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우리는 정자에 앉아서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체온만 느끼고 있었다. 마침내 비가 조금씩 그쳐가기 시작했다.
"내려갈까?"
"으..응.."
누스밤과 나는 천천히 펜션 쪽으로 이동했다. 난 멀록이 아직도 자고 있는건지 궁금했다.
"멀록. 아직 자?"
난 문을 열며 방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화장실 문은 열려 있었고, 그녀의 짐가방도 없어진 상태였다.
"화중아. 멀록 아직도 자?"
누스밤은 방에 들어왔다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방을 보고는 의아해했다.
"멀록이 없어."
"가방도 없네?"
"전화. 내 전화 어딨지."
난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의 전화는 당분간 수신을 할 수 없으니.."
"누스밤."
"응?"
"이상해. 내 전화가 미쳤나봐."
"왜?"
"멀록한테 한번 전화해 볼래?"
"응. 잠깐만."
누스밤은 나의 표정을 보고 심상치 않다는걸 알고 멀록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안돼.."
"나만 그런건 아니군.."
"뭐지.."
"전화 해지 한 다음에 나오는 음성 아냐?"
"응.."
"아무래도 이상해. 역에 갔다 와야겠어."
난 펜션 주인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201호인데요."
"아. 네. 수목원 가셨다면서요?"
"네? 어떻게.."
"아. 좀 전에 같이 계시던 아가씨가 먼저 서울에 간다면서 태워다 달래서."
"네? 언제 역으로 갔어요?"
"아까 비가 한참 내리기 전이니까. 한 시간 넘었을거에요."
"아..아저씨 지금 어디 계세요? 저 좀 역에 태워다 주세요."
"지금 도로가 아까 내린 비에 혼잡해서 30분은 넘게 걸릴거 같아요."
"아저씨. 혹시 여기 택시는 없어요?"
"택시고 뭐고 지금 아무것도 못 다녀요."
"아..알겠습니다.."
난 갑자기 머리가 너무 아파서 머리를 붙잡고 바닥에 주저 앉았다.
"화중아. 왜 그래?"
"몰라.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는데 멀록이 서울로 돌아 간다고 갔데."
"무..무슨 말이야?"
"나도 모른다고!!"
난 있는대로 큰 소리를 지르고 펜션 밖으로 뛰어 나갔다. 가평역부터 펜션까지는 차로 15분. 30분이면 뛰어갈 자신이 있었다. 조금씩 내리던 빗줄기는 다시 굵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 가평역에 가봐야겠어.."
"화중아. 비가 점점 많이 내려."
"다녀 올게."
난 말리는 누스밤을 뒤로 하고 가평역으로 뛰기 시작했다. 비는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눈 앞이 보이지 않을만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욕지기가 나왔다. 점점 숨이 차올랐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왠지 다시는 그녀를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랑 인사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그녀를 보낼 수는 없었다.
"기다려 멀록. 제발 기다려."
뛰었다. 체력장 이후에 이렇게 열심히 뛴 적이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힘이 들어도 뛰어야만 했다.
"멀록아. 기다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이었어요. 내가 역에 도착했을 때 당신은 이미 열차를 타고 떠나버린 후였죠. 내 주머니에 들어 있던건 다 젖은 담배 한갑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이 망가져버린 휴대폰 뿐이었어요. 난 그곳에서 멍하니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죠. 여행을 오던 사람들도, 가던 사람들도 날 보며 수근거렸지만 난 울음을 멈추지 않았어요. 당신이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아직도 알 수 없어요. 이 편지를 읽고 나면 그때는 대답을 해줄까요?
화중의 편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