의 생각이나 정세와는 동떨어지게, 본인들의 전국시대적 사고방식으로 연합군을 상대한 것입니다. 이렇게 혼자 매몰되어 있던 주관적인 사고방식이 결국 전쟁과 항복으로 이어지는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당연히 연합군은 닥치고 무조건 항복을 고수했고, 결국 원폭 2발과 함께 항복이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