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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인물소개

아레스써버
댓글: 4 개
조회: 723
2006-01-27 16:30:15
몇초만에 다시 올립니다..할짓이 없군요 ;ㅁ;

이번에는 세계최초로 세계일주를 하신 마젤란 할아버지 입니다.

역시 출처는 네이버 백과사전입니다.

마젤란 [Magellan, Ferdinand, 1480~1521.4.27]

포르투갈 태생의 에스파냐 항해가.

별칭 마갈랴잉시
국적 에스파냐
활동분야 항해
출생지 포르투갈

인류 최초의 지구일주항해의 지휘자이다. 포르투갈어로는 마갈랴잉시(Fernando de Magalhes)라고 한다. 포르투갈의 하급귀족 출신으로, 마누엘왕에게 출사하여 포르투갈령 인도 총독의 부하로서 동남아시아에서 일하였으며, 아프리카 ·인도 항로에 근무하였다(1504∼1511). 이어서 1511년 말라카에서 몰루카제도 무역의 정보도 입수하였다. 포르투갈왕의 중신 중 한 사람이었으나, 모로코에서 현지 무어인과의 거래가 왕의 의심을 사게 되어 불신을 받자 포르투갈과의 인연을 끊고 에스파냐로 갔다.

그리하여 아메리카와 자기가 경험한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계획을 세우고, 여기에 앙베르의 상인인 전주(錢主)를 얻어 국왕 카를로스 1세(뒤에 신성로마황제 카를 5세)의 특허를 얻어서, 1519년 8월 10일 서항로(西航路)로 몰루카제도에 갈 계획하에 선박 5척과 승무원 270명으로 세비야를 출발하였다. 그는 행선지를 감춘 채 항해하여 12월 중순에 리우데자네이루에 닿고, 이듬해 1월 라플라타강에 도착하여 이것이 해협이 아니라 강인 것을 확인하였다.

남하를 계속하여 1520년 11월 28일 해협을 빠져나가 새로운 해면에 나갔다. 이것들을 ‘파타고니아(마젤란)해협’, ‘태평양’이라고 명명(命名)하였다. 이때에 침몰 ·도망한 함대는 각각 1척, 남은 것은 3척뿐이었다. 마젤란은 태평양을 작은 것으로 예상하고 서진(西進)하였으나, 결과는 3개월 이상이 걸리는 대항해였다. 불안에 떠는 선원들을 통솔하여 계속 서쪽으로 가는 동안에 이상하게도 아무 섬도 접하지 못했으나, 1521년 3월 6일 괌섬에 도착하여 원주민과 교전하였다. 3월 16일 현 필리핀군도 레이테만(灣)의 즈르안섬에 도착하여 세비야에서 연행하여 온 수마트라인 노예의 통역으로 원주민과 우호관계를 맺었다.

4월 세부섬의 왕 및 부하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고 에스파냐왕에게 충성할 것을 서약하게 하였으며, 27일에는 준비가 덜 된 채 막탄섬의 토벌을 시작하였다가 마젤란은 부하 12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그가 죽은 지점이 몰루카제도의 경선(經線)을 넘었기 때문에 ‘세계일주’를 완수하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휘자를 잃은 선단원(船團員)들은 인원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배 1척을 불태우고 나머지 2척으로 11월 몰루카제도의 포르투갈 무역권으로 들어갔는데, 할마헤라섬에서 잔존 2척 중 트리니다드호(號)는 난파하고 나머지 1척 빅토리아호에 향료를 만재한 뒤에 60명이 귀로에 올라 포르투갈 해군의 추적을 피하면서 1522년 9월 8일 세비야로 귀항하였다. 이때에 생존자는 엘카노 등 18명이었다. 필리핀 ·마리아나 제도 등의 명명도 이때에 이루어진 것이다.

Lv20 아레스써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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