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누스밤.”
“응?”
“나 부탁이 있어.”
“뭔데?”
난 주섬주섬 침대 시트 밑에 손을 갖다댔다. 내가 찾는 것은 편지들이었다.
“이거..”
“이게 뭐야?”
“멀록한테.. 좀 전해줘..”
“멀..록한테..?”
“응..”
“언제부터 쓴거야..?”
“내가 병이 있다는걸 알고나서부터..”
“..........”
“부탁할께.”
“그래.”
누스밤은 나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나갔다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현재 난 눈이 거의 멀어 있는 상태였다. 의사 선생님말로는 수술이 잘 되면 시력이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물론 난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기적이라는건 나에게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잠시후 누스밤이 돌아왔다.
“화중. 나 왔어.”
“응. 고마워.”
“밖에 비가 내려.”
“그래? 창문 좀 열어줄래?”
그녀가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과 함께 빗소리가 들렸다.
“누스밤.”
“응? 여기 있어.”
“매일 같이 여기에 있어도 괜찮은거야?”
“응..”
“학교도 안 가는거 아냐?”
“아냐. 매일 학교는 잘 가고 있어.”
“거짓말 하는거 아니지? 난 마음의 눈으로 다 볼 수 있다고.”
“거짓말 아니야. 바보.”
난 그녀의 말이 거짓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내 옆을 지키다가 잠을 잘 때도 내 옆에서 잠을 자곤 했다. 그녀가 가끔씩 자리를 비우는건 자신이 갈아 입을 옷을 가지러 갈 때 뿐이었다.
“엄마가 계셔도 되는데..”
“어머님은 일 나가셔야 하잖아..”
“하긴.. 병원비가 만만치 않을테니까.”
“또 그렇게 말한다. 그 놈의 종양 얼른 수술해서 없애야지 성격 다시 좋아지지.”
“큭큭.”
“웃기는..”
“난 비 오는 날이 제일 좋아.”
“왜?”
“햇살 밝은 날은 느낄 수가 없지만.. 비 오는 날은 들을 수는 있으니까..”
“...............”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아마도 울고 있으리라..
“미안.”
“... 흑.. 왜.. 뭐가 미안해..”
“울지마..”
“아냐.. 흑.. 안 울어.. 그냥.. 흑.. 그냥..”
“눈이 멀어도 보이는게 뭔지 알아?”
“흑.. 뭔.. 흑.. 뭔데..?”
“누스밤의 따듯함.”
“흑.. 흑..”
“에이.. 울지 말라고 한 말인데 더 울면 어떻게 해..”
“바보.. 흑..”
그녀가 일어나는 소리가 났고,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어휴.. 나도 참 나쁘다..”
한달이 지난 후. 누스밤에게 난 물어보았다.
“저.. 누스밤..”
“응?”
“혹시 답장.. 없었어?”
“답장?”
“응..”
“매일 확인해 보는데.. 없네..”
“받긴 한 거겠지?”
“응.. 받았을거야..”
“그래.. 이거.. 이번에 또 쓴 편지인데.. 좀 보내줄래..?”
“응.. 이따가 학교 가면서 보내줄게.”
“에.. 그래. 정말 고마워.. 근데 멀록은 날 잊었나보다. 큭큭.”
“..............”
“누스밤? 누스밤?”
“..............”
“거기 있는거 다 알아.”
“어떻게..?”
“누스밤한테는 착한 향기가 나니까.”
“피.. 착한 향기가 뭐야..”
“누스밤한테만 나는 향기야. 너무너무 착하고 따듯해서 향기가 되어 나는..”
“거짓말쟁이.”
“아냐. 진짜야. 그래서 난 아. 누스밤이 왔구나. 한다니까?”
“치..”
“큭큭. 내가 평소에 그렇게 거짓말을 많이 했나? 난 그런 기억 없는데.”
“많이 했어. 안 믿어 줄거야. 흥.”
“큭큭큭.”
“헤헤”
난 여전히 멀록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 누스밤한테 미안한 일이고, 누스밤한테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걸 알고 있지만 난 그녀의 답장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보낸 편지를 받았으려나.. 사실 보내지 말아야 할 편지들이긴 했지만.. 아무런 답장이 없다는건 날 잊었거나, 아니면 날 피한다는거겠죠? 그럴거라고 생각해요. 멀쩡한 사람도 아니고.. 괜히 가슴 아프게 편지 써서 미안해요.. 그냥.. 이렇게라도 외로움 달래지 않으면.. 정말 제 자신에게 화가 날거 같아서.. 제 자신을 버릴 것 같아서 그래요.. 읽지 않아도 좋아요.. 절 잊어도 좋아요.. 오늘도 전 이렇게 진심이 아닌 말들을 쓰네요..
화중의 편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