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와우를 즐기기 시작한건 리치왕의 분노 얼음왕관 성채 막 열리고부터였을겁니다. 당시 저는 이미 와우를 하고 있던 친구와 같이 하겠다는 생각으로 와우를 시작했고, 거짓말 같이 제가 시작하고 난 뒤 친구는 와우를 접어 저 혼자 게임을 하게 됐죠. 그 당시에는 듀로탄 얼라이언스에서 노움 마법사를 주력으로 키우고 있었고 공격대는 꿈도 꿀 수 없는 실력이었기 때문에 한 두 단계 낮은 낙스라마스 불멸자 불사신 업적이나 십자군 공격대만 간간히 돌다가 서서히 제 기억 속에서의 와우는 잊혀지고 그렇게 처음으로 와우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두번째로 와우를 다시 시작하게 된 건 대격변 초, 여자친구가 알고보니 와우를 하고 있더라...... 에서 시작이었죠. 당시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서 집에서 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던 차에 잘됐다 싶어 굴단 호드에서 언데드 마법사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노움 마법사 하다가 언데드 마법사 하니 귀여움을 잃고 간지를 얻었더란 말입니다. 여자친구와 같이 하는 와우는 어찌나 재미있던지 게임 실력도 늘고 게임 지식도 늘고 계정 결제비도 늘고...... 처음 와우를 접했을 때는 꿈도 꾸지 못한 제 난이도의 공격대도 진행해보고 신났었습니다. 하지만, 여자친구라는 그 환상의 존재는 언제나 그렇듯 신비롭게 왔다가 잔인하게 떠나갔습니다. 여자친구 때문에 와우를 시작했는데, 여자친구라는 와우라이프의 구심점이 사라지니 더 이상 와우가 손에 안 잡히더라구요. 업적도 많이 했는데... 형상변환 나와서 신비술사 세트도 다 모았는데... 저도 못 먹은 순혈 불꽃매를 여자친구 사준다고 골드까지 퍼부어가며 그렇게 와우를 했었는데... 그렇게 두번째 와우 인생도 끝이 났습니다.
세번째로 와우를 다시 시작하게 된 건 2013년 2월, 제 생일이었습니다. 평소에 생일을 챙기거나 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만 올해는 나에게 선물을 주자, 판다렌도 키워보자, 가로쉬 헬스크림 이 맷돼지 놈도 잡아보자! 해서 다시 와우에 손을 댔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긴 했지만 이번엔 다른 누군가가 원인이 되어서가 아닌, 제 스스로의 의지로 와우를 다시 시작하게 됐고, 스스로의 의지로 시작한만큼 어느 때보다 의욕 넘치고 재미있게 시작했습니다. 전쟁 서버인듯 전쟁 서버 아닌 전쟁 서버 같은 아즈샤라 호드에서 오크 죽음의 기사를 주력으로 키웠습니다. 남자가 한 번 와우를 잡았으면 영웅 직업을 한번은 해봐야 하는거 아니냐며 시작한 죽음의 기사. 판다렌을 너무너무 해보고 싶었지만 역시 판다렌은 수도사 말고는 별로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판다렌은 고이 접어두었죠. 이번엔 업적 게이가 되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벌레와 해충을 잡고, 동네마다 돌아다니면서 그 동네 명산품 물고기들도 낚시 해보고, 인스턴스 던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업적한답시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그 때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고비가 찾아왔으니... 왜 하필 디아블로가 그 때 나왔을까요... 디아블로를 잡느냐 가로쉬를 잡느냐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난 듈 돠" 가 가능하신 분은 모르시겠지만 전 그게 참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가로쉬를 코 앞에 두고 악마사냥꾼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세월은 흘러흘러 저에게도 진짜 사랑이 찾아오고,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 뜻을 꺾지 않고 200만원으로 단촐하게 신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결혼 이전과 결혼 이후의 차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산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내 권리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아내의 행복을 우선시하게 됩니다. 물론 그건 참 행복한 일이고요. 그 중에 가장 많이 고민했던 건 '부부가 취미 생활로 할 수 있는 것' 이었습니다. 역시 취미 생활은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특강이지! 했습니다만, 그건 배울 때는 재미있는데 평소에는 할만한 게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와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썼던 아이디를 캐릭터만 새로 만들어가며 사용했다면, 이번엔 아내와 아이디도 새로 만들어서 와우를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 쌓았던 업적, 날렸습니다. 탈 것, 날렸습니다. 애완동물, 날렸습니다. 골드...... 날렸습니다. 새 마음 새 뜻으로 아내와 즐겁게 게임하고 싶어서, 와우에 대한 모든 기억을 아내와 공유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에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와우 시작 전에 아내와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두 시간 연속으로 진행해야 하는 거 하지 말기(공격대라고 쓰고 공격대라고 읽습니다.). 가장은 접니다만 대장님은 아내이기 때문에 군말없이 약속했습니다. 공격대 그런거 뭐 1시간 59분에 클리어하면 되는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지금은 공격대 찾기나 지구 별로 진행하는 일반 난이도 공격대 정도만 재미있게 즐기고 있습니다. 대신 탈 것 모으기랑 평판게이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내일 점쟁이 조합만 확고 찍으면 인기인 칭호 받아요~.
자서전, 회고록 같이 주절주절 써내려봤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런저런 추억이 많았습니다만 모든 추억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 전 언제나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며 게임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리 때가 좋았지, 불성 때가 좋았지, 리분 때가 좋았지, 격변 때가 좋았지?, 등등 과거를 추억하시는 분들 많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이전 확장팩 때의 낭만이 참 멋지고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이전 확장팩의 컨텐츠를 통칭하는 단어로 낭만을 채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와우를 다시 접할 때는 이전의 낭만이 그리워서는 아니었습니다. 바로 지금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그 당시의 그 모습이 좋아서 와우를 시작했었고, 지금은 제 아내와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와우를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이라고 지칭하는 이 시간도 과거가 되고 추억이 되겠지만, 이 시간을 잡고 싶어서 와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시간을 접하고 싶어서 와우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블리자드에서 양질의 와우 컨텐츠를 계속 내놓아주어야 하죠. 여태까지는 그 것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와우가 몇 년이 더 지속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와우가 지속적으로 서비스 되고 있는 동안은 언제나 저에게 새로운 게임일 것이고 추억을 선사해 줄 수 있는 게임입니다. 물론 언제 또 다시 접었다 폈다 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고마워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