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어둠을 끊어낸 '첫 번째 빛' - 007 퍼스트 라이트

골든아이 이후, 마침내 등장한 '제대로 된 007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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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산업에서 007이 첩보물 시리즈로 입지전적인 위치를 확립한 것과 달리, 게임 산업에서만큼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도 얼마 남지 않은 희대의 명작 '007 골든아이'를 제외하면, 게임으로 성공한 007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렇기에 IO 인터랙티브가 새로운 007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도 대중의 시선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여태껏 게임으로 등장한 007이 모두 저조한 성과를 기록했는데, 과연 아무도 모르는 '젊은' 본드를 주인공으로 하는 게임에게 어떤 승산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오히려 타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우려 속에서도 '007 퍼스트 라이트'는 5월 27일 출시를 앞두고 있고, 사전 리뷰를 통해 그 속을 먼저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게 됐다. 바로 이 게임이 정말 팬들이 바라온, '게임 007'의 첫 번째 빛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 스포일러 관리 규정에 따라 주요 스토리 내용은 리뷰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26살 청년, 젊은 '제임스 본드'의 이야기




시작부터 고난을 맞이하는 청년 본드 ©INVEN 김규만 기자

007 시리즈는 60주년을 기념할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제임스 본드의 젊은 시절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영화 속에서 우리가 만나왔던 것은 언제나 말끔한 정장을 입고, 젓지 않고 흔든 마티니를 한 손에 든 채 멋들어진 미소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완성형 본드'였기 때문이다.

IO 인터랙티브는 '게임 007'의 새로운 부활을 알리면서, 26세의 젊은 청년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의 배경이 60~7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젊은 본드가 등장하는 것으로 일종의 '리부트'를 목표로 한 셈이다.

이전 프리뷰에서도 공개된 바와 같이, 서른도 채 되지 않은 젊은 본드는 영국 해군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었다. 아이슬란드에서 전개된 SAS 특수요원들의 작전을 보좌하던 도중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에게 기습당해 동료가 모두 전사하고, 홀로 살아남은 그에게 MI6로부터 비밀스러운 무전이 전해진다.



00 요원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는 과정이 비중 있게 그려진다 ©INVEN

이처럼 '007 퍼스트 라이트'는 젊은 청년 제임스 본드가 영국 정보부 MI6와 어떻게 만나는지, 또 어떤 과정을 겪은 뒤에 비로소 '00' 요원으로 성장하는지에 집중한다. 그리고 어떡하다가 그의 코드네임이 007이 되는지도.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언급하자면, 이 게임의 세계관 상 '00' 요원이라는 체계는 과거의 유산이 되었다. MI6는 인적 자원을 투자하는 대신 웨브 인더스트리라는 가상의 기업이 만든 양자 컴퓨터 AI 'THEIA'를 이용해 첩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국장 M은 첩보 활동의 '휴먼 터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00' 프로젝트를 부활시키고자 했다.

THEIA의 예측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에서 홀로 남은 주인공 본드가 임무를 완수할 확률은 1% 미만. 그러나 본드는 이 확률을 뚫고 멋지게 임무를 달성했고, 이는 M에게 다시 한번 인적 자원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본드는 뒤늦게 수습 요원들이 훈련 중인 몰타로 향하게 되고, 이미 훈련을 받고 있던 훈련생들과 함께 스파이가 되기 위한 여정을 이어간다.



"1%? 완전 혜자 아닙니까?" ©INVEN

대단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이 '훈련 과정'이 생각보다 게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는 점이다. 보통의 게임에서는 튜토리얼 정도로 끝낼 수 있는 구간이지만, '007 퍼스트 라이트'의 접근법은 달랐다. 훈련 시작 6개월 뒤에 낙하산으로 합류한 본드를 향하는 훈련생들의 시기, 그리고 고된 훈련을 함께 하며 끈끈해지는 우정, 다 함께 마지막 훈련 과제를 진행하는 것까지 서사를 매우 촘촘하게 담아두었다.

이 과정은, 빗대어 말하자면 영화 '킹스맨'의 도입부와도 유사하다. 런던의 건달이었던 에그시가 킹스맨 후보생이 되어 이런저런 테스트를 무모하게 통과했던 것처럼, 젊은 본드 또한 주어진 임무를 그대로 수행하는 적이 없다. 신예 배우 패트릭 깁슨이 연기하는 제임스 본드는 거칠고, 대담하며, 때로는 재치 있는 모습으로 플레이어에게 '젊은 본드'의 모습을 각인시킨다.



젊은 본드의 혈기는 훈련으로 달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INVEN


우리가 기대하는 '007 영화' 같은 서사




오프닝 시퀀스부터가 "나 007이요"를 외치고 있다 ©INVEN

우여곡절 끝에 훈련을 마치고 실전으로 들어간 뒤에도, '007 퍼스트 라이트'는 우리가 기대하는 영화 '007' 같은 서사의 호흡을 마지막까지 유지한다. IO 인터랙티브가 쌓아 온 유서 깊은 암살 시뮬레이터 '히트맨' 시리즈와는 사뭇 다른 전개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은 히트맨 시리즈와 비교해 가장 큰 특징을 나타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오프닝 시퀀스의 노래와 영상부터 007 냄새가 물씬 나는 것은 물론이며, 첩보와 액션 스테이지 중간중간 들어 있는 컷신, 대화 장면 모두 버릴 것이 없다. 하나의 사건 속 숨어 있는 배후들이 서사가 진행되며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중간에는 나름 깜짝 놀랄 반전까지도 가지고 있다. 모두 영화 007에서 우리가 한 번쯤은 경험했던 것처럼.



무수한 NPC들이 첩보 영화같은 느낌을 더해준다 ©INVEN

인물들의 묘사나 대화 또한 대단히 정교하게 '영화 007'을 떠올리게 한다. 이 게임은 대사가 정말 많다. 젊은 본드는 시종일관 재치 있는 입담을 멈추지 않고, 거기에 질린 듯한 머니페니의 반응까지도 영화와 비슷하다. 그밖에도 혈기왕성하고 무분별한 본드가 못마땅한 교관 그린웨이, 영국 정보부와 여왕 폐하의 대외 위상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철두철미한 M, 항상 웃는 얼굴로 새로운 가젯을 007에게 소개하는 Q까지. 007 팬들이 바라던 인물들의 모습을 담은 컷신들은 너무 소중하고, 그래서 스킵 버튼을 누를 수가 없게 한다. (스킵 버튼이 있긴 하다)



Q가 주는 오메가 시계... 너무 귀하고요 ©INVEN



솔직히 머니페니 디자인한 사람에겐 상을 줘야 한다 ©INVEN

이 게임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의 묘사도 인상적이다. 본드가 위기 상황에 처할 때마다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조력자 '아이솔라'는 그 신비주의적인 면모를 끝까지 유지하며, 게임 중반부 본드가 지키게 되는 조류 과학자 '테레사 로르카'의 매혹적인 모습은 그 분량이 다소 적어 아쉬움이 클 정도였다.

리뷰를 통해 게임을 플레이해 본 입장에서, '007 퍼스트 라이트'가 추구하는 것이 14~15시간 분량의 '007 영화 한 편'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보고 자라 온 영화 007 시리즈에서 접했던 거의 모든 장면, 순간, 인물 묘사가 이 안에 담겨 있기 때문에.



오...마이 갓 ©INVEN



본드의 매력은 멈추는 법이 없지 ©INVEN


'히트맨' DNA로 완성한 첩보 액션




주변 사물을 이용해 적을 제압하는 첩보 액션 ©INVEN

게임플레이 측면에서, '007 퍼스트 라이트'는 "히트맨 DNA로 완성한 첩보 액션"이라고 부를 수 있다. 본드는 에이전트 47이 아니다. 무차별하게 소음기 낀 권총으로 아무나 학살할 수 없으며, 타겟만 죽인다고 다음 스테이지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임의 전체 진행 구조는 스토리 컷신 - 첩보 단계 - 액션 단계 - 스토리 진행 순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몇몇 구간은 이를 비트는 방식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이런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첩보 단계에선 플레이어를 꽤나 큰 필드 안에 떨어뜨려 놓고,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특정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면 특정 건물 보안 시설에 잠입하는 임무를 받는다면, 본드(플레이어)는 이 장소에 위치한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접근 방법에 대한 힌트를 찾게 된다. 때로는 그 힌트가 주변 벽에 붙은 문서일 수도 있고, 또는 물리력을 행사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요컨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접근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고, 플레이어는 자신의 성향과 완수하고픈 도전 과제에 따라 진행 루트를 결정할 수 있다.



전투는 꾸준히 위치를 바꿔가며 싸우는 것이 중요했다 ©INVEN

이 과정에서 Q에게 받은 가젯들은 매우 훌륭한 도우미가 되어 준다. Q-렌즈로는 주변 적의 위치나 상호작용 가능한 물건을 하이라이트해서 확인할 수 있고, Q-워치나 다트폰, 레이저 같은 가젯들은 목표물에 접근하는 데 유리한 창구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민간인이 가진 키카드를 소매치기 하고 싶은데 보는 눈이 많다? 다트폰으로 그 사람을 기절시킨 뒤 슬쩍할 수 있다. 이 문만 지나면 보안 시설일 것 같은데 문에 쇠사슬이 걸려 있다? 레이저를 쏴 자물쇠를 파괴하면 그만이다.

여기에 더해 본드에게는 '직감'이라는 고유의 자원이 있다. 첩보 활동 중 단서를 찾거나 임무 관련 행동을 수행하며 축적되는 이 자원은, 세 가지 방식으로 사용 가능하다. 엄폐물 뒤에서 경비원을 유인해 무력화 시점을 만드는 '유도', 발각된 상황에서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허세', 그리고 사격 시 시간을 잠시 늦춰 정밀 조준을 돕는 '집중'이다. 직감은 첩보와 전투 양쪽에서 모두 쓰일 수 있어, 플레이어가 어떤 식으로 자원을 분배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Q-렌즈는 어디서나 나의 친구 ©INVEN

민간인 수백 명이 있는 행사장에서 아무에게나 총기를 휘두르는 것은 스파이가 하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전투 시퀀스는 주로 첩보 단계와는 다르게 배치되어 있는 형태다. 주인공이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살인 면허'가 허가될 때뿐이고, 그때가 보통은 전투 시퀀스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쉽다. 살인 면허는 적이 주인공을 살해할 마음을 먹고 총기를 들었을 때만 발동된다. 첩보 미션 도중 발각되었다고 해서 곧장 총을 꺼낼 수는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007 퍼스트 라이트'의 전투는 꽤나 박진감 넘치는 편이다. 같은 자리에서 총을 쏘는 것만으로 몰려오는 적들을 모두 당해낼 수 없다. 보유한 탄약이 제약되어 있을뿐더러, 적들이 시종일관 본드가 위치한 쪽으로 수류탄을 던지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주기적으로 위치를 옮겨가며 전투를 이어가야 하고, 적이 떨어뜨린 총기를 재빠르게 주워가며 부족한 탄약을 대체해야 한다.

여기서도 Q가 만들어 준 가젯은 톡톡히 제 역할을 한다. 다트폰 같은 도구들이 첩보에 특화되어 있다면, '미사일 펜' 같은 도구는 전투에 특화된 도구다. 이처럼 미션 전에 도구를 선택하는 창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들을 선택해 나서는 것도 '007 퍼스트 라이트'의 재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막은 물론 ©INVEN



꿈만같은 베트남 리조트까지, 007 스러운 여정이 이어진다 ©INVEN

007 시리즈에서 빠질 수 없는 운전 시퀀스 또한 게임 곳곳에 자주 등장한다. 훈련을 마친 뒤 첫 실전 임무인 슬로바키아 미션에서부터 본드는 운전사 역할을 맡을 정도다. 일반 차량은 물론, 쓰레기차, 채석장 트럭, 보트에 이르기까지 게임 전반에서 다양한 차량을 운전하며 펼쳐지는 추격전을 마주할 수 있다.

운전 시퀀스는 대체로 시네마틱한 호흡을 가지고 진행되며, 영화 007에서 봐 왔던 아드레날린 가득한 차량 추격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매 임무마다 운전 구간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적절한 타이밍마다 핸들을 잡는 본드의 모습은 게임이 추구하는 '영화적 경험'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요소다.

다만, 미션 브리핑이 모호해 기껏 들고 간 가젯들이 쓸모없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공교롭다. 물론, 젊은 본드가 절대로 작전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 성격인 것도 있지만, 어려운 전투가 예상된다고 해서 전투 도구를 챙겨갔더니 오히려 잠입이 수월한 경우도 있기 때문. 1회차에서는 시행착오로 교훈을 얻고, 2회차부터 제대로 된 도구를 사용하라는 개발진의 배려인지는 모르겠지만, 첫 플레이에서는 의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도파민 빵빵 터지는 장면도 중간중간 등장한다, 영화 007처럼 ©INVEN


한 번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수많은 도전 방법들




메인 스토리 챕터마다 다양한 임무가 기다리고 있다 ©INVEN

그렇다. IO 인터랙티브의 게임답게 '007 퍼스트 라이트' 또한 회차 플레이를 지원한다. 히트맨처럼 원하는 장소와 타겟을 골라가며 반복 플레이를 하는 형태는 아니지만, 메인 미션마다 주어진 임무(도전 과제)가 여러 개라 모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 시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임무들은 저마다 해당 스테이지에서 주어진 여러 '접근법'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저번에 이런 식으로 CCTV 보안실에 갔다면, 다음에는 요런 식으로 가 보라'는 식이다.

임무를 모두 완수하면, 플레이어는 '택티컬 시뮬레이션(일명 택심)'에서 활용할 수 있는 본드의 치장용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멋들어진 턱시도를 입고 택심을 즐기고 싶다면, 어찌 됐든 메인 미션의 임무를 모두 완수해야 한다.



반복 플레이를 지원하는 '택심' ©INVEN



가상의 세계에 들어가 훈련을 빙자한(?) 전투를 치를 수 있다 ©INVEN

'택심'은 Q랩에 위치한 요원 훈련 시설이라는 설정으로, 메인 스토리와 별개로 메인 메뉴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모드다. 그래서 메인 스토리를 클리어한 후 본격적으로 즐길 수 있는 별도의 콘텐츠에 가깝다. 이전에 플레이한 미션을 더 도전적인 조건에서 다시 풀어내는 미션들은 세 단계의 난이도로 구성되어 있고, 탐험과 적응에 초점을 맞춘 '오퍼레이션' 미션도 별도로 존재한다.

각 미션마다 7~10개의 과제가 주어지며, 이를 완수하면 경험치와 정보라는 화폐를 얻을 수 있다. 획득한 정보로는 새로운 가젯, 무기, 의상, 가젯 스킨 등을 구매할 수 있어 자기만의 본드를 꾸미는 재미를 더한다.

또한 미션 클리어 시 시간, 액션 연출, 정확도 등을 기반으로 점수가 책정되며, 이는 글로벌 및 친구 리더보드에 등록된다. 친구의 점수를 넘기기 위해 같은 미션을 수십 번 반복하게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미션을 하나라도 완수하지 않으면 실패하니 주의할 것 ©INVEN

007 퍼스트 라이트의 첩보, 액션 시퀀스를 부담 없이 계속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택심'과 미션별 임무가 존재하는 것은 아주 환영할 일이다. 다만, 메인 스토리의 전개 자체에 더욱 집중을 한 작품이기 때문에 반복 플레이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였다.

중요한 것은 영화 한 편을 감상하듯 전체 스토리를 모두 경험하는 것, 그리고 택심과 미션별 임무는 엔딩 이후에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 플레이어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구성은 썩 나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퍼스트 라이트, 부활의 신호탄이 되어줄 '게임 007'




솔직히 머니페니 디자인한 사람에겐 상을 줘야 한다(2) ©INVEN

서사가 중요한 게임을 리뷰하며 가장 고민되는 지점은 바로 '스포일러 방지'다. 이야기의 전개가 느껴지지 않도록 최대한 중반부 이후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나열해 놓은 칭찬들을 보면 얼마나 '007 퍼스트 라이트'의 서사에 만족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만족감은 스토리의 완성도나 호불호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영화 007'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라는 만족감이다(게임 007에선 십수 년간 볼 수 없었던 것이기도 하고). 본드의 화려한 입담, 매력적인 조연들, 귀여운 머니페니(중요), 예측할 수 없는 사건 전개, 때로는 우당탕탕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도파민 액션까지. 007 퍼스트 라이트엔 원작 팬이라면 기대할 만한 거의 모든 장면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 시스템 측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다. 프리뷰 영상이 공개됐을 때부터 인터넷에서는 "게임이 너무 구식으로 보인다", "캐릭터 표정 연출이 이상하다"는 비판이 존재해 왔다. 그리고 그 의견들 중 일부는 타당하다. 하지만 실제로 게임을 접해 보면, 그런 점들은 꽤나 사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 수많은 NPC 덕분에, '비밀 요원인 나'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된다 ©INVEN

NPC의 표정 연출이 어색한 것은 맞다. 하지만, 눈부실 정도로 화려하게 꾸며진 공간들은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NPC로 가득 차 있다. 이들 모두가 상호작용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진짜로 '이 군중 속에서 나만 어떤 목표를 가지고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다'는 감각이 더 살아난다. 또 주요 인물의 표정 연출은 꽤 준수한 편이라, 컷신에 감정을 이입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게임을 진행하며 마주하는 몇몇 보스전 기믹이 지나치게 반복적인 면은 없지 않다. 거의 모든 보스전이 적을 피해 숨어 Q-렌즈로 주변 사물을 이용해 적을 공격하는 것에서 끝난다. 뭐, 이 또한 영화 007에서 기억에 남는 보스전(?)이 '죠스' 정도인 걸 감안하면 대체로 영화의 감성을 이어 오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007에서 빠지면 섭섭한 차, 애스턴마틴 발할라의 정체는 후반부에 직접 확인해 보자 ©INVEN

한국어 번역 문제도 있다. 대부분 상황에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지만, 일부 장면에서 정말 '이걸 이렇게 번역한다고?' 싶은 충격적인 문구들이 등장한다. '사진 귀퉁이가 찢어져(tear) 있다'를 '눈물(tear) 자국'이라고 번역하는가 하면, 탄창(magazine)을 '잡지'라고 번역한 사례도 있다. 인물들이 반말을 하다가 존댓말을 하는 경우는 너무 흔해 세지도 못했다. 훌륭한 서사를 만들어 놓고, 한국어 번역 이슈로 몰입감을 깨는 것이 정말 안타까운 부분이다.

이런 부분만 감안한다면, '007 퍼스트 라이트'는 올해 출시작 중 가장 '기대 밖'의 성과를 보여줄 자질이 충분하다. 골든아이 이후 불모지나 다름없던 '게임 007' 시장에서, 이 정도로 완성도 높은 007을 만나는 것이 얼마 만의 일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패트릭 깁슨이 연기한 젊은 본드는, 개인적으로 '게임 007' 시리즈의 속편을 기대할 정도로 딱 맞는 제임스 본드의 역할을 보여줬다.

부제마저 너무 딱이지 않은가. 어둡기 이를 데 없던 게임 007 역사에서, 골든아이 이후 '첫 번째 빛'이 되기 충분한 타이틀이니까.



깜짝 등장하는 한심좌.jpg ©INVEN
  • 007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서사
  • 패트릭 깁슨의 '젊은 본드' 연기는 일품
  •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버릴 것 없는 컷신
  • 수많은 NPC로 완성한 몰입감 넘치는 배경
  • 첩보 단계와 전투 시퀀스의 적절한 분배
  • 이야기 전개에 비해 다소 힘빠지는 보스전
  • 군데군데 보이는 한국어 번역 문제
  • 늘 쓰던 것만 쓰게 되는 가젯 밸런스

리뷰 플랫폼: PC (리뷰 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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