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다음 날 누스밤이 병실에 다시 왔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평소처럼 나를 간호하였다.
“누스밤.”
“.............”
“거기 있는거 알아..”
“.............”
“당장 돌아가. 이제 너의 도움 따위 필요 없으니까.”
“.............”
난 누스밤이 들고 있던 물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버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고, 쟁반 위의 물병은 쉴새 없이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꺼져. 그만 사라져. 난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내 눈 앞에서 꺼져. 병신 같이 변해버린 나를 동정하지 말고 꺼지라고.”
“..... 동정이 아냐.”
“사랑? 그런 개소리 집어 치워. 사랑이 밥 먹여줘? 나 사랑해서 뭐가 나와? 아무런 도움도 안되. 아무데도 쓸데 없어. 그러니까 제발 좀 꺼져.”
“그러지마..”
“제발 아무 소리 하지 말고 사라져. 내가 너한테 했던 말 기억해? 너한테 착한 냄새가 난다고? 응. 가식적인 착한 냄새. 어젯밤 니가 마셨던 술냄새랑 같이 내 코를 너무 괴롭혀. 그러니까 좀 꺼져.”
“그..러지마..”
“나 멀록 좋아하는거 알지? 니가 여기 와서 백날 이래봤자 내 마음이 변할 리가 없다는거 잘 알고 있지? 너 이래봤자 나 변하지 않아. 너한테 가지 않아. 그러니까 제발 좀 꺼지라고!!”
난 주위에 있는 것을 잡아서 그녀가 있다고 생각한 쪽으로 던졌다. 제발 맞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내 손에 잡힌 것은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눈이 멀어도 향기는 맡을 수 있지 않냐며 꽂아 놓은 장미꽃이 담긴 꽃병이, 내가 언젠가 종양을 제거하고 눈이 보이면 읽으라며 사다준 소설이, 나를 위해서 매일 같이 빨아서 갈아주는 베개가, 그리고 나에게 상처를 안겨준 그녀의 전화기가 날아갔다.
“악.”
난 기어코 그녀를 맞추고야 말았다. 그녀가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고, 그녀가 조금씩 눈물 흘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지긋지긋해. 병신 같이 침대에 누워서 니 도움만 바라는 내 모습이 병신 같아. 그러니까 제발 좀 사라져줘. 나 종양 다 제거한다고 해도 정상인이 되지 않아. 알잖아? 그러니까 평생 내 병신 같은 모습 보고 싶지 않으면 꺼지라고.”
“보고 싶어.”
그녀가 입을 열었다.
“보고 싶어. 니가 재활 훈련 하는 것도 보고 싶고, 니가 앉아서 날 바라보는 것도 보고 싶고. 설령 니가 멀록한테 간다고 해도 그 모습마져도 보고 싶어. 그래서 있는거야. 가라고 하지마.”
“지랄하지마. 그건 사랑이 아냐. 동정이야. 위선이고 가식이야.”
“아니야!”
“아니라고 하지마. 니 가슴에 얹고 생각해. 너 속으로 생각 했을걸. 누워서 잠만 자는 내 모습을 보고 생각 했겠지. 저런 꼴을 도대체 왜 봐야 하나. 차라리 소개팅이나 하고 다른 사람 만나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 안 해봤어? 가서 살아. 니 인생을 살아. 병신 같은 날 버리고 그만 꺼져.”
“아니야. 왜 그래. 나 그런 생각 한적 없어.”
“내가 니 냄새는 더러워서 못 맡겠어. 그러니까 꺼져. 다시 한번 이 병실에 돌아온다면 그때는 내가 사라져주마. 이 지긋지긋한 인생 내 손으로 내가 끊어주마!!”
“................”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난 보이는 듯 했다. 울고 있는 그녀가 천천히 일어나 주섬주섬 자신의 물건을 챙기는 모습을..
“빨리 나가!!”
나의 고함소리가 병실안에 울려 퍼졌고, 잠시 후 그녀가 병실을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갈께.. 다시는.. 다시는 오지 않을테니까.. 사라진다는 말만.. 하지마..”
그녀는 그 말과 함께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이 닫힘과 동시에 난 이불을 끌어 안고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이제는 더 이상 당신에게 편지를 쓰지 않으려고 해요. 저의 마음은 모두 편지 안에 적어 놓았으니. 내일 전 3번째 수술을 해요. 선생님이 잘 될거라고 했지만.. 전 알고 있어요.. 이번 수술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힘들지.. 그래도 기운내서 수술 잘 받을려고 해요. 그래야 당신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편해질테니까.. 마지막 편지가 될지도 몰라요.. 미안해요.. 괜히 나에 대해서 당신에게 알려줘서..
화중의 편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