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그녀를 위해서라면..
"미야?"
"네? 아닌데요."
"아.."
"저 잠시 자리 좀."
"아.. 네.."
꽃비는 린트의 눈빛에 잠시 두근거렸지만 자리에 앉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잠시 비켜 달라고 하였고, 린트는 그런 그녀의 말에 빠르게 일어나 그녀가 지나갈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린트는 힐끔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옆에 앉은 그녀는 미야와 꼭 닮은 모습이었다.
"왜요?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아..아뇨.."
꽃비는 자신을 바라보는 린트의 눈빛을 느끼고는 린트를 바라 봤다. 그는 잘 그려진 그림 같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웠던 건 바로 그의 눈이었다. 그의 눈은 자신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금새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저.. 혹시 뭐.. 할말이라도.."
"아닙니다. 아녜요."
린트는 미야라고 다시 부르고 싶었지만 미야가 아닌 것을 알기에 멈춰야만 했다. 그는 죽은 미야에게 왠지 모르게 미안했다. 마치 자신이 미야라는 사람을 잊기 위해 대신할 누군가를 찾으려고 한게 아닐까 싶어서 미야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마침내 비행기는 이륙을 하였다. 꽃비는 연신 점점 작아지는 집들을 보며 조그맣게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린트는 계속 힐끔거리며 보고 있었다. 어느 정도 고도에 올라서자 승무원이 점심 식사를 제공하기 위하여 카트를 끌고 나왔다.
"손님. 비빔밥과 고기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아. 전 비빔밥이요. 그리고 미야도 비빔밥 먹을.. 아.."
린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미야라고 부르며 그녀가 늘 먹던 비빔밥으로 주문을 하려 하다 멈칫 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했네요"
"아녜요. 저도 비빔밥 주세요"
꽃비는 남자가 자꾸 자기를 미야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게 이상했다.
"저기요."
"네!"
꽃비가 자신을 부르자 자신도 모르게 크게 대답하고만 린트였다.
"미야라는 분이 저랑 닮았나요?"
"흡.. 컥.."
린트는 그녀의 질문에 당황하여 먹던 것이 목에 걸려 한참을 기침을 했다. 기침이 아니었다면 그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한참 곤란하였을 것이다. 그는 기침을 하고 나서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그를 도와 주는 손길이 있었다.
"어머. 이게 누구야?"
"아니.. 너.. 하루..?"
하루. 꽃비의 남자를 뺏어간 세상에서 가장 친한 척 했던 친구인 하루였다.
"너.. 어떻게.. 여기.."
"내가 어제 얘기 안 했나? 아닌데.. 얘기 했을 텐데. 우리 신혼여행으로 일본 가기로 했거든"
"젠장.."
꽃비는 고개를 창가로 돌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욕을 했다. 인연도 정말 이렇게 지독하게 더러운 인연이 없었다.
"우리는 일등석이라서 원래 여기 지나다닐 일은 없는데 그냥 운동이나 할까 해서 돌아 다녔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네? 좋다."
"으응.. 좋네.."
꽃비는 정말 뛰어 내릴 수만 있으면 비행기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다. 물론 일본에 가서 마주칠 일은 없겠지만, 같은 비행기 안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아까 보다보니까 이 분이랑 아는 사이인거 같은데.. 이 잘생긴 남자 분은 누구야?"
하루는 꽃비 옆에 앉은 남자에게 더 관심이 가고 있었다. 친한 것 같기도 했고, 뭔가 약간 어색한 것 같기도 했지만, 남자가 꽃비를 바라보는 눈빛이 사랑하는 사람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것 같아서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어? 이 분?"
"응. 혹시 남자친구? 에이. 설마 꽃비가 이런 멋진 분을 만날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하지만 말이야. 풉"
꽃비는 자신을 깎아 내리는 듯 한 그녀의 말에 갑자기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맞아. 내 남자친구야."
"뭐?"
"네?"
꽃비의 말에 당황한건 하루뿐만이 아니었다. 린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 남자친구 맞다고."
"어..어머.. 너 능력 있구나?"
"응. 몰랐어?"
"으응.. 소개 좀 시켜 주지 그래?"
"아. 내 남자친구 이름은.."
꽃비는 빠르게 린트가 가진 물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가 들고 있는 책뿐이었다. 이때, 가만히 있던 린트가 조용히 자신이 들고 있는 책의 옆부분을 그녀가 잘 보이게 들어 주었다. 영어로 쓰여진 그의 이름이 보였다.
"린트라고 해."
"린트씨.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머. 굉장히 젊어 보이시는데. 혹시 꽃비랑은 몇 살 차이..?"
"아. 그게."
이번에는 린트가 알 수 없는 문제였다. 그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꽃비를 바라보았고, 그때 꽃비가 옆에서 갑자기 출입국 카드를 작성하는게 보였다.
"제가 2살이 더 많습니다. 꽃..비가 좀 어려 보여서 나이 차이가 더 많이 나는 것 같지만요."
"어머. 제가 보기에는 린트씨가 훨씬 더 어리고 아. 까. 워. 보이는데요?"
"감사합니다."
하루는 왠지 기분이 상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출입국 카드를 보란 듯이 작성하는 꽃비를 보며 의심을 하였고, 린트는 그런 그녀의 눈빛을 보고 안 되겠다 싶어 꽃비의 손을 잡았다. 꽃비는 갑자기 그가 손을 잡자 놀랐지만, 하루가 있기에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오히려 대담하게 린트의 팔짱을 끼었다. 하루는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고 린트를 보며 물었다.
"혹시 두분 무슨 계획 잡고 오신건가요?"
"아뇨. 뭐 특별히 계획은 없는데요."
린트는 괜히 계획이 있다고 얘기하면 옆에 앉은 꽃비가 곤란할 것 같아서 없다고 대답 하였다. 어차피 그도 돌아오는 날 미야가 잠들어 있는 곳을 가는 것 말고는 특별한 계획을 잡은 것은 없었기에 거짓은 아니었다.
"어머. 그래요? 그럼 꽃비야. 우리 신혼여행이긴 한데 같이 다닐래?"
"뭐? 아냐. 어떻게 그래."
"아냐. 그이도 허락할거야."
"그..이.."
"응. 청야랑. 우리 그이 말이야."
"그..그래.."
"그럼 이따 나리타 공항에서 내려서 만나! 그때 봐요 린트씨."
"네..네.."
하루는 기분이 미묘하게 상한 듯 빠르게 사라졌고, 그때가지 팔짱을 끼고 있던 꽃비와 린트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저.."
"네?"
"팔 좀.."
"아.."
꽃비는 서둘러 팔을 빼내었고 린트를 보며 말했다.
"죄송해요.."
"아.. 아닙니다.."
"제가 좀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되버릴 줄은 몰랐는데.. 아.. 정말 죄송합니다.."
"아뇨.. 제가 괜히 맞장구를 쳐서.."
"그건 오히려 제가 감사할 일이죠."
"뭐 감사까지.."
"아.. 근데 어쩌죠..?"
"그냥. 뭐.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 돌아갔다고 하시는 게.."
"그게.. 어휴.. 그래야 할까요.."
"아니면. 자세하게 왜 그러시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린트는 꽃비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미야와 꼭 닮은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꽃비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털어 놓았고, 린트는 한참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어떻게요?"
"저도 일본에서 열흘이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꽃비씨와 마찬가지요."
"그렇군요."
"제가 그 동안 꽃비씨의 남자친구 역할을 해드리겠습니다."
"네? 어째서?"
"그냥.. 그러고 싶어졌거든요.."
"그럼 정말 감사하죠!"
"대신.."
"네. 말씀하세요."
"열흘째 되는 날. 전 가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아. 그럼 그 날 일이 생겨서 다른데로 가신다고 할까요?"
"네."
"어디를.. 가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만나야만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밖에 말씀 못 드리겠네요."
"네. 알겠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 말로 이런 부탁 드려서 죄송하고.. 잘 부탁드려요.."
그들의 비행기는 그렇게 일본에 도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