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지금부터 신랑 청야랑군과 신부 하루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신랑 입장이 있겠습니다. 신랑 입장!"
사회자의 목소리에 맞추어 행진곡이 연주 되며 한 남자가 조명을 받았다. 청야랑. 내가 사랑하고 한달 전까지만해도 내 남자친구였던 사람. 그 사람이 천천히 발걸음을 떼며 입장하기 시작했다.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고, 모든 것을 거머쥔 듯한 표정에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개새끼.."
나지막한 나의 목소리는 그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 묻혀 버렸고, 난 그저 고개를 떨어뜨리며 조그맣게 박수를 쳤다.
"아주 행복해 보이는 오늘의 신랑이네요. 그럼 이제 오늘의 주인공! 신부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신부 입장!"
꽃처럼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한 여자가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의 그녀. 그런 그녀를 이제 그녀만의 것이 될 남자는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사람들은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에 넋을 잃은 모습이었다. 하루. 달하루. 바로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여겼던 나의 친구였다.
그렇다. 난 지금 내 전 남자친구와 내 것을 뺏어간 소중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한 것이었다. 둘의 행복한 모습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난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다.
"꽃비야. 나 결혼해"
"응? 정말? 축하해! 넌 나한테 한 번도 보여주지 않고 결혼한다고 그러니. 이게 친구야? 쳇"
"응.. 그렇게 됐어. 다음 주니까 꼭 참석해줘"
"그래! 헤헤."
그렇게 참석하게 된 결혼식에서 난 그 둘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결혼식장에 들어선 순간 둘의 사진을 보고 난 심장이 멈춰 버릴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난 크게 숨을 들이 쉬고는 하루가 자신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실로 갔었다.
"야. 하루"
"응. 왔어?"
"너.."
"응?"
"아냐.. 축하해.."
"고마워"
나는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알게 된 후로 단 한 번도 나와 같은 학교가 아닌 적이 없었으며, 언제부터인가 내가 가진 것들을 야금야금 뺏어가던 하루. 하지만 난 그런 그녀의 그런 모습조차도 사랑할 만큼 좋아하는 친구였기에 다 이해하고 지내왔다. 그렇지만 그녀가 내 남자친구까지도 뺏어 갈 거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빠"
"응. 준비 다 됐어?"
"물론이지. 여기 내 친구 꽃비야"
"꽃..비..?"
자신의 신부를 보기 위해 들어 왔던 그는 나의 모습에 꽤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래봤자 나에게는 위선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날 모르는 척 하는 그이. 그래.. 넌 그런 남자였지.
"축하드려요."
"감..감사합니다.."
"행복하시길 바랄께요"
"네.."
"아.. 꽃비야. 우리 신혼여행은"
난 그 이후로 기억이 없었다. 이미 너무 큰 충격을 받았기에 아무 말 할 수도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난 예식장에서 그 둘이 결혼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고, 다시 찾아오는 슬픔과 부끄러움에 어디에든 숨고 싶었다. 난 조용히 가방을 들고 일어나 아무도 모르게 그 둘을 뒤로 한 채 빠져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내게 너무도 멀고 험난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흔들렸고, 난 사람들의 어깨에 부딪히며 비틀거렸다. 난 너무나 힘이 들어서 잠시 건물 옆에 주저앉았고, 옆에 있던 사람 모양의 입간판을 붙잡고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 한참을 울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너무 울어서 아름답게 칠해 놨던 마스카라는 번져서 귀신처럼 보였고, 머리는 다 헝클어져 있었다. 그리고 날 쳐다보며 수군대는 사람들이 마치 남자친구를 친구에게 뺏긴 바보라고 놀리는 듯해서 난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 갔다. 건물 안에 있던 화장실을 찾아서 정신없이 세수를 하고 거울 속에 있던 나를 바라 봤을 때 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고, 그 자리에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래! 이 나쁜 년놈들! 어디 잘 먹고 잘 사나 두고 보자! 아니지. 행복하게 살아라! 내가 더 행복해지고 말거야!!"
화장실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지르고 나니 왠지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 풀리는 듯해서 좋았다. 화장실에서 나와서 내가 잡고 울었던 입간판을 보았다. 유니폼을 입은 예쁜 여자가 웃으면서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여행 떠나 보는 건 어때요?"
난 나도 모르게 "네" 라고 대답하고는 여행사 안으로 들어갔다. 바보같이도 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본 적도 영어도 제대로 못하던 나는 그렇게 외국으로 여행을 가기 위해 여행사로 들어간 것이다.
"어서 오세요. 저희 망망 항공사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전 망망 항공사의 체리라고 합니다. 가시고자 하는 여행 지역이 어디세요?"
"아. 그게. 음."
난 목적지를 묻는 여직원의 말에 생각해 둔 것이 없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주위를 둘러보았고, 내 눈에 보인 것은 커다란 일본 지도였다.
"일본이요. 내일 당장 출발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전 11시 10분 도쿄로 가는 KE001편 괜찮으시겠어요?"
"네. 그걸로 해주세요."
난 여행사에서 나와서 내 손에 들려진 비행기 티켓을 바라보았다.
"하.. 이게 뭐하는 짓이지.. 아냐! 이왕 이렇게 된거 신나게 즐겨보자!! 힘내라! 꽃비!"
그리고 난 7월 31일 현재. 난 일본으로 가는 KE001편을 타기 위해 공항으로 나왔다. 좌석 번호 A46. 그렇게 나의 일본 여행은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