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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지휘관은 비 오는 날 산책을 나섰다

Erkenia
댓글: 2 개
조회: 1189
추천: 7
2017-08-24 11:46:24

 공학자를 자칭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한 구석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가급적이면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으려는 지휘관조차도 이따금씩 이건 고정 관념이 아니라 사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었다. G&K의 지휘관이 된 이후로 더더욱.

 그런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최대한 발휘된 것이 어찌보면 전술인형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민수인형을 그대로 활용했다한들, 일부 전술인형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람의 페티쉬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왕 만드는 거 아름답게, 이왕 만드는 거 귀엽게. 그런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십분 동감하지만, 인형에게 동물귀를 달아놓는 것은 어떨까.

 물론 지휘관은 인형은 인형일 뿐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아를 가진 인형을 도구 취급할 수 있는 냉혈한이 아니었고, 실제로 그의 부대는 그런 인형들을 위한 복지 공간이 가득했다. 지휘관 그 자체도 그녀들을 최대한 존중해주고 있었으니.

 여하튼 뭐, 그렇게 생각했던 때도 있지만, 이젠 그들의 마음을 슬슬 알아갈 것 같긴 했다.

 자신에게 호감을 보여주는 이들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지휘관에게 한껏 애정을 표현하며 매번 머리를 쓰다듬어달라 보채는 G41을 보다보면 드는 생각이었다. 그 아름다운 금발, 머리께에 달려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여우의 귀 모양 같건만 왜 하는 행동은 사람의 손길 타기 좋아하는 강아지 같은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헤실헤실 웃으며 지휘관에게 엉겨붙는 그녀가 가끔 곤란할 때도 있지만 귀여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다만 이번 휴가는 조용히 보내고 싶었다. 그렇기에 같이 가고 싶다 데려가달라 졸라대는 G41을 달래느라 그렇게 고생한 것이었다. 어느 새 그의 집에 있는게 익숙해진 스프링필드나 저녁을 먹으러 나가니 불쑥 나타났던 WA2000을 제외한다면 실제로도 조용했지만.

 아침 느즈막히, 배를 울리는 냄새가 슬그머니 풍겨나올 때쯤에 눈을 뜬다. 부스스 일어나 한껏 기지개를 켜면 스프링필드가 빼꼼 고개를 내밀어 "아침식사 준비 됐어요."하며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말하는 것이다. 요 며칠 새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저녁에 같이 식사를 하곤, 밤이 되면 머무는 곳으로 돌아가고─그녀 본인 말로는 "아직 준비가 안됐는걸요."라고 한다─ 아침에 그가 일어나면 언제나 그녀가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뭐, 얻어먹는 입장에서 무어라 불평할 거리는 아니었다. 그녀와 있다보면 마음 편하기도 했으니.

 책을 읽고, 날이 좀 괜찮다 싶으면 산책을 나가고, 어디 카페에 들러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그따위의 것들이었지만 그는 만족했다. 생활권이 좁아졌다한들 세상 살아가는 건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소소한 행동 모든 것에 스프링필드가 함께했다는 사실은 어느새 딱히 신경쓰이지 않는 사실이 되었다. 하여간 그녀는 의외로, 아니 상당히 영악한 것이었다.

 그 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한 두 방울 떨어지던 비는 어느새 후두둑거리며 땅을 두들겼다. 그리 많이 오지는 않는 비였지만 더위를 식히기엔 충분할 듯 싶었다. 비 오는 소리는 나름 맘에 들기도 했으니 오늘은 오늘대로 좋은 휴가가 될 것 같았다.

 무어, 스프링필드는 "어머, 빨래 안 마르겠네."라고 말하긴 했지만.

 이따금씩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는 그 자체로도 꽤나 좋은 음악이 되었다. 이번엔 지휘관이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며 둘은 조용히 빗소리를 감상했다. 은근한 커피향과 쌉싸래한 맛에 꽤나 어울리는 날씨였다.

 똑똑, 커피를 다 마실 때 쯔음에 빗소리에 섞여 작은 노크 소리가 울렸다. 누구 올 사람이 있던가, 하고 그는 고민했지만 생각나는 사람은 없었다. 탁자 너머 그녀에게 시선으로 물었지만 그녀도 살짝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나가볼게요."

 번화가와 주택가에서 조금 떨어져 어찌보면 횡댕그러니 있는 집이었다. 전도하러 나온 종교인도 지나갈 집인데. 그리 생각하며 지휘관은 문을 열었다.

 "주인님!"

 가슴께 즈음에 느껴지는 가벼운 충격. 다만 그건 예상치 못한 것이라 그는 현관에 넘어졌다. 그가 넘어지는 소리에 스프링필드가 놀라 달려나왔다. 그리고 그 습격자, 라고 해야할까, 방문자를 보곤 뺨에 손을 대곤 조금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에헤헤, 주인님, 보고 싶었어요."

 지휘관을 넘어뜨린 채로 그 가슴에 얼굴을 부비고 있는 것은 그 지휘관 좋아하기로 소문난 G41이었으니까.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쁜 마음을 먹은 습격자가 아니라 다행이라 해야할지, 아니면 지휘관과 조용히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뺏길 것에 대해 화를 내야할지 영 감이 잡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G41 양."
 "네!"

 정말 강아지마냥 냄새까지 맡아가며 지휘관을 끌어안고 있던 G41이 스프링필드의 말에 고개를 들어 힘차게 대답했다. 방실방실 웃는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꾸중하려던 기력조차 사라졌다. G41의 겨드랑이께에 양손을 넣어 아이처럼 가볍게 들어낸 스프링필드가 현관에 그녀를 세웠다. 지휘관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섰다.

 "우산도 없이 여기 온건가요?"
 "네! 빨리 보고 싶었어요!"

 스프링필드의 말에 힘차게 대답한 G41을 보면 무어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축축히 젖은 그녀의 머리 끝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옷가지도 별 다를바 없었으니, 지휘관도 덩달아 반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버렸다. 스프링필드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치 못한 빨랫감이 늘어나는 건 그닥 환영할만한 사태가 아니었다.

 "일단 목욕탕으로 데려갈게요, 지휘관. 죄송하지만 수건으로 참아주시겠어요?"
 "에, 주인님은 안들어가요?"
 "나중에 들어갈게요."

 지휘관은 쓴웃음을 지으며 스프링필드에게서 수건을 받아들었다. G41은 그 잠깐 사이에 입이 쭉 나와서 스프링필드에게 질질 끌려 목욕탕으로 사라졌다. 수건으로 대충 물을 털고 바닥에 남은 물자국을 닦아내곤 목욕하고 나올 그녀가 입을만한 옷을 찾아냈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뭐가 있겠느냐만은, 비 오는 날에 옷이 그렇게 빨리 마를 일도 없었으니 아무리 인형이라 한들 알몸으로 집을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쫓아내는 건 더더욱 안됐고.

 결국 준비할 수 있었던 건 와이셔츠 한 장과 반팔티 한 장이었지만 스프링필드가 어떻게 해주리라, 그리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스프링필드 씨, G41이 입을만한 옷은 일단 문 앞에 놔둘게요."
 "네, 고마워요, 지휘관. ……잠깐만요, G41 양! 이러면 저까지 젖잖아요!"

 목욕탕 안에서 당황한 듯한 스프링필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만, 그로써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저 조그만 트러블이 일어났을거니, 하고 생각할 수 밖에.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그는 그리 생각하며 그녀들이 나왔을 때 마실 따뜻한 차를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은은히 남아있던 커피향이 다른 차의 향기로 뒤덮여갈 때 쯔음이었다. 스프링필드가 한숨을 내쉬며 부엌으로 오는 소리에 지휘관은 고개를 돌렸다.

 "고생했어요, 스프링필드 씨."
 "죄송해요, 지휘관. 제 옷까지 빌리게 됐네요."
 "주인님! 목욕했어요. 칭찬해주세요!"

 눈에 독이 되는 광경이었다. 아니, 약일까. 허벅지께까지 내려오는 그의 반팔 티셔츠를 입은 G41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촉촉히 젖은 그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면서, 지휘관은 어떻게든 눈을 돌렸다. 목욕탕에서 G41이 조금 난리를 친 모양이었다. G41이 헐렁한 티셔츠를 입을 건 예상한 바였지만, 그녀를 씻겨주느라 제 옷까지 젖어버린 스프링필드도 한 벌 더 준비한 지휘관의 와이셔츠로 갈아입은 사실이 더 문제였다.

 평소 긴 치마를 좋아해 가려져 있던 쭉 뻗은 다리에서 어떻게든 시선을 돌린 지휘관은 도망치듯 목욕탕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스프링필드가 살며시 웃은 것을 알아채지 못한 건 어쩌면 다행일 것이다.

 마음의 평정을 찾으며 샤워를 하곤 나와보니 스프링필드가 G41의 머리를 말려주고 있었다. 그 손길이 기분이 좋은 듯 G41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장면에 그의 얼굴이 살짝 풀어졌다.

 "자, 다 됐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G41은 후에에, 하고 크게 하품했다. 의자에서 일어나 비틀비틀 그에게 다가오는 것을 받아든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침대로 옮겼다. 잠깐 곁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자니 금세 새근새근하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잠들었나요?"
 "네. 긴장이 풀렸나봐요."

 조금 식은 차를 그녀에게 가져다주니, 머리를 말리고 있던 스프링필드가 대답을 듣곤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아이도 참, 피곤하게 하네요." 대답하지 않고 차를 마실 수 밖에 없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G41 때문에 스프링필드에게 민폐를 끼친 셈이었으니. "그게 귀엽지만요." 그 말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지만.

 "지휘관, 머리 좀 말려주시겠어요?"
 "네? 괜찮으시겠어요?"

 제 머리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던 그녀가 지휘관에게 빗과 헤어 드라이어를 건네며 그리 부탁했다. 허리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는 혼자 다루기 힘든 모양이었다. 다만 그렇다쳐도 그런 것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그에게 맡기는 것은 어떨까 했지만, 그녀는 그닥 상관없는 모양인지 "부탁드려요."하곤 그에게 빗과 헤어 드라이어를 맡겼다.

 "아프거나 하면 말해주세요."

 결국 헤어 드라이어를 받아들고는 지휘관은 그녀의 머리칼을 말려주기 시작했다. 살짝 젖었어도 비단결 같은 머리칼은 엉킴하나 없이 그의 손가락 사이를 그대로 통과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너머, 이따금씩 드러나는 깨끗한 목덜미에서 어떻게든 시선을 돌리면서.

 서툰 손놀림이었지만 머리칼을 쓰다듬는 듯한 그 손길은 무척 기분 좋았다. 그가 직접 준비해준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그녀는 그없이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 그가 이정도면 될까요, 하고 멈췄을 때 무심코 아쉬움의 탄성을 내뱉고 만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고마워요, 지휘관. 점심은 따로 드시고 싶으신게 있으신가요?"

 얼버무리듯 그리 말하곤 일어서자 지휘관은 빗과 헤어 드라이어를 정리하며 글쎄요, 하고 말했다. "G41이 일어나면 물어볼까요?" 그리 말하는 것은 그의 천성이겠지.

 잠시 고요한 시간이 지나갔다. 아직 빗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젖은 옷을 빨래하고 같이 널고 있자니 G41이 비척비척 일어나 지휘관에게 안겨왔다. 곤란한 듯 하면서도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는 그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먹고 싶은 거라도 있나요?"

 지휘관을 한 아름 끌어안곤 볼을 부비던 G41이 퍼뜩 고개를 들곤 "산책이요!"하고 말했다. 스프링필드와 지휘관이 마주보고 곤란한 웃음을 짓고 마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점심으로 먹고 싶은거 말이에요."

 조금 난처한 듯 그가 그리 묻자 G41은 고민했다. 다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주인님하고 산책이요!"하고 다시 대답했다. 옆에 선 스프링필드가 쿡쿡 웃고는 널었던 빨래를 주섬주섬 걷었다.

 "건조기를 돌리면 금방 마를거에요. 밖에 나가서 먹죠."

 점심이 조금 늦어지겠지만, 괜찮죠? 스프링필드가 그리 묻자 G41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쩔 수 없네요. 비오는 날 외출은 썩 좋아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리 좋아하는 그녀를 앞에 두고 거절할 만큼 그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조금 사그라든 빗소리가 기분 좋게 우산을 때렸다. 큰 우산을 스프링필드와 나눠쓰고, G41은 작은 우산을 쓰곤 앞을 먼저 걸어가고 있었다. 작은 장화로 앙증맞게 웅덩이 위에 안착하면 주변에 가볍게 물이 튀었다. 그게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그녀는 이리저리 앞서 나갔다.

 "주인님! 빨리 와요!"

 그녀가 크게 손을 흔들었다. 한껏 웃고 있는 얼굴이 어지간히 기분이 좋은 듯 싶었다. 그 얼굴을 보다보면 절로 푸근한 웃음이 지어지는 것이다.

 스프링필드의 어깨가 젖을까 우산을 그녀 쪽으로 살짝 기울여주면서, 가끔은 비 오는 날 밖에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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