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리자드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한밤' 확장팩을 출시하면서 게임 클라이언트 API를 대폭 제한했다. 수년간 레이드 공략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 온 애드온 '위크오라(WeakAura)'가 사실상 무력화된 것이다. 위크오라 개발팀은 한밤 출시를 앞두고 해당 확장팩용 개발을 공식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블리자드는 이 결정의 취지를 분명히 밝힌 바 있다. 한밤 출시 전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언 해지코스타스 시니어 게임 디렉터는 "모든 플레이어가 동일한 수준의 도구를 가지고 전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으며 "가장 뛰어난 실력과 협동을 가진 플레이어가 승리하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복잡한 애드온 설정이 신규 유저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도 인정했으며, 이번 제한이 그 장벽을 허무는 데 기여할 것이라 강조했다.
이 결정에 대한 커뮤니티 반응은 복잡했다. 많은 유저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면서도, 동시에 애드온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 자체에는 긍정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블리자드의 설명대로라면 이제 "누가 애드온을 잘 세팅하는가"가 아닌 오로지 실력과 협동만으로 승부를 가르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RWF(Race to World First), 즉 세계 최초 공략 경쟁에 나선 최상위 공격대들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이들은 위크오라를 대신할 자체 개발 배정 애드온을 제작해 공식 스트리밍에서 버젓이 사용했다. 하지만 블리자드의 반응은 애드온 제재가 아니었다.

공허첨탑 신화 난이도의 다섯 번째 네임드 '빛에 눈이 먼 선봉대'가 핵심이다. 블리자드는 최상위 공격대가 앞선 네임드들을 지나치게 빠르게 격파하자, 콘텐츠 소모 속도를 늦추기 위해 다섯 번째 네임드에 선제적으로 버프를 가했다. 핫픽스를 통해 '응징의 방패'의 적용 대상을 기존 4명에서 8명으로 대폭 늘린 것이다. 이 스킬은 해제 담당 클래스가 즉각 해제하지 않으면 수 초 내에 강력한 후속 피해가 들어와 대상자가 그대로 사망하는 구조다.
최상위 공격대는 8명을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하는 이 패턴을 배정 애드온 없이는 돌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결국 자체 제작 배정 애드온을 만들어 공식 스트리밍에서 버젓이 사용해 네임드를 격파했다. 그리고 블리자드는 이에 대해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유저 입장에서는 씁쓸한 장면이다. 블리자드가 직접 API를 틀어막아 위크오라를 무력화했음에도, 최상위 공격대가 그 빈자리를 채운 새로운 애드온을 사용하는 것에는 눈을 감은 셈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최상위 공격대와 일반 유저는 같은 네임드를 두고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애드온을 갖춘 쪽은 역할이 자동으로 배분되는 체계적인 전투를, 그렇지 못한 쪽은 혼란 속에서 즉흥적인 대응을 강요받거나, 블리자드가 뒤늦게 난이도를 조정해줄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실력의 차이가 아니다. 애드온의 유무가 전투 경험 자체를 갈라놓는 것으로, 블리자드가 그토록 강조했던 "동일한 경험"과는 정반대의 현실이다.
결국 최상위 유저들은 애드온을 쓰고, 일반 유저들은 쓰지 못하는 구도가 또 만들어진 셈이다. "모든 플레이어가 동일한 수준의 도구를 가지고 전투에 참여"해야 한다던 블리자드의 말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크다. 애드온이라는 진입장벽이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잠시였다. 정작 가장 영향력 있는 유저들에게 애드온은 여전히 존재하고, 일반 유저만 불편해진 상황에서 이 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