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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지휘관은 사과를 깎았다

Erkenia
댓글: 2 개
조회: 1297
추천: 5
2017-10-01 23:14:47
 밤을 새면서라도 지휘관을 간호해주겠다고 나선 95식을 어떻게든 돌려보내니, 그녀의 표정은 아쉬움으로 그득했다. 무엇에 대한 아쉬움인지는 모르겠지만, 늦은 시간이 되어 있었다. 문득 바라본 창문 너머에선 간만에 밝은 달이 떠올라있었다. 혼자인 밤은 꽤 쓸쓸하긴 하지만, 못참을 건 아니었다. 익숙하다 표현해야 맞을까.

 내일 모레면 이제 휴가가 끝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간만에 휴가를 나온지 꼭 일주일 되는 날이었다. 이틀을 감기로 날려먹었으니 아깝기도 했지만 제 팔자려니 할 수 밖에. 95식이 준비해둔 감기에 좋다는 생강차를 데워 의자에 앉아 호록대고 있자니 꼭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마음 한 구석에서 모성을 바라고 있는지도, 그리 자신을 둘러본 지휘관은 픽 자조했다. 달밤에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요.

 아직 밤이 크게 늦진 않았지만 약 기운이 도는 모양인지 하품이 실실 나왔다. 오늘은 푹 자고 내일 복귀 준비를 해야했다. 그래도 하루 전엔 부대에 들어가 몸을 적응시켜둬야겠지. 어차피 주말이기도 하니 병 간호를 해준 스프링필드나 95식에게 뭐라도 답례를 해야하기도 했다. 뭐가 좋으려나요, 하고 고민하고 있자니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요 며칠 새 하루 한 번은 울리는 듯 했다. 연고자도 없는, 혼자 사는 남자 집에 누가 그리도 찾아오는지. 설마 또 휘하 전술인형인가, 싶었다. 생각해보면 집 주소를 알려준 적도 없는데 스프링필드도 그렇고 다들 어떻게 찾아온건지.

 "네, 누구시죠."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목소리가 걸걸했다. 문을 열고 나서니 쌀쌀한 바람에 무심코 몸을 움츠렸다. 현관 앞은 텅 비어있었다. 초인종 소리를 잘못 들은게 아닐텐데. 이 동 떨어진 집에 아이가 장난이라도 치러 온 걸까.

 잠깐 밖으로 나서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딱히 인영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장난인가 싶어 그는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뜩이나 감기 기운 때문에 몸도 쌀쌀한데.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그는 다시 마시다 만 생강차를 들었다.

 생강차를 비웠을 때 쯤이었다. 다시 한 번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다시 나가본 밖은 선득한 바람 뿐. 고개를 갸웃했다. 취객이 돌아갈 길을 헤메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귀신이라던지. 그는 거기까지 생각하곤 픽 웃었다. 열 두엇 먹은 소녀도 아니고 귀신이라뇨.

 다시 의자에 앉으니 생강차가 퍽 아쉬웠다. 스프링필드도 그렇고 95식도 그렇고, 어떻게 그리도 차를 잘 우려내는지, 지휘관의 취향에 딱 맞았다. 선물은 좋아하는 음식 같은 걸로 할까요, 그리 생각하며 머그컵에 다시 생강차를 따를 참이었다. 모락모락한 김에서 올라오는 향을 즐기고 있자니 다시 한 번 초인종이 울렸다.

 어지간해선 짜증을 잘 내지 않는 그도 그쯤 되니 쓴소리가 입에서 올라왔다. 나가지 말까, 하다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곤 그는 문을 나섰다. 문 앞은 또 다시 텅 비어있었다. 그의 입에서 큰 한숨과 함께 거친 말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어딘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 있나요?"

 달빛이 들지 않는 짙은 벽 그림자에서 누군가가 움찔했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밤에 그의 집에 찾아올 사람이 누군가 있던가, 하고.

 그가 한 발짝 나서니 그림자가 한 발짝 물러섰다.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으로 다시 한 번 발을 디디니 마찬가지로 그림자도 한 발짝 물러섰다. 그 너머는 달빛이 비추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그 인영의 끝자락에 달빛이 닿았다. 백색에 가까운 은발 포니테일. 익숙한 모양새였다.

 "9A-91 씨?"
 "네, 네엣."

 놀란 듯 혀를 씹으며 답변한 그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를 틀림없이 그녀의 것이었다. 지휘관은 달빛을 바라보며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당최 제 휘하 인형들은 어떻게 알려주지도 않은 제 집 주소를 알고 있는걸까요.

 "지, 지휘관, 맞죠?"
 "네?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 목소리가……."

 제가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라도, 라는 말을 담은 그 대답에 그녀가 허둥지둥 대답했다. 아하.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갔다. 어떻게 알아낸 집 주소로 찾아온 것까진 좋은데, 초인종을 눌러도 들려오는 목소리가 익숙한 것이 아니어서 놀란 모양이었다.

 "일단 날이 쌀쌀하니까, 들어오실래요?"
 "네, 감사합, 니다……."

 깨문 혀가 아픈 듯 더듬은 그녀의 대답에 그는 자그맣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알던 지휘관의 모습이 보여서일까.

 "스프링필드 씨에게 들었어요. 아프다고 하셔서……. 저기 이거, 문병 선물이에요."

 바스락거린 건 과일 몇 가지가 담긴 종이 봉투였다. 저런 신선 식품은 꽤나 비쌌을텐데, 어디서 들었는지 나름 아픈 사람이라고 사온 모양이었다. 아픈 몸뚱이를 챙겨주러 온 이가 있다는 것과 휘하 인형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섞여 참으로 복잡했다.

 "그렇게 챙겨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프시면 안되니까요. 지휘관이 제 시선에서 사라진다면……, 상상만해도."
 "단순한 감기에요."

 이래서 그랬는데. 그는 마음 속으로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이 서툰 그녀는 그 반동인지 친한 이들에게 집착하는 성향을 보이곤 했다. 본래라면 말리고 교정해줘야하는 일이겠지만, 이따금씩 다른 전술 인형들 사이에서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외로워하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도 물러지고 마는 것이다. 여하튼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모습이었으니까.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그래도 그 정돈 아니에요."
 "정말이죠?"

 약간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치켜올려다 보는 그녀를 바라보며 난처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눈빛은 반칙이었다. 살며시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녀는 그제야 안심한 듯 눈을 감았다. 맺힌 눈물이 기어코 한 방울 흘렀다.

 "걱정 시켜서 미안해요."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곤 눈물을 슥 닦았다. 살짝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가 안쓰러웠다.

 "아프지 말아주세요. 혼자 남는 건……, 싫으니까요."

 그 말에 "약속할게요."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꼭 초상집에 온 것 같네요.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을 듯 했다. 가볍게 박수를 친 지휘관이 그녀에게 말했다.

 "무거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기로 해요. 과일 같이 먹을래요?"
 "아, 제가 깎아드릴게요."
 "손님에게 거기까지 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심한 감기는 아니었으니, 몸뚱이가 무겁다곤 해도 그런 것까지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나름대로 과도도 못다루는 정도는 아니기도 했으니. 발갛게 익은 사과가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꽤나 고급품이었다. 구하기도 힘들었을텐데.

 "지휘관은, 칼을 잘 다루시네요."
 "잘 다룰 것도 없어요. 그냥 남들만큼 하는 정도인걸요."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진 사과가 접시 위로 올라왔다. 작은 포크로 쿡 찍어 올린 사과에서 은근히 풍기는 달큰한 향기가 좋았다. 그녀는 그대로 사과를 베어물었다. 아삭거리는 소리가 기분좋게 울려퍼졌다. 딱 좋은 신맛과 달콤함이 어우러져 있었다.

 "맛있나요?"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꽤나 만족스러운 듯 했다. 지휘관은 그 표정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의외로 식탐이 있는 모양이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그닥 없던 그의 식욕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그제야 병문안을 와서 환자가 대접해준다는 이 전대미문한 상황을 깨달았는지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죄, 죄송해요."
 "아까 말했잖아요. 걱정할 만큼은 아니에요. 맘껏 먹어요."

 비꼬는 말이나 인사치레가 아니라는 것은 지휘관의 성격을 보면 알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불안해지고 마는 것이라, 허둥지둥하던 그녀는 되는대로 반쯤 베어문 사과를 그에게 내밀었다. "저기, 아, 해주세요." 이번엔 지휘관이 당황할 차례였다.

 "아, 저는 천천히 먹을게요." 그리 말해도 그녀의 포크는 내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살짝 눈가가 침울해지는 게 보였다. 포기하고 입에 넣으니, 그녀가 베시시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어라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다.

 잠시간 말이 없었다. 사과 깎는 소리와 이따금씩 아삭거리는 소리. 9A-91은 작은 웃음을 띄우며 과일을 깎는데 집중하고 있는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펜대 대신 과도를 잡고 있었지만, 그 모습은 그녀가 인정받고 싶어하는 지휘관의 모습이 맞았다.

 "저기, 지휘관."
 "네, 왜 그러시나요."
 "저는, 저희는, 잘하고 있는 걸까요."

 두서없는 질문이었다. 문득 생각난 그 물음에 지휘관은 잠깐의 지체도 없이 웃으며 말했다. "네. 제가 부족할 정도로." 평소와 다른 목소리였지만, 그의 대답은 아마 평소와 썩 다르지 않을 것이라 자신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저희를 보살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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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방면으로 공략을 시도하는 춘전이

 모성애로 안된다면 부성애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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