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스놀이터

전체보기

모바일 상단 메뉴

본문 페이지

[일퀘] KE001 (5)

아이콘 달콤한화중씨
댓글: 14 개
조회: 96
2011-02-21 13:57:49

 

 

# 5 그렇게 만나다.

 

 

<그 여자의 이야기>

"아.. 그러니까.. 음.. 우선 출국 심사를 해야 하는건가.. 아오.. 이 나이에 난 비행기도 한번 못 타보고 뭐 한거지.."

 

처음으로 타는 비행기. 비록 좋은 이유에서 타게 된건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설레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였다. 어젯밤에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체크를 하고 외우다가 잠을 설친데다 공항 안에는 슈퍼도 없다는 다른 친구 말에 속아 밖에서 이것저것 먹고 와서인지 배도 불러 졸리기까지 했다.

 

"아.. 괜히 원피스를 입었나.. 트레이닝 복 입은 사람도 있고.. 나만 괜히 멋 낸 건가.."

 

난 왠지 모르게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는 티를 내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하얀 원피스에 긴 생머리. 왠지 모르게 소녀 같은 느낌으로 처음으로 여행 가는 설렘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데, 너무 티가 나는 거 같아서 민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우와.. 여기가 면세점이구나.."

 

양쪽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는 면세점의 모습에 난 왠지 흥분 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상냥하고 친절해 보이는 직원들이 환상에 빠져 버린 나에게 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아직. 음. 한 시간정도 남았으니까 조금 둘러 보는 건 괜찮겠지?"

 

난 그렇게 면세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남자의 이야기>

공항. 3년 전 그녀를 잃고 그녀를 묘지에 묻은 후 돌아오던 이후로 비행기를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일본으로 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후.. 더 커지고 사람은 많아졌구나. 그녀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쓰려오는 느낌에 난 잠시 수많은 사람 속에 서서 내 가슴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그녀가 나에게 오라고 했기에 난 가야만 했다. 그녀의 기일 날 꼭 그 자리에 가서 그녀가 나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 하고 싶었다. 난 잠시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그때였다. 저 멀리 내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미.. 미야?"

 

그럴 리가 없었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너무나 좋아하던 하얀색 원피스. 그녀가 사고로 떠나가던 그 날에도 비 오는 날에는 더 하얀게 입고 싶다면서 입고 있었던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사람이 있었다. 그녀와 같은 긴 생머리. 분명히 그녀였다.

 

"미야야!"

 

난 사람들을 헤치면서 뛰어 갔다. 휴가 기간이 시작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녀를 쫓아가기 위한 나의 몸부림은 계속 막혔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눈물까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녀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맞을 거라고 생각 했다. 분명히 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가서 사과를 해야 했다. 미안하다고. 난 미야가 죽은 줄만 알았다고.

면세점으로 뛰어 갔을 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하.. 젠장.. 그녀가 있을 리가 없잖아.."

 

난 허탈감에 잠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소리 내어 펑펑 울고 싶었다.

 

"미야. 조금만 기다리렴. 내가 갈게."

 

난 화장실에 가서 조금만 울기로 했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조금씩 울기로 했다. 그녀가 속상해 할 것 같았기에 그녀를 만나기 전에 조금씩 쌓아 놓은 슬픔을 내보내기로 했다. 그렇기에 조금만 울기로 했다.

 

 

<그 여자의 이야기>

 

"아.. 아까 너무 먹었나.."

 

왠지 모르게 장이 쓰리고 아팠다. 그가 곁을 떠난 이후에 매일 같이 술을 마셨고 잠도 제대로 못 잤기에 아팠던 속이 더 아픈 것 같았다. 나쁜 놈 때문이 아니라고, 내가 너무 먹어서 그런 거라 스스로를 위로 했지만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에이.. 면세점도 다 못 봤는데.."

 

면세점 옆에 있던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느껴졌다. 시계를 보니 11시였다.

 

"11시..?"

 

갑자기 30분전부터 탑승을 시작한다는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게다가 이쪽은 내가 가야 하는 게이트랑 멀리 떨어져 있는 곳. 전력 질주! 그것만이 답이었다. 아마 사람들은 날 보면서 미쳤다고 말 할 것이다.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나름 이쁘게 생긴 여자가 미친 듯이 뛰어 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 미쳐!"

 

고등학교 체력장 이후에 이렇게 열심히 뛰어 본적이 있을까? 난 정말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뛰었다. 조금만 정신 차리고 있을 것을 그랬다. 이게 다 내 속을 아프게 한 망할 청야랑 그 자식 때문이었다.

 

"여기! 여기 티켓.. 헉..헉.."

"아.. 즐거운 여행 되세요"

 

아름답게 미소 짓는 승무원을 뒤로 하고 난 겨우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아마 조금만 늦었으면 못 탔을 것이다.

 

"손님. 자리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여기요"

"A46은 이쪽입니다. 안으로 쭉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사요."

 

난 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륙 준비를 하기 위해 앉아 있는 좌석들을 지나서 내 자리를 찾았다. 자리를 찾았을 때 내 자리 옆에는 잘생긴 남자가 앉아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고, 난 어쩔 수 없이 창가 자리인 A46에 앉기 위해 그 남자에게 민폐를 끼쳐야만 했다.

 

"저기요.."

 

 

<그 남자의 이야기>

 

비행기에 타서 잠시 책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라는 책이었다. 한 인간이 사후 세계에 대한 신비를 풀어 간다는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난 이 책을 그녀만큼이나 좋아 했다.

 

"이런 기계가 있다면, 난 그게 아무리 비싸도 사겠지. 널 만나러 가야 하니까 말이야. 넌 어디에 있을까. 넌 분명 천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천사가 되어 있겠지. 넌 마음씨도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니까.

 

책을 읽고 있으니 이제 이륙을 할 거라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늦었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도 그랬었다. 일본 유학을 가던 날, 난 동승 했고 그녀는 날 먼저 태운 후에 화장실을 갔다가 늦어서 비행기를 놓칠 뻔 했으니 말이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사람 많은 공항을 열심히 뛰어서 겨우 비행기를 타고 걱정하던 나에게 가볍게 윙크를 하며 금세 잠이 들었던 그녀가 왠지 떠올랐다. 분명 자리는 만석이었고 창가 쪽을 예약한 사람도 어디선가 열심히 뛰고 있을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떨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를 3년 만에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미안함도 들었지만 그만큼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난 떨리는 마음을 잠시 안정시킨 후 다시 독서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저기요.."

 

날 부르는 것일까. 난 잠시 책에서 눈을 떼고 내 옆 통로에 보이는 발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올라가던 나의 시선은 그녀의 원피스에서 한번 멈추었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난 망치로 내 머리를 누군가가 두들기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미야..?"

 

그녀가 그곳에 서서 날 보며 웃고 있었다.

Lv70 달콤한화중씨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지금 뜨는 인벤

더보기+

모바일 게시판 리스트

모바일 게시판 하단버튼

글쓰기

모바일 게시판 페이징

최근 HOT한 콘텐츠

  • 와우
  • 게임
  • IT
  • 유머
  • 연예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