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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평생 옆에

Erkenia
댓글: 2 개
조회: 1482
추천: 6
2017-10-08 17:23:36
 "아, PK 씨. 오셨네요."

 언제나처럼 마지막. 긴 은발 사이에서 언뜻 빛난 붉은 눈동자가 선명했다. 늦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다른 인형들로부터의 은근한 비판의 눈빛. 하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머플러를 끌어올려 입가를 가릴 뿐이었다. 지휘관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대강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자율 작전이고, 작전 개요만 간단히 말씀 드릴게요. 기본적으로 기지 근처 순찰 및 낙오된 철혈 개체 소탕이 목적이에요. 근래 디너게이트와 프로울러의 목격담이 자주 들려오고 있어요. 아마 주력 개체는 그 쪽일 듯 싶어요. 순찰 구역은 맵에 업로드 된대로니 참조 하시면 되구요, 문제가 발생한다면 제대장인 PK 씨가 곧바로 연락해주세요. 질문 있으신가요?"

 익숙한 장소였고, 또 적합한 제대 편성이었다. 하물며 제대원들은 이 지휘부에서 꽤나 오래 작전을 해온 고참들이었고. 모두가 질문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나를 빼고.

 "아, 저기, PK 씨, 듣고 있나요?"
 "……무시하진 않았어."
 "너, 대체……."

 그 말에 발끈한듯 Mk23이 한 발짝 나섰다. 지휘관은 그녀에게 살짝 눈짓하곤 가볍게 웃었다. "그럼 다행이네요." 작전 시작 전 쓸데없는 트러블은 사양이다. 그건 그녀도 알고 있는 바였다. 하지만 그녀들을 위해 노력해주고 있는 지휘관에게 적어도 그리 정 떨어지는 태도로 대할 것은 없지 않는가. 지휘관도 한 마디 해줘도 될텐데. 미안하다는 듯이 살짝 손을 든 지휘관을 보고 용서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녀의 입술은 비죽 나와있었지만. PK는 그마저 귀찮다는 듯 눈을 돌리더니 출발 보고를 시작했다.

 "3제대, 제대장 PK 이하 넷. 자율 작전 3-1, 출발하겠습니다."
 "사소한 문제라도 발생하면 곧바로 연락 주세요. 아, 수복실 열기는 귀찮으니, 아시죠?"

 다치지 말라는, 그 나름의 배려가 담긴 가벼운 농담에 제대원들이 픽 웃었다. 지휘관의 배웅을 받으며 저 나름대로 준비를 마친 제대원들이 먼저 지휘관실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남은 PK에게 지휘관이 악수를 권하며 말했다.

 "PK 씨, 잘 부탁드릴게요."
 "……손 치워."

 그 말에 노발대발한 Mk23을 달래느라 작전 출발이 조금 지연되고 말았다는 건, 소소한 이야기일까.



 작전에 나간 제대원들이 돌아올 때까지 안절부절 못하는 건 그의 안좋은 습관이었다. 이류 지휘관이라면 자신을 믿고 냉철해질 것이고, 일류 지휘관이라면 제대원들을 믿기 때문에 냉정해지겠지. 자신은 삼류 지휘관일 것이라며 그는 자조했다. 무어, 애써서 바뀌고 싶지는 않았다만은.

 다만 그렇기에 군수 지원이든 자율 작전이든, 작전을 나간 제대원들이 다친 곳 없이 돌아왔다는 소식만큼 그에게 기쁜 소식은 없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늘도 수복실은 빌 예정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3제대, 제대장 PK 이하 넷. 자율 작전 3-1, 복귀했습니다. 작전 중 특이사항 무."

 무뚝뚝한 목소리로 거기서 끝. 다른 인형이라면 뭐라도 살갑게 말을 붙였을텐데 그녀에게 일절 그따위 것,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뒤에 선 제대원들이 질린 표정을 짓는 것도 이해할만한 일이겠지. 꼭 그런 것만도 아닌데.

 "다들 고생하셨어요. 내일 오전까지 전투 휴무를 드릴테니 푹 쉬세요."

 M2HB가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다른 제대원들의 눈도 반짝 빛났다. "정말이야, 달링?" Mk23이 그리 말하며 지휘관을 잡아먹을 듯 책상에 달라붙었다. PK의 눈가가 움찔했다.

 "진정해주세요. 철회하거나 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난감한 듯 몸을 뺀 지휘관이 그리 말하고 나서야 Mk23이 환호하며 뒤로 팔짝 뛰었다. PK가 다시 머플러를 여몄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살짝 웃었다.

 "고마워, 달링! 내일 봐!"

 힘껏 손을 흔들며 다른 제대원들이 지휘관실을 나가고 나서야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비호감을 표현하는 것보다야 낫지만. 저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희미해질 무렵에야 마지막으로 지휘관실에 남은 그녀─PK가 입을 열었다.

 "헤벌레해졌어."

 나무라는 듯한 말투였다. 항상 감정이 담기지 않은 평이한 어조로 말하던 것과는 다른, 명백한. 그녀가 끼고 있던 장갑을 천천히 벗었다.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은빛으로 살짝 빛났다. 입가를 가리고 있던 머플러도 살짝 내려가 샐쭉한 그녀의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만으로는 안되는거야?"
 "저도 가끔은 난감해요."

 지휘관실 한 구석에 놓인 의자를 끌고 온 그녀가 지휘관의 책상에 마주앉았다. 그녀가 천천히 손을 뻗어 지휘관의 뺨을 쓸었다. 간지러운 듯 그가 몸을 움츠렸다.

 "좀 전에, 늦어서 미안해."
 "괜찮아요. 지정된 시간까지는 왔잖아요?"
 "지휘관한테 이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아서."
 "……그건 반칙이네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살짝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듯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피 드실래요?" "홍차로 부탁할게." 그녀는 조금 아쉬운듯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홍차향이 은근히 퍼지기 시작할 즈음, 멍하니 지휘관을 바라보던 그녀가 문득 말을 꺼냈다.

 "미안해."
 "무슨 일인가요?"

 약지에 끼워진 은빛 반지를 매만지던 그녀 앞에 찻잔이 놓였다. 향이 좋았다.

 "무시하진 않았어, 라고 한 거랑, 손 치워, 라고 한거."
 "괜찮아요."
 "……정말로?"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상처 받았어요."

 빙글빙글, 능글맞은 웃음. 그녀가 픽 웃었다. 입 안에 홍차향이 퍼질 때 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옷깃을 잡았다. 그리고 입 안에 다시 한 번 진득하게 퍼지는 홍차 향기, 부드럽고 촉촉한 감촉.

 "사과의 표시야."
 "고마워요."

 그녀가 머플러를 여몄다. 머플러 너머 가려진 그 표정은 어떨까. 그는 그게 그녀가 감정을 감추려하는 행동임을 알고 있었다. 출발 전에 가렸던 것은 동료들의 시선에 시무룩해진 표정을 감추기 위함이고, 조금 전 Mk23이 책상에 달라붙을 적에는 동요하는 입가를 가리기 위해서였겠지. 아무리 얼굴 표정 변함이 부족하다한들, 자주 보다보면 꽤나 익숙해지는 것이다. 하물며, 그녀라면. 그는 자신의 장갑 아래, 왼손 약지에 빛나고 있을 반지를 떠올렸다.

 "나, 귀찮은 여자지?"
 "안 귀찮아요."
 "정말로?"

 살짝 눈을 치뜨며 그녀가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는 자그만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얇게 빛나는 은실같은 머리칼이 그의 손에서 부스스 흐트러졌다. 그녀는 그게 꼭 싫지만은 않은 듯 몸을 움츠렸다.

 찻잔을 모두 비웠을 즈음, 그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지휘관." 구두 소리. 지휘관의 의자 등 뒤로 다가간 그녀가 그를 끌어안았다. 목덜미에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귓가에 그녀의 달큰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저기, 지휘관."
 "네."
 "나는 외톨이라서, 지휘관 밖에 없어."
 "우연이네요, 저도 그런데."
 
 그녀가 그의 귀를 살짝 물었다. 장난치지마, 그런 이야기겠지. 지금은 보이지 않는 그녀의 표정은 어떨까. "그러니까."

 "나를 평생 옆에 두고 있어줄래?"

-

 요망한 춘전이랑은 다른 동네입니다.

 그냥 꽁냥대는걸 쓰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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