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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지휘관은 감기에 걸렸다

Erkenia
댓글: 6 개
조회: 1448
추천: 9
2017-09-02 23:49:21
 세월이 지나고 기술이 발전했어도 감기라는 놈은 그 어떤 병보다 독한 듯 하다. 약을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7일이라고 하는 말이 아직도 통용되는 것을 보아하면 말이다.

 일교차가 제법 심해진 날씨가 감기를 몰고 모양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조금 쌀쌀해진 날씨에, 아침에 일어나보니 몸이 으스스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귀찮아지는 나른한 감각은 틀림없이 그것이라.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스프링필드가 마침 늦게 온다고 했던 날이라 돌봐줄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불러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마 그녀는 그가 부른다면 당장이라도 달려오겠지. 하지만 거기에는 지휘관과 휘하 부대원이라는 명백한 위치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니 그거야말로 직권 남용이었고, 지휘관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둘둘 둘러싸맨 이불 속에서 몸을 빼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세상 피곤한 몸뚱아리가 온기를 달라 보챘지만, 그는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뭐라도 먹고 약이라도 챙겨 먹어야 좀 나을 터이니. 상비약이 없었으니 약국에 갔다와야겠지만.

 "휴가여서 다행인가요."

 그는 목소리를 확인할 겸 혼잣말을 그리 중얼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착 가라앉은 목소리는 평소 그의 것과는 썩 달랐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뢰와 위엄을 챙겨야하는 입장에서 감기에 걸려 빌빌대는 모습을 보이며 엇나간 목소리로 지휘관실에 처박혀 있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리 생각하는 것은 그 뿐일 터겠지만. 그의 휘하 인형들은 오히려 아픈 몸을 이끌고 지체없이 업무에 임하는 그의 모습에서 감동을 느낄 것이다. 여하튼, 그들의 생각은 제법 차이가 나는 것이니까.

 주방으로 향해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찬장을 살펴보았지만, 부어버린 목에 부드럽게 넘어가 줄 음식따위는 발견되지 않았다. 약도 사와야하니 나가야겠다, 싶었다. 인스턴트 식품이든 뭐든 사와서 먹어야지.

 혹은, 그녀에게 오면서 사달라고 부탁할까. 그 정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었다. 몸이 약해지면 정신도 약해지는걸까, 싶지만. 열 때문에 멍한 정신은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누운 채로 메시지를 작성했다.

 세상 그 모든 피로를 짊어진 듯한 몸은 그 이상 꿈쩍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불 밖으로 한 발짝 나가는 것이 고역이었으니. 비틀비틀 이불 속으로 다시 파고 들었다. 일단 한숨 자고 생각하자. 한숨 자고나면 좀 괜찮아질 것이라, 그리 생각하곤 다시 눈을 감았다.



 스프링필드는 메시지를 받자마자 지휘관의 집에 바삐 달려왔다. 초인종을 눌러도, 노크를 해도 응답이 없었다. 안절부절하며 문을 열자 신발은 어제 그대로. 외출한 것 같진 않았다. "지휘관?" 그를 불러보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급한 마음에 바삐 발을 놀려 그의 침실로 향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내 그가 단순히 잠든 것임을 깨닫자 스프링필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침대 옆에 서서 손을 이마에 대니 열이 제법 있었다. 분명 심하지 않은 것인데도 덜컥 걱정이 앞서는 것은 마음에 둔 상대여서일까, 혹은 그답지 않게 먼저 부탁한 그 메시지 때문일까.

 침착하자. 사격할 때처럼. 가벼이 심호흡한 그녀는 해야할 일을 정리했다. 먼저 물수건을 준비하고, 약을 먹이고, 가볍게 먹을만한 걸 만들고. 약을 사달라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걱정되는 마음에 바삐 달려온지라 정작 약도 사오지 않았다. 어지간히 동요했던 모양이었다.

 찬물에 담근 수건을 짜는 손길이 평소답지 않게 떨렸다. 뜨거운 이마에 수건을 올려놓자마자 그녀는 재빨리 약국으로 향했다. 무심코 달음박질을 하려는 것은 그 짧은 새 그가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때문이었다. 그게 과한지 아닌지는 둘째치더라도.

 돌아오니, 아직 열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조금 가라앉은 모양인지 색색거리던 숨소리도 천천히 진정되고 있었다. 그녀는 재차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의 힘이 절로 풀렸다.

 목까지 푹 덮은 이불 위로 조금은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가 그 없이 약해보였다. 평소의 지휘관의 모습과 정반대인 그 모습에 그녀는 침대 옆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이전부터 그래왔지만, 지휘관은 인형들에겐 그 없이 잘해주면서, 그 자신에겐 한없이 엄격했다. 남에게 약한 모습을 추호도 보여주기 싫어하는 그 모습은 보다보면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조금은 의지해도 될텐데. 그리 생각하는 것은, 무심코 머리를 쓰다듬고 마는 것은, 그녀 안에서 피어나는 자그만 모성애에 비롯한다. 항상 믿을 수 있는 지휘관으로써 남아있으려 하는 그의 몇 안되는 약한 모습. 지휘관으로 임관했을 때의 그의 첫 모습이 기억에 났다.

 한 걸음 떨어져서. 그게 그의 자세였다. 분명 그는 인형들에게 호의적이었다. 부하를 아끼는 이상적인 상사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지휘관과 인형들 사이에는 한 걸음 거리가 있었다. 정확하게는 지휘관이 벌려놓은.

 언젠가 헬리안에게서 그런 그의 행동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부모도 잃고 연고자도 없이 G&K에 흘러들어온 그는, 어쩌면 무의식 중에 매우 소중한 것을 만들지 않으려 하는 것일 거라고. 흔한 이야기였지만, 안타까운 이야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를 바라보면, 인형인 그녀가 과연 그리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휘관의 모습에서 애써 어른인 체 있으려하는 아이의 모습이 보이고 마는 것이다.

 소중한 것을 다시 잃지 않으려 무의식 중에 벽을 치고 만 그의 마음 속에 들어가고 싶은 것은 비단 그녀 뿐이 아닐 것이다. 아마 모든 인형들이 어렴풋이 그 한 걸음의 거리를 느끼고 있겠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것에 기하는지도, 아마 눈치채고 있는 이들도.

 그의 마음 속에 한 걸음. 어느새 그게 그녀의 목표가 되었다. 가장 먼저 그 벽 안으로 발을 들이는 것이 그녀였다면 좋겠지만, 그게 꼭 자신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 든든해보이는 벽 안에서 애써 태연히 서있는 그 아이를 보듬어주고 싶었다.

 이번 휴가가 그 계기가 되길. 그리 바라며 땀이 배어나오는 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리곤 발갛게 달아오른 그 이마에 손을 댔다. 이 열이 그녀에게 옮겨오길 바라며.



 이마와 눈 언저리를 뒤덮는 서늘한 감촉이 기분이 좋았다. 지휘관은 천천히 눈을 떴다. 몸에는 나른한 기운이 남아있었지만 아침처럼 무기력하진 않았다. 따끔거렸던 목도 꽤나 진정되었다. 열이 나서 멍한 머리는 아직 영 돌아가진 않았지만. 그런 감각 사이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나긋한 목소리였다.

 "일어나셨나요."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리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말라붙은 입술과 부은 목에서는 "아……."하는 가라앉아 쉬어버린 목소리만이 새어나왔다. 그러고보니 자기 직전에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었다. 급히 온 모양이었다.

 "말씀 안하셔도 괜찮아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지휘관은 그녀에게서 약을 받아들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휴가가 끝나가는 주말이었다면 추가로 병가를 신청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침을 삼키는 것조차 고역인 목에 물을 마셔 억지로 약을 넘겼다. 그 모습을 본 스프링필드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놀랐잖아요. 좀 더 빨리 연락해주시지."

 그는 부루퉁한 얼굴로 그리 말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지휘관이 생각하는 건 훤하다는 듯이 말했다.

 "민폐를 끼친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아뇨, 그렇지만……."
 "지휘관."

 그녀가 그의 말을 끊었다. 잠시간의 침묵.

 "저희는, 적어도 저는 지휘관이 부르면 어디서든 듣고 있을테니까요."
 "명심할게요."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그녀는 못말린다는 듯 웃었다. "좀 더 쉬세요." 그리 말하며 그녀는 그를 침대에 눕혔다. 아직 몸이 으슬으슬했다. 이불 속이 그리웠다. 이마에 닿은 차가운 수건이 그없이 기분 좋았다.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본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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