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큭큭.”
“오빠가 뭐래?”
“뭘 뭐래 큭. 멀쩡하데.”
“아 그래?”
“응. 그냥 밥 좀 굶고 그래서 그런거래.”
“아........ 다행이네..”
“걱정 했냐?”
“내가 왜 니 걱정을 해.”
“하긴 큭.. 아 피곤하다. 나 먼저 간다.”
“저녁 먹고 들어가.”
“아. 아냐. 피곤해.”
“그..래..”
“미안. 다음에 먹자.”
난 누스밤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아니 그 어느 누구라도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뇌종양이라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면 분명 오진이라고 나올 거라 생각했다.
“개소리.. 뇌종양이라니..”
오늘따라 멀록이 더욱 보고 싶었다. 그녀가 있으면 이 빌어먹을 병이 나을거 같았다.
“보고싶다.. 멀록..”
다음 날, 아침부터 나의 자취방 문을 부서져라 두들기는 사람이 있었다. 난 밤새 혼자 술을 마시다 잠든 상태였기에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문 열어!!”
“아.. 누스밤..”
내가 문을 열자마자 누스밤은 나의 뺨을 때렸다.
“짝!”
“이 나쁜 자식아! 이 멍청한 자식아!”
난 그녀를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가 할 말이 어떤건지는 잘 알고 있었다.
“나쁜 새끼! 니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큭..”
“웃어? 웃음이 나와! 이 나쁜 새끼야!”
누스밤은 나의 가슴을 주먹으로 계속 때렸다. 하지만 난 전혀 아픔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내가 아팠던건 그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오빠한테 다 들었어..”
“의사 자격 없는 사람이네.. 환자 정보나 흘리고..”
“여기서 말장난이 나와!”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나의 물음에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상태로 현관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난 그녀를 조심스레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화중..”
“응.”
“병원에 입원하자. 수술 받자.”
“...............”
“수술 받으면.. 괜찮아질 거야.. 응? 제발.. 수술 받자..”
“어제 집에 와서 이것저것 많이 찾아 봤어. 사망률 20%. 종양크기에 따라서 건강, 위치, 나이에 따라서 생존률은 달라지지.”
“그래! 나도 알아! 악성이 아닐 수도 있잖아. 조직검사부터 하자.”
“........ 꼭 그래야만 해?”
“뭐?”
“그래야만 하냐고..”
“...........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야?”
“그냥. 귀찮아졌어. 너 내 엑스레이 봤어?”
“응.....”
“정말 엄청나게 크더라. 우와. 내 머릿속에 이런게 있어서 내가 머리가 아팠구나라고 생각하니까 정말. 뭐랄까. 정말 다 귀찮고 짜증나더라.”
“..........”
“그냥.. 다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야. 그 기분 알아?”
“나도.. 이해..”
“할 수 있다고? 거짓말하지마. 아무도 이해 못해.”
“.......... 미안..”
난 왜 그렇게 누스밤에게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머릿속의 종양이 점점 내 성격까지 바꿀거라는 의사형의 말이 기억이 났다.
“아.. 이 빌어먹을 종양이 날 가지고 노는구만..”
“열받으면.. 수술 받자..”
“넌 계속 그 소리만 할거면 돌아가라.”
“싫어.”
“왜? 왜 싫은데? 내가 듣기 싫다는데 왜 그렇게 고장난 테잎처럼 계속 말하는데?”
“몰라? 정말 몰라서 물어?”
“그래! 모르겠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내가 너 좋아해서 그런다! 됐어!?”
너무나 절박한 그녀의 음성이 나의 귀에 들려왔다.
“내가! 너 좋아한다고! 10년을 좋아했어! 고백도 못하고 병신 같이 니 주변에서 맴돌았어! 너도 나랑 같은 마음이길 바랬어! 근데 아니었지! 그래도! 그래도! 병신 같은 놈! 너 죽는거 나한테 허락 맡고 죽어! 내가 너 살릴거야! 내가 너 살릴거라고!!!!”
떨림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녀의 목소리. 온갖 감정이 묻어나 있었지만 그녀는 어느샌가 눈물을 거두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난..”
“알아! 니가 멀록 좋아하는거! 내가 너 같이 병신이 아니라서 다 알고 있어! 그래서 힘들어! 지금은 근데 내가 니 옆에 있어! 그러니까! 검사 받어. 수술 받어. 그리고 나한테 다 갚어. 내가 널 아낀만큼 너도 계속 살아 있어줘!”
“...................”
“지금 당장 따라와. 검사 받으러 가자.”
“누스밤..”
“닥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마”
난 그렇게 그녀에게 이끌려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조직검사를 통해 내 종양은 악성이고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결국.. 수술 해야 하는구나..”
“....... 성공할거야..”
“누스밤..”
“성공 할 수 있어.”
난 누스밤을 안아주었다. 그녀는 이내 내 품안에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저에게 누스밤은 너무나 소중한 친구였어요. 하지만 전 단 한번도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었죠. 제가 당신을 바라볼 때 그녀는 절 바라봤겠죠. 당신이 절 바라보지 않아 슬픈 마음을 그녀도 저 때문에 느꼈겠죠.. 그 마음이 얼마나 슬픈건지 잘 알면서도.. 전 아직도 그녀의 마음을 받아 주지 못해요. 조금씩 움직일 수 없고 뻣뻣하게 굳어가고 있는 저. 화중이지만.. 그녀의 마음을 받아 주지 못해요.. 사랑이란 어쩔 수 없는건가봐요.. 전 아직도 꿈 속에서 당신만을 찾아 헤매거든요..
화중의 편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