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한 장르 구분은 한 때 꽤 명료한 게임 분류 도구였다. FPS, RPG, RTS는 모두 어떠한 스테레오타입적 이미지를 갖추고 있었으며, 이 짧은 단어 하나로도 게이머들은 게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게임 하나에 모든 것을 담지 못하던 시절에, 이 분류 체계는 상당히 간단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게임을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게임을 설명할 때면 이 기존의 장르 구분만으론 설명이 궁색해진다. FPS인 듯 하면서도 RPG에 더 가까운 게임이 있고, 액션 게임인가 싶지만 사실 액션보다 다른 요소가 돋보이는 게임도 있다. 턴제 전략에서 실시간 전략으로, 그리고 액션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슈터'라는 장르 하나에서도 수없이 많은 방식의 제각기 다른 슈터들이 만들어진다.
당연히, 하나의 게임에 여러 장르가 섞이고 붙는 건 예사이며, 때로는 개발사가 나서 새로운 장르명을 언급하기도 한다. 개발사들의 기조가 더 이상 '어떤 장르'의 게임을 만드는 것과는 멀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의 게임 개발사들은 게임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장르를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플레이어가 어떤 경험을 얻기를 원하는지를 우선하는 '경험 주도 설계'가 먼저 이뤄진 후, 완성된 게임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장르를 언급할 뿐이다.
예를 들어 최근 출시된 '하이가드'의 경우 "점진적으로 에스컬레이션되는 긴장 곡선"을 의도한 후, 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기존 게임들의 여러 요소들을 섞어 넣었으며, '명일방주: 엔드필드'는 "전투와 성장, 생산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환적 장기 플레이"를 설계하기 위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팩토리 시뮬레이팅을 게임에 끼워넣었다.


과거에도 기존 장르 체계에서 탈출하고자 한 경우는 있었으며, 대표적인 예시가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들이다. 메탈기어 시리즈가 표방하는 장르명인 '택티컬 에스피오나지 액션'은 대체 무슨 말인가 싶지만 기존의 액션 게임들과는 전혀 다른 메탈기어 시리즈의 핵심 경험을 설명하는 문장이며, 테일즈 시리즈의 요상하기 짝이 없는 장르명 또한 그들이 의도한 '플레이어의 경험'을 기존 장르 구분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에 나온 방식일 거다.
이렇게, 게임이 '어떤 형태를 하고 있느냐'보다 '어떤 경험을 주는가'의 시대로 넘어왔다.
문제는, 이 시점에서 게임을 어떻게 분류하냐일 것이다.
현 시점에서 흔히 쓰이는 '해시태그'는 일견 좋아 보이지만 사실 장르를 잘게 쪼갠 단위에 불과하다. 기존 장르 구분이 '무엇을 닮았는가?'의 형태로 게임을 설명했다면, 해시태그는 '무엇이 들어있는가?'로 게임을 설명한다. 당연히, 이 또한 게임이 의도하는 경험을 설명할 수는 없다.

게임의 분류는 게이머보다 개발사를 위해 더 필요하다. 모든 게임이 의도하는 바가 다르고, 원하는 플레이어의 경험이 다른 상황에서 굳이 분류가 필요할까 싶지만, 어떤 게임이 게이머에게 이미지를 남기기 위해서는 이 게임을 판단하게 만들 객관적인 분류 기준이 요구된다. 더 많은 게이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결국, 분류의 중심(Axis)이 장르에서 경험으로 옮겨지고 있는 지금, 이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보편적 도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이런 형태의 툴로 게임이 주고자 하는 경험을 어느 정도는 객관화할 수 있다.
| 분류 기준 | 핵심 질문 | 설명 |
|---|---|---|
| 판단 중요도 | 플레이 중 판단이 핵심인가, 실행이 핵심인가? | 선택의 빈도와 무게(결정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를 가늠 |
| 서사의 완결성 | 명확한 엔딩이 존재하는가? | 캠페인형/무한 반복형 구분에 도움 |
| 플레이 단위 | 한 판/세션의 길이는 어떻게 설계됐는가? | 짧은 경기 중심인지, 장기 몰입 전제인지 |
| 집중 요구량 | 온전히 집중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가? | 피로도·진입 장벽·플레이 환경(퇴근 후/주말) 판단 |
| 실패의 의미 | 실패는 학습인가, 페널티인가, 서사인가? | 좌절/성장/회복의 감정 곡선을 결정 |
| 반복 구조 | 무엇을 반복하게 만드는가? | 전투·성장·관리·탐험 등 핵심 루프 파악 |
| 통제감 | 플레이어는 상황을 얼마나 통제하는가? | 즉흥성(변수) 중심인지, 계획성(최적화) 중심인지 |
| 시스템 의존도 | 재미가 시스템 이해에 얼마나 의존하는가? | 학습 곡선과 ‘알면 재밌는’ 정도를 설명 |
| 목표 명확성 | 목표가 명확히 주어지는가, 자율적인가? | 가이드형/자유형 플레이 성향 구분 |
| 플레이 리듬 | 빠른 템포인가, 느린 템포인가? | 체감 속도와 몰입 방식(긴장 vs 여유)을 요약 |
일견 복잡하고 기준도 모호해 보이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게임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개발사가 줄줄이 풀어 설명하는 부분들을 도식화한 표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게임 행사를 가도, 어느 인터뷰를 가도 개발사는 게임의 장르를 말하지 않고 이 표에 거론된 요소들을 하나씩 풀어 설명한다.
물론, 이는 완벽한 해답이 아닌 예시에 가깝다. 하지만, 어떤 모습이 되었든 '형태'가 아닌 '경험'을 중심으로 설계하는 게임들에 대한 분류 기준은 분명 필요해 질 것이다. 그것이 게이머의 필요에 의해서든, 개발사의 니즈를 따라서든 말이다.
최초, '장르의 한계'에 대한 생각을 한 건 이미 10년도 더 전이다. 그 당시에도 이미 장르 구분은 이상했다. RPG와 시뮬레이션은 게임의 경험에 의거한 분류였고, FPS와 슈터는 게임의 형태에 의한 분류였으며, '공포'는 게임이 전달하는 감정에 의한 분류였다. 그렇기에 언제가 되었든, 이 분류 체계에 정리는 게임 산업이 나아가는 과정에서 꼭 한 번 짚고 넘어갈 부분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화두를 던지는 거다. 개발사가 장르를 중심으로 게임을 설계하지 않는 이상, 게임을 분류할 새로운 언어와 도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