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내가 존재하던 곳이 아니다.
짠내나는 바람과 수많은 사람들의 거래가 오가는 시장, 거대한 배가 건조되는 조선소, 바다의 사나이들, 일획천금, 폭풍, 해적과 군인… 모두 알고는 있지만, 내가 살던 곳에서 그들은 내 삶에서 그 어떤 부분도 차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이것이 나의 삶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곳은 어떤 세상인가?
기억 속에서 내가 살던 곳은 수많은 전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평화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들었고, 거대한 회색 석조건물과 유리건물들의 향연에서 매연과 흐린 하늘, 그리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고, 그리운 사람들의 느낌이 묻어나는 곳이었다.
그럼 이 곳은 어디인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살던 세상과 관련된 단서를 모으기 시작했다. 우연히 검으로 누군가를 돕게 되었을 때, 나는 그가 포루투갈의 수도 리스본의 학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값비싼 서적을 도둑질하여 팔아먹으려는 무리를 막아주는 것을 계기로 나는 그 사람과 친해질 수 있었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내가 사는 세상은 이 곳에는 존재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상심에 빠졌다. 존재하지 않는 세상, 내가 살고 있었던 그 곳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이야기. 그럼, 존재하지 않으니 돌아갈 수도 없는 것인가?
“세상은…”
김이 올라오고 있는 찻잔을 두 손으로 들어 향을 음미하던 그는 잠시 그의 생각을 음미했다. 흔히 학자들이나 지식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전, 한번 더 곰곰이 생각을 하는 것이라 나는 짐작했다.
“넓고, 넓습니다. 수많은 탐험가들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이 세상을 알아가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 알려진 것 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은 실정이지요.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들은 그저 지중해와 북해의 근처에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베네치아로 들어오는 후추가 분명 동쪽 어딘가에서 나오리라는 것만 짐작할 수 밖에 없었고, 차라는 음료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지요.”
“아직, 이곳에서는 제대로 된 대륙의 모습조차 모르는 것입니까?”
“네, 당신이 주장하는… 다른 세상의 분께서 우습게 생각하실 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렇습니다. 지도라는 것은 엄연히 인간의 발길이 미치는 곳까지밖에 표시되지 않고, 아직 세계지도라는 것은 여기저기에 빈 곳이 많습니다. 그저 바다이거나, 그저 땅이라는 것 밖에 표시되지 못하고, 그나마 표시되어 있는 곳은 여기저기에서 많은 오차가 발생하지요.”
확실히 내가 아는 세상과는 많이 다르다. 내가 아는 곳은 지도는 확실히 표기되어 있었다. 이렇게까지 엉성한 지도가 아니었다. 그런 것을 내가 생각하는 동안 그는 천천히 차 한 모금을 넘긴 뒤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당신의 말씀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네?”
“어쩌면, 당신이 존재하던 곳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 훨씬 과거에 존재하던 곳일지도 모르지요. 우리들보다 훨씬 고등한 문명을 가지고 있는 세상, 어쩌면 당신은 고대의 인간일지도 모르겠군요. 하핫…”
“놀리시는 겁니까? 제가 믿을 수 없는 소리만을 늘여놓아서?”
“아니,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말아주세요.”
그는 손을 내저으며 내 말을 강하게 부인했다.
“학자라는 직업은 수많은 계통의 사람과 접합니다. 의외지요? 하지만, 모험가나 식물학자나 발굴가 같은 사람들은 무작정 탐험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딘가에서 흘러 들어온 실낱 같은 정보를 가지고 단순한 도박을 하는 것이지요. 저 같은 학자는 그런 면에서 매우 도움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저에게 자주 방문해서 가끔 당혹스러운 질문이나 희미한 기억을 짚어가야 겨우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질문을 하지요. 그 다음,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탐험을 떠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돌아오는 사람은 전부는 아니고, 그들이 찾던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은 더욱 적습니다. 그리고, 처음 그들과 접했을 때 완전히 허무맹랑한 헛소리라고 치부한 것이 진실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경우는 꽤 많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이 그들과 비슷하다는 것입니까?”
“생각을 해 보세요. 당신은 지금 외딴 곳에 떨어져 있습니다. 그 곳에 대한 정보는 당신 혼자밖에 모르는 것이지요. 자아, 결정적인 증거물을 발견할 때 까지… 그러니까 당신이 있던 곳을 증명하는 순간까지 믿어주는 사람들 보다는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이전에 내가 있던 곳에서도 같게 적용되는 말이다. 사람이란, 확실한 증거가 있기 전까지는 믿는 사람보다는 믿지 않으려는 사람이 더 많은 법이니까.
내가 그의 말에 수긍하자 그는 슬쩍 웃었다.
“확실히 지금 상황에서 당신은 이 곳에 대해 아무런 기반이 없으시겠군요.”
“네, 그렇지요. 하지만… 이 곳이 어딘지, 여기가 어딘지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그거 놀랍군요. 당신의 주장대로라면 이 곳은 당신에게는 낯선 곳이 아닙니까?”
“네. 하지만… 이 곳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현재 영국의 왕이 누구인지는 아시는지?”
“엘리자베스 1세, 현재 바다로 진출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북해의 섬나라지요.”
이곳이 내가 살던 곳은 아니지만, 확실히 이 곳에 대한 것은 신기하게도 알고 있다. 향신료 무역에 온 관심을 쏟고 있는 유럽, 육로에는 오스만 제국이라는 거대한 바위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 갈 수 없기에 해로를 이용하기 위해 발전한 해양산업, 한자 동맹, 세세하게는 잘 모르지만 이 곳에 서 있는 내가 다른 곳의 존재라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지식이 내 머리 속에는 있었다.
“당신이 아까 보여준 검술은 이 곳의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선 이 곳의 것이면서도 무언가 여러 가지가 틀렸습니다. 물론, 검술이라는 것이 다 똑같을 수는 없지만… 당신이 보여준 능력은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믿어주시는 것입니까?”
“네, 난생 처음 보는 책의 구절에도, 어딘가에서 들은 입소문도 진실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는 세상이니 믿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뒤 그의 찻잔에 차를 따랐고, 내 빈 찻잔에도 차를 따라주었다. 두 찻잔에는 다시 수증기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차의 향을 음미하듯 눈을 살짝 감은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찻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갔다.
“거취도 없고, 딱히 신분을 증명할만한 무언가도 존재하지 않겠지요?”
“…유감이지만, 그렇습니다. 단지 이 검을 보고 그냥 떠돌이 용병이라고 짐작할 뿐이지요.”
“그렇군요. 아, 혹시… 이 곳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다른 지식도 풍부하다고 자신하십니까? 예를 들면, 고고학이나 미술 같은 것 말입니다.”
“글쎄요, 일반적인 사람의 수준보다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모험가가 될 생각은 없으십니까?”
“모험가?”
“네.”
나는 찻잔을 내려놓은 뒤 그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찻잔을 내려놓은 뒤 양 손으로 깍지를 낀 뒤 무릎 위에 얹었다.
“당신이 찾는 곳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실이라는 것은 알려지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현실이 아닌 것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 될 수 있지요. 어쩌면, 당신이 존재하던 그 곳 역시 발견되지 않은 하나의 무언가 일 수도 있습니다.”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
“어쩌시겠습니까,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세상은 넓고, 당신이 존재하던 그 곳이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발견을 하면서 그 중에 당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당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단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모로 설득력 있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바라보았다. 깔끔한 실내의 한 켠을 차지하는 수많은 서적들, 저 많은 책들 속에서 어쩌면 내가 돌아가야 할 곳에 대한 구절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그런 정보를 찾을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공백상태, 이 일을 하면서 이 곳의 삶을 이어가면서 동시에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먼 곳을 떠나는 것도, 유적지를 찾아 다니고 정보를 수집하는 데는 적잖은 돈이 들어간다.
“좋은 생각입니다만, 불가능합니다. 저에게는 아무런 기반이 없습니다. 돈도, 직업도, 아무것도 없는 제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역시 그렇겠군요. 하지만, 기반이 있다면 어쩌겠습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이 일을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당신의 기반은 제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네?”
그는 내 얼빠진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소파에서 일어 나 서랍장에서 무언가를 찾아 꺼냈다. 선박 권리서와 주머니, 그리고 빈 종이였다. 그것을 책상에 올려둔 뒤 의자에 앉은 뒤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러고 보니 이름도 묻지 않았군요.”
“데일리잇… 데일리잇이라고 불러주시길.”
“독특한 이름이군요. 뭐, 다른 곳의 사람이니만큼 이름이 독특할 수도 있는 법이겠지만요.”
그는 그렇게 말한 뒤 깃펜을 잉크에 적신 뒤 빈 종이에 무언가를 썼다. 그리고는 돌돌 말은 뒤 촛불에 밀랍을 녹인 뒤 종이를 봉인했다. 그렇게 만든 편지와 함께 주머니, 선박 권리서를 나에게 내밀었다.
“자, 이걸 가지고 가십시오. 그리고 제가 드린 편지를 모험가 조합의 길드 마스터에게 드리십시오. 그걸 그 분이 보신다면 모든 것을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가,갑작스럽게 왜 이런 것을…”
“사례금입니다. 제 목숨과 서적들을 보호해주신 대가이지요. 정식으로 조합의 의뢰를 거친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제 목숨을 구해주신 것에 대한 사례를 지불한 것입니다.”
주머니 속에는 꽤 많은 액수의 돈이 있었다. 그리고, 선박이라는 것은 아무리 작은 배라고 할지라도 절대 함부로 줄 만큼 값싼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는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것 치고 너무 많은 것 같군요.”
“괜찮습니다. 단지 당신이 지킨 것이 너무나도 갚진 것들이었기 때문에 제가 보수를 높게 드린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전 단지 대가를 지불한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호의에 대한 것을 갚았을 뿐이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이런 것. 모험가가 된다면 앞으로 저와 만날 일이 잦아질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이만 모험가조합을 찾아가보시길.”
“그러겠습니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그 인파의 속에서 나는 뒤를 돌아 문을 슬쩍 바라본 뒤, 사람들의 사이에 끼여 거리를 걷기 시작한다. 알고는 있지만, 낯선 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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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아레스 길드의 4번 길드 사무소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노틸러스 길드의 길드마스터의 직책을 어쩌다보니 맡게 된 비운의 모험가 데일리잇 인사드립니다. 글쟁이의 소양을 지향하나 뭇 심각하게 부족한 재능과 필력을 한탄하며 방황의 길을 떠도는 도중에 이 곳에까지 오게 되었군요.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