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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퀘] 먼저 다가가지 못해서.. (10)

아이콘 푸른나비
댓글: 6 개
조회: 69
2011-02-25 23:32:31

 

 


# 10



3차 수술을 3일 남겨둔 날이었다. 난 이제 먹는 것도 소화 시키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한 겨울의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변해 있었다. 누스밤은 여전히 내 옆에 있었고 날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었다.


“화중”

“응?”

“나. 오늘은 좀 늦을거 같아.”

“괜찮아. 괜찮아. 오늘 혼자 잘 있을테니까 학교 가서 좀 놀다와.”

“밤에 꼭 돌아 올거야. 잘 자고 잘 놀고 있어. 화장실은 간호사 언니들한테 부탁해 놓을게.”


누스밤은 평소와는 다르게 학교를 가봐야 한다며 급하게 병실을 빠져 나갔다. 난 혼자 멍하니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넌 장난이라 해도.”


어디선가 누스밤의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급하게 나가더니 핸드폰 놓고 간건가..”


난 조심스럽게 손으로 주위를 더듬으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움직였다. 벨소리는 금방이라도 끊길 것 같이 나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고, 난 최대한 빨리 움직이려 했지만, 앞이 보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거북이처럼 느리게 걷고 있었다.


“아.. 끊겼다..”


난 혹시라도 누스밤이 전화를 해서 자신의 핸드폰을 찾는 것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음.. 이쪽이.. 통화 버튼이겠지..”


누스밤의 핸드폰은 다행히도 터치폰이 아니었기에 난 통화 버튼을 두 번 눌러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곳에 연결할 수 있었다.


“여보세요.”


낯익은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 나왔다.


“여보세요. 누스밤! 나 멀록이야!”


심장을 멈추게 하는 이름. 멀록이었다.


“누스밤? 전화가 잘 안 터지나?”

“여..여보세요..?”

“응? 누구?”

“나.. 화..중이야..”

“화중이? 목소리가 변해서 몰랐어! 잘 지냈어?”


너무나 해맑게 인사를 하는 멀록이었다.


“아.. 응.. 잘 지내지.. 미국 갔다더니..”

“방학 때라서 잠깐 한국 들어왔어.”

“아.. 그렇구나..”

“근데 목소리가 정말 많이 변했다. 이제 와서 변성기라도 된거야? 히히”


웃음소리도 그대로였고, 말투도 그대로였다. 그녀는 분명 멀록이었다.


“멀록아..”

“응?”

“혹시.. 내 편지.. 못 받았니?”

“편지? 무슨 편지?”

“누스밤이.. 편지 보내지 않았어?”

“아아. 편지! 누스밤이 직접 안부 전하던 그 편지 말이야? 나 답장도 보내고 그랬는데”


배신감. 참을 수 없는 배신감이 느껴졌다. 누스밤은 날 속인 것이었다.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써내려 갔던 나의 편지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아마도 쓰레기통이겠지.


“화중아?”

멀록은 예전과 같이 다정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응?”

“내가 지금 조금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 하자. 오랜만에 통화해서 정말 반가워.”

“응.. 그래..”
“그럼 안녕!”

“뚝.”


끊어져버린 전화 통화. 마치 어느 순간 단절 되어 버린 우리 사이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이었다. 간호사에게 마지막으로 물어 봤을 때가 11시였기에 한참 있다 누스밤이 들어온 걸로 봐서 12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화중.. 헤헤.. 나왔어..”

“...........”

“우리 화중이.. 자나..”


술 냄새가 났다. 난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술 냄새나.”

“윽.. 좀만 마신다고 마신건데.. 헤헤.. 미안..”

“누구랑 마셨어?”

“아.. 아는 선배랑..”

“남자?”

“뭐..”

“남자구만..”

“.............”

누스밤은 아무 말도 없었다.


“자.”

“내가.. 너한테 뭐야..?”

“뭐냐니..?”

“내가 도대체 너한테 뭐냐고..”

“...........”

“나 소개팅 한거야.”

그녀가 소개팅을 했다는 말에 가슴이 순간 시린 것은 나의 착각이었길 바란다..


“화도 안 나지? 아무 감정도 안 느껴지지?”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내가.. 간병인이야? 내가 그냥 니 똥오줌만 받아내야 하는 그런 사람이야?”

“아니지..”

“그래! 아니야! 나 그런 사람 아니라고!”

“알아.”

“근데도 나 이렇게 너한테 와 있어. 그 선배가 나에게 관심 있다느니 계속 만나자느니 그런 말을 계속 해댔는데도 난 니 생각만 하고 있었어. 근데 그런 나한테 뭐라고?”

“...........”

“나쁜 새끼.”


그녀는 그 길로 병실의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사실 잘 모르겠어요. 요즘 들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전에는 당신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이제는 조금씩 무뎌지는거 같아요. 당신이 너무 보고 싶고 당신 목소리가 듣고 싶은데, 막상 듣고 났는데..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은 내 자신에 놀랐어요. 나 이런 나쁜 남자인가봐요. 말로만 당신을 사랑했던건가봐요. 모르겠어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화중의 편지 中」

Lv70 푸른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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