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엔씨는 왜 한국에서 호라이즌 신작을 공개했을까?

칼럼 | 이두현 기자 |
게임쇼에는 일종의 흥행 공식이 있다. 과거에는 미국 E3가 그 중심이었고, E3의 몰락 이후에는 독일 '게임스컴'이 신작 공개(World Premiere)의 정답으로 떠올랐다. 도쿄게임쇼와 차이나조이는 자국 시장의 색채가 짙은 탓에,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대작들은 8월 독일 쾰른으로 향하는 것이 불문율이 됐다.

반면, 한국의 '지스타'는 점차 글로벌 트렌드에서 소외되는 '외딴섬'이 되어가고 있었다. 냉정히 말해 국내 게임사조차 사활을 건 글로벌 기대작의 첫 공개 장소로 한국이 아닌 해외를 택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 세계 시장을 정조준해야 하는 타이틀의 특성상, 마케팅 파급력과 효율을 따지면 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으로 여겨진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엔씨소프트의 행보는 튀었다. 소니의 대표 IP를 활용한 신작 '호라이즌 스틸 프론티어스'를 독일도, 미국도 아닌 한국 부산에서 최초로 공개했기 때문이다.

'호라이즌' 시리즈는 전 세계 3,8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대형 IP다. 하지만 콘솔 불모지인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팬덤이 약하다. 엔씨가 마케팅 효과와 글로벌 파급력만을 고려했다면, 당연히 8월 게임스컴 무대를 밟았어야 했다. 파트너사인 소니(SIE)조차 의아해했을 정도다.

지스타 현장에서 만난 이성구 엔씨소프트 부사장은 이 '비효율적인 선택'의 배경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소니(SIE) 측에서 '당연히 게임스컴에서 첫 발표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더군요. 하지만 제가 그냥 지스타에서 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한국이 호라이즌의 거대 팬덤을 보유한 국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엔씨가 이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는 걸, 우리 한국 이용자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이성구 엔씨소프트 부사장, 지스타 인터뷰 中

이는 최근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고 금의환향하겠다는 여타 게임사들의 전략과는 정반대되는 행보다. 비록 시장 규모는 작을지라도, 엔씨소프트의 뿌리인 한국 이용자들에게 변화의 의지를 먼저 검증받겠다는 '정공법'인 셈이다.

엔씨소프트는 오랫동안 '리니지 라이크'의 원류라는 비판을 받았다. 돈이 되는 성공 공식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지적은 뼈아팠다. 하지만 되짚어보면 지난 4년간 엔씨는 이른바 '리니지류' 게임을 내놓지 않았다.

경쟁사들이 우후죽순 '리니지 라이크'를 쏟아내는 동안, 오히려 엔씨는 쓰론 앤 리버티(TL), 아이온2, 신더시티 등 기존 문법과 다른 장르와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해왔다. 이번 '호라이즌' 신작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이성구 부사장은 인터뷰 자리에서 "그간 성공 방식에 취해 안일했던 점"을 사과하며 변화를 약속했다. 말뿐인 사과가 아니라, 글로벌 대형 IP 신작을 안방인 지스타에 먼저 가져오는 행동으로 그 진정성을 증명하려 했다.

올해 지스타는 엔씨소프트에게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신작을 소개하는 자리를 넘어, 돌아선 국내 팬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시험대였기 때문이다. 엔씨가 보여준 이번 '고집'이 과거의 위상을 되찾고, 나아가 국산 게임의 글로벌 확장에 기여하는 결과로 이어갈 수 있을지 지켜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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