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나와 멀록의 사이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점점 가까워졌다. 그녀는 종종 우리 학교로 찾아와 누스밤과 나를 만났고, 언제나 3명이서 함께 있었다. 어디를 가든지 우리는 3명이서 함께 움직였고, 우리는 그런 생활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거라고 믿었다. 그동안 나의 멀록에 대한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녀를 보기 위해서 그녀의 학교에 몰래 찾아가는 것은 다반사였고, 그녀가 학교에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전날부터 설렘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머리가 너무 아파와도 그녀와 함께 있을 때는 아픔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그녀를 점점 더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아무 말도 아무런 고백도 하지 못했다. 그녀와의 관계가 깨져버린 거울처럼 산산조각 날까 두려웠다. 한번 깨져 버리면 절대로 다시 그녀의 얼굴을 못 볼 수도 있기에 나는 언제나 두려웠다. 그래서 언제나 난 내 마음을 숨겨왔다. 그녀가 웃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었기에, 그녀를 계속 만나고 싶었기에 난 내 마음을 조심스레 포장지에 싸서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두어야만 했다.
"누스밤!"
"응?"
"멀록 온다는데?"
"또?"
"또 가 뭐야. 또 가."
"멀록이는 공부도 안 한다니.."
"멀록이네 학교는 시험 끝났다던데?"
"우리는 시험 안 보냐.."
"그렇긴 하지."
"오지 말라고 그래야겠다."
"왜?"
"왜긴. 지금까지 뭐 들었냐?"
"그래도 뭐. 놀면 얼마나 논다고."
"참.. 너도 이상하다."
"응? 뭐가?"
"멀록이 온다고 하면 만사 제쳐두고 놀러 가는구나."
"아.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럼 오지 말라 그래."
"에이씨. 그럼 나랑 놀다 보내지 뭐."
누스밤은 그런 나를 한심스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나도 내 자신이 한심스러울만큼 바보 같다는 것을. 하지만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라도 만나지 못한다면 난 내 자신이 정말로 힘들어 질것만 같았다. 그날 오후 멀록이 학교로 찾아왔다.
"여! 친구!"
"응. 멀록 안녕!"
"누스밤은?"
"누스밤은 시험 공부한다고 못 온다는데?"
"아 그래? 그럼 괜히 왔나."
"아냐. 나랑 놀지 뭐."
"넌 시험 공부 안 해?"
"아.. 뭐.. 난 평소에 다해놨지!"
"평소에도 나랑 놀았잖아."
"난 원래 똑똑해서 괜찮아."
"히히."
우리는 그렇게 단 둘이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화중아."
"응?"
"남들이 우리 보면 데이트 하는 줄 알겠다. 히히."
커피숍에 나란히 앉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말하는 그녀. 그녀는 그런 말을 가끔씩 나에게 하곤 했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난 심장이 아플만큼 뛰었다.
"뭐..뭔소리야.."
"뭘 당황하고 그래. 내가 니 혼삿길 망칠까봐?"
"아니 뭐."
"짜식. 내가 그냥 장난치는 거지. 어째 매번 장난칠 때마다 넌 반응이 그렇게 재밌냐? 히히."
한참을 웃다가 다시 자기 할 일에 열중하는 그녀였다. 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이 전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알기에 난 이렇게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화중!"
"응?"
"왜 그렇게 쳐다봐?"
"아?"
"아?가 아니잖아. 뭘 그리 쳐다봐."
"아. 그냥 너 뭐하나 본거야."
"아아. 그렇구만. 난 또 내가 이뻐서 쳐다보는건가 했지."
"응. 그렇기도 하고."
멀록은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한건지 몰라서 당황하여 들고 있던 펜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너.."
"으응?"
"너.. 설마.."
"뭐..뭐.."
"요즘 나한테 너무 당해서 연습하는 거야? 오.. 순간 설레일뻔 했는데?"
정말 눈치 없는 멀록이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런 눈치 없는 그녀이기에 우리의 관계를 계속 지속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 같은 나였다.
"아.. 술 마시러 가고 싶다."
"갈까?"
"그래!"
멀록은 하고 있던 것을 정리하였다. 그러던 그녀가 나에게 말을 했다.
"누스밤도 부르자!"
"어.어."
누스밤에게 전화를 했더니 잠시 쉬고 있었다며 내려올테니 먼저 가 있으라고 하였다. 난 멀록만큼 눈치 없는 누스밤이라고 속으로 답답해 했지만 내색 할 수는 없었다. 잠시후 멀리서 그녀가 보였다.
"야!"
"응?"
"너희 나 버리고 술 마시려고 했지?"
"아니거든?"
"아냐. 분명 화중이 저 자식은 날 버리고 갈라고 했을거야."
"맞아."
"것봐! 맞다잖아!"
"그래서 안 갈꺼야?"
"갈래."
"히히. 가자!"
"가자!!"
멀록은 갑자기 나의 팔짱을 꼈고, 나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라? 너희끼리만 팔짱 낀다 이거지?"
누스밤은 나의 반대편 팔짱을 꼈고 그렇게 우리는 술집으로 향했다.
술집에 간 우리는 한참을 즐겁게 놀았다. 난 거의 들어주는 역할이었고, 누스밤과 멀록의 수다는 끝이 날줄을 몰랐다. 그 순간 난 속이 너무나 거북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고 모든 것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우엑.."
"괜찮아?"
뒤따라온 누스밤은 걱정스러운 듯 나의 등을 두들겨 주고 있었다.
"아.. 왜 이러지.."
"너 많이 안 마셨잖아?"
"응. 아. 속이 점점 안 좋아. 우엑.."
"병원 가보는건 어때?"
"병원은 무슨.. 큭큭.. 아직 스무살이라고.."
"머리도 매일 아프고.."
"에이. 괜찮아. 괜찮아. 멀록이 심심하겠다. 들어가봐."
"........ 너도 말 참 안 들어."
"큭큭. 어여 들어가."
난 계속 고개를 숙이고 속에 있는 것들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당신이 까페에 앉아서 나에게 했던 말을 생각하면 아직도 설렌답니다. 우리가 연인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그날 밤 밤새도록 환호하며 행복해했죠. 실제로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라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어요. 하지만 꿈은 꿈이었던 것 같아요. 만일 그렇게 됐다면 전 이미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너무나 아플 만큼 두근대던 심장이 못 버텼을 테니까요.
화중의 편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