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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무릎베개

Erkenia
댓글: 6 개
조회: 1727
추천: 11
2017-08-26 14:30:38
 지휘관이 하는 일은 많다. 아무리 휘하의 부대원들이 전술인형들이라 할 지언정,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백 여명에 이르는 이들을 고작 부관 하나 둔 지휘관 하나가 이끌기에는 터무니없이 많은 수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겠지. 이걸 두고 과연 G&K가 이른바 블랙기업인가 아닌가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가 돌아다니곤 했다.

 지휘관에게 휴일은 없다. 그게 세간에 퍼진 G&K의 지휘관에 대한 인식이었고, 실제로도 대부분의 지휘관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안이었다. 심지어 휴일이 없는 일주일 간 당직때문에 하루이틀 정도 밤을 새고도 다음 날 휴식 없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그럼에도 크게 불평하지 않는 것은 고액에 해당하는 연봉인지,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전술인형인지, 아니면 철혈로부터 세계를 지키겠다는 정의감인지, 혹은 뭐, 또 다른 어떤 욕망일런지는 모르겠다만.

 여튼 지휘관의 속내는 딱히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겐 휴일이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당직에 이따금씩 야간작전이라도 발생하는 날엔 사나흘 밤을 꼴딱 새는 것이 부지기수. 오죽하면 휘하의 부하들과, 심지어 전술인형조차도 자기는 지휘관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고들 하니, 그들의 업무 강도에 대해서는 쉬이 짐작이 갈 것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그들에겐 잠과 휴식이 필요했다. 이루어지지 않을 희망사항을 말한다면 일주일 즈음의 휴가가, 욕심을 부린다면 사나흘의 휴가가, 현실을 감안하고 말한다면 8시간의 잠이라도 필요로 했다. 그마저도 들어줄지나 모르겠다만.

 그러니까 그들이 아주 가끔, 정말 이따금씩 있는 한가한 시간에 잠을 청하는 것은 업무 태만이라 볼 수 없다.

 지휘관은 그리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몇 시간 째였더라. 졸음에 취해 헛소리를 늘어뜨린 것 같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고 싶었다. 어제 야간작전을 끝내고선 지금까지 뒷정리를 한 것이다. 야간작전을 끝내고 온 2제대는 이미 근무 취침에서 깰 시간이 되어 있었다. 잠드는게 아닌, 깰 시간말이다.

 그나마 보고서가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서 다행이었다. 그마저 끝나지 않았으면 꼼짝없이 야근을 해야했을테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잠시 후면 저녁 식사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저녁 식사를 기다릴까, 잠을 잘까. 그는 작전 때보다 심각하게 고민했다.

 가벼운 노크 소리에 흐릿해진 정신을 붙잡고 "들어와요."하고 대답했다. 혼자 있을 때라면 상관없겠지만 이런 칠칠하지 못한 모습을 부하들에게 보일 순 없었다. 신뢰로 먹고 사는 자리다. 뒤에서 못났단 소리를 듣고 싶진 않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스프링필드가 지휘관실로 들어왔다. 한 손에 든 작은 쟁반 위엔 먹음직스런 머핀.

 "아직도 많이 남으셨나요? 도와드릴까요?"

 따로 마련된 테이블 위에 쟁반을 내려놓은 그녀가 그의 옆에 다가가 그렇게 물었다. 

 "거의 끝났으니까, 괜찮아요. 먼저 먹고 있어요."

 그가 그리 대답하니 그녀는 조금 걱정스럽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부관에게 어지간한 업무를 모두 떠넘기는 지휘관도 있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는 모든 업무를 그 혼자 처리하려고 해서 반대로 휘하 전술인형들에게 불만을 샀다. 종일 그녀들을 위한 업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다보면 마음이 불편해지기 마련이라.

 잠깐의 시간이 지났다. 머핀은 어느새 식어있었다. 그는 딱, 하고 펜을 놓고는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옮겨앉은 그는 눈 앞의 스프링필드가 조금 불만스런 얼굴로 머핀을 갉아먹고 있는 것을 그제야 발견했다. 그는 머쓱한 얼굴로 눈 앞에 머핀을 집어들었다.

 먹음직스러운 머핀을 입에 가져가 가볍게 한 입, 살짝 입을 벌린 그 순간 저도 모르게 크게 하품이 나왔다. 재빨리 입을 막아보지만 눈 앞의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많이 피곤하신가요?"
 "아뇨, 걱정할 정도는……."

 그는 그리 변명했지만, 그녀는 그의 그 말이 불만스럽다는 듯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애써 시선을 돌리니 그녀가 못말리겠다는 듯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있다가 깨워드릴게요. 잠깐 눈 붙이는게 어떠신가요?"

 그 무엇보다 강렬한 유혹의 말이었다. 삼십여분의 잠이 고팠다. 하지만 낮잠을 자는 지휘관이라니, 나태해보이지 않을까. 그간 신뢰를 얻기 위해 쌓아온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은 그에겐 그 무엇보다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가 고민하는 것을 본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옆에 앉았다. 폭신한 소파가 가라앉는 느낌. "지휘관 님." 그 무엇보다 자애로운 목소리에 그가 머뭇머뭇 그녀를 바라보았다.

 툭툭. 그녀가 그녀의 무릎을 가볍게 두드렸다.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딱히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겠지. 그가 무엇으로 고민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그녀는 가볍게 윙크하며 입가에 손가락을 댔다. 물론 그녀라면 믿을 수 있겠지만.

 "지휘관 님, 저는 괜찮아요."

 나긋한 목소리는 묘하게 잠을 불러왔다. 그는 이끌리듯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뉘였다. 혹여 게으르게 보이지 않을까, 무능하게 보이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일어나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지만, 그런 고민도 사치라는 듯 눈꺼풀은 세상 모든 무게를 짊어진 것마냥 무거웠다. 그녀가 손으로 그의 눈가를 가렸다. 불빛이 가려지고 따스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눈가를 가렸다. 그녀의 몸에 밴 달콤한 빵 내음이 코를 간질였다.

 이윽고 자그만 숨소리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잠에 빠진 그를 바라보며 살며시 웃었다.

 이따금씩 지휘관실에 들른 다른 전술인형들이 그런 그녀를 질투의 눈빛으로 본 건, 글쎄, 넘어가도록 하자.

-

구웨에엑

Lv3 Erke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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