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이를 둘러싼 에피소드와 가십들이 많지만, 막상 이를 주제로 리뷰를 시작하고자 하니 무엇부터 꺼내들어야 할지 난감해지는 타이틀이다. 그러니, 정확한 사실부터 하나씩 읊어보자.
개발사인 '펄어비스'는 '검은사막' 하나의 게임으로 성장했고, '붉은사막'은 검은사막 이후 처음 등장하는 펄어비스의 메인 타이틀이다. 검은사막 모바일이 있었고, '도깨비'와 '플랜8'이라는 미지수의 타이틀이 공개되긴 했지만, 펄어비스 개발사(史)의 명맥을 잇는다고 말할 작품은 명명백백 '붉은사막'이다.
펄어비스는 '붉은사막'을 '회색갈기'라는 집단의 일원인 '클리프'가 파이웰 대륙에서 겪는 이야기를 담은 액션 어드벤처이며, 거대한 오픈월드 내에 수많은 콘텐츠와 강렬한 액션, 다양한 서사가 함께할 것이라 설명했다.
여기까지가 드러난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 리뷰에서는, 그간 펄어비스가 보여주지 못했고, 보여주지 않았던, 붉은사막을 실제 플레이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모습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려 한다.
ℹ※ 리뷰 참고! - 리뷰 진행 중 업데이트가 세 번 진행됐으며, 엔딩을 이미 본 이후에도 업데이트가 이뤄졌다. 때문에, 리뷰의 내용과 출시 시점의 본편 게임 간에 다소 상이한 부분이 있다. 플레이 시간은 총 75시간이며, 메인퀘스트(엔딩) 및 다수의 서브 퀘스트를 클리어했다.
▲ 오픈월드 스케일과 막대한 콘텐츠, 거짓은 없었다
붉은사막의 사전 공개 영상들에서, 펄어비스는 이미 멋드러지게 구현된 '파이웰' 대륙의 여러 면모를 조명했던 바 있다. 드넓게 펼쳐진 벌판과 눈 덮인 산맥, 깎아지는 벼랑과 붉게 물든 사막, 복잡하게 깎인 해안선과 일렁이는 윤슬에 이르기까지, 파이웰 대륙은 그 자체로 굉장히 아름답게 비춰진다.
그리고, 게임 내에서도 이 파이웰 대륙의 모습은 그대로다. 굉장히 많은 오픈월드 게임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시각적 압도감으로 게이머에게 존재감을 어필하듯, 붉은사막의 '파이웰 대륙'도 이 못지않은 스케일로 만들어져 있다.

파이웰 대륙은 복잡하다. 에르난드, 델리시아, 데미니스, 페일룬, 그리고 게임의 제목이기도 한 붉은 사막까지,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적 테마를 지닌 지역이 마련되어 있고, '크기' 역시 게이머가 압도당할 정도로 거대하다. 동시에 붉은사막의 세계는 수직적으로도 거대하다. 앞서 많은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파이웰 대륙의 상공에는 40종에 달하는 '어비스'가 아찔한 고도에 마련되어 있다.
'클리프'의 여정은 이 모든 세계를 골고루 다룬다. 스탠다드한 중세 유럽풍의 에르난드에서 시작해 북유럽 풍의 페일룬, 보다 정돈된 유럽 느낌의 데미니스와 척박한 붉은 사막, 그리고 기계 문명이 꽃피운 델리시아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들을 모두 누비며 각지의 문제를 해결하고, 도적들과 적대 세력에 억압된 장소들을 해방시켜나간다.



그리고 이 기나긴 여정에서 거치는 모든 지역에, 수많은 퀘스트와 탐험거리가 숨어 있다. 단순히 메인 퀘스트의 엔딩을 보는 데만 짧게는 50시간에서, 길게는 80시간 이상이 소요되며, 서브 퀘스트의 수는 미처 셀 수도 없다. 수십 시간을 해도 처음 보는 신기한 콘텐츠가 게이머 앞에 등장하는가 하면, 이런 곳에 뭐가 있을까 싶은 지역에서 난데없는 게임체인저가 등장하기도 한다. 단순히 넓을 뿐만 아니라, '밀도'도 높다는 뜻이다.
'디테일' 부분에서도 훌륭한 편이다. 지역 곳곳에 존재하는 애완동물들은 시간만 들이면 전부 동반자로 데려올 수 있으며, 도박장에서는 밑장을 뺀 플레이어의 손모가지를 날린다. 숨겨진 동굴에는 높은 확률로 보상이 기다리고 있으며, 이걸 어디에 쓰나 싶은 장식물과 가구들은 게임 중 마련하게 될 '내 집'을 꾸미는 요소들이 된다.


흩어진 회색갈기 대원들을 모으고, 캠프를 확장시키는 과정에서도 콘텐츠는 쏟아진다. 용역을 보내 각 지역 유지들과 관계를 개선하고, 각 지역의 토착 세력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연구할 수 있으며, 은행에서는 투자 수익을 노릴 수 있는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없이 많은 요리와 물약들을 직접 제조할 수 있고, 기술을 연마하는 수련생들의 움직임을 보고 새로운 스킬을 배울 수도 있다.
무엇보다, 파이웰 대륙의 시각적 압도감은 그 자체로 대단히 인상 깊다. 내리쬐는 햇살과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대비는 간혹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줄 정도로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콘텐츠가 될 만큼 아름다운 감성을 보여준다.

▲ 액션 연출만은 독보적, 이 또한 진짜다
붉은사막의 수많은 PV 영상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이라면, '전투'를 굉장히 집중해서 조명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펄어비스 역시 이 '전투'에 공을 들였고, 게임에서 가장 내세울 만한 부분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며 게임 내에서도 실제로 이 전투만큼은 다른 어떤 콘텐츠보다 공을 들여 깎았다는 느낌이 여실하다.


영상에서도 꽤 여러 번 보여준 수많은 프로레슬링 기술들은 전투 중 주된 타격감을 담당한다. 일단 상대를 잡으면 기술 사용 시의 안전함과 피격 방지를 위해 광역 피해가 더해지는데, 말 그대로 사방이 죄다 박살나버린다. 옆에 망루가 있다면 망루가 무너지고, 숲속에서 시전하면 나무가 쓰러질 정도다. 현실성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기술 자체의 호쾌함이 너무 굉장하기에 별달리 거슬리게 느껴지진 않는다. 다만, 주변에 폭약이 있다면 기술 시전과 동시에 사망할 수 있기에 이는 조심해야 한다.

레슬링 자체의 바리에이션도 무척 훌륭하다. 정면에서는 RKO, 달려가며 쓰면 크로스라인, 뒤에서는 저먼 슈플렉스, 연달아 쓰면 백드롭이 시전되며, 달리며 뒤를 덮치면 바리에이션 RKO인 내추럴 셀렉션, 누워 있거나 넉백당해 하체가 들린 적은 자이언트 스윙이 나간다. 적과 나의 위치, 나의 움직임 상태 등에 따라 시전되는 기술이 달라지는 셈이다.
잡기 외에도, 붉은사막의 전투는 굉장히 다양한 레이어를 지니고 있다. 둔기나 창, 검 등의 냉병기 활용, 가라데 촙부터 철산고로 이어지는 초근접 타격기, '지정타'를 통한 스턴 판정에서 파생되는 연격과 원거리 무기를 활용한 카이팅, 라이더킥부터 여래신장까지 이어지는 독특한 기술들까지, 설계에 따라 수많은 전투 상황을 연출할 수 있으며 해금한 기술들을 토대로 콤보를 짜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비스 기어'로 분류되는 특수기들의 활용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붉은사막에는 방어구나 무기에 장착할 수 있는 보석 시스템인 '어비스 기어'가 존재하는데, 이 중에는 공격에 특수 효과를 더해주는 무기 전용 어비스 기어도 굉장히 많다. 어떤 기어를 쓰느냐에 따라 강공격에서 까마귀가 날아오를 수도, 검기가 정면을 가를 수도 있으며, 거대한 기사 분신이 소환되거나 광선 공격이 더해지기도 한다. 장갑 등에 보석을 착용한 경우엔 맨손 타격에 장풍이 더해지거나, 잡기에 광역 독 판정이 더해지는 등 전투의 향방을 바꾸는 변화도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를 써먹을 수 있는 무대인 '전장'이 정말 질리도록 많이 나온다. 한 번에 수백 이상의 적들과 마주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며, 드물지만 한 전투에서 천 이상의 적을 상대하는 경우도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정말 원 없이 싸워볼 수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이 '전투 연출'은 비단 게임 내 전투에만 국한되지 않고 서사 진행 중 재생되는 컷씬에서도 유감없이 활약한다. 회색갈기의 각 대원들이 싸우는 장면이나, 클리프가 적진을 뚫고 나아가는 장면들은 하나같이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이라 말해도 좋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다.

▼ 수없이 충돌하는 콘텐츠, 디렉션은 어디에?
여기까지, 게임의 멋진 부분들을 말해봤으니, 이제 조금 아픈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말만 들으면 잘 만든 오픈월드에 전투까지 멋진, 실패할 수 없는 게임이 등장한 것 같지만, 이는 이상적인 상상일 뿐, 붉은사막은 결코 완벽한 게임은 아니다. 조금 시선을 달리해 붉은사막이 어떤 게임인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장점도, 단점도 너무나 도드라지는 게임"
가장 큰 문제는, 게임 자체의 디렉션이 너무나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보다 자세히 말하면, 게임을 이루는 요소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음에도, 이 요소들이 서로를 보완하기보다는 서로를 간섭하고, 이 과정에서 존재 의미가 사라지며, 나아가 장점마저 잡아먹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독할 만큼의 불편함과 아이러니한 디자인으로 게이머에게 다가온다. "무엇이 멋질까?"에 대해서 고민한 결과는 너무나 잘 볼 수 있지만, "무엇이 게임을 어렵게 할까?"에 대한 고민은 전혀 이뤄진 느낌이 없다.
오픈월드는 무척 넓지만, 퀘스트 동선은 너무나 길고 복잡해 오히려 넓은 오픈월드가 원망스럽게 다가온다. 현상수배는 지역 전역에 퍼져 있지만, 수배범을 인계할 경비대는 대도시에만 있기에 범인을 들쳐매고 너무나 먼 거리를 그저 달려야만 한다. 게임 후반부로 갈수록 클리프의 활동 무대는 대륙 전역으로 넓어지지만, 중요한 퀘스트는 결국 남서쪽 구석에 있는 캠프에서 진행되기에 수차례 같은 길을 반복해서 오가야 하고, 게임 내에 숨겨진 요소들은 표기된 길과 상관없는 요소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이 넓은 맵을 이잡듯 뒤지고 다녀야 한다.

오픈월드 자체는 좋으나, 레벨 디자인이 아쉽다 보니 이 오픈월드가 즐거움보다는 고역으로 다가오는 셈이다.
'전투'의 장점 또한 정돈되지 못한 시스템으로 카운터된다. 수많은 기술들을 배울 수 있지만, 이는 다수의 잡몹을 상대로만 유효할 뿐, 실제 붉은사막의 핵심 전투라 할 수 있는 보스전에서는 대부분 별 의미가 없다.
붉은사막에는 피격당해 다운되거나 날아갈 때의 무적 판정이 없다. 이 말은 곧, 격투게임의 그것처럼 '뜨면 죽는다'라는 뜻이다. 한 대만 잘못 맞아 뜨면 죽을 때까지 콤보를 얻어맞기 때문에 보스전 중에는 꾸준히 보스의 패턴을 보고, 피하거나 막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결국, 선딜레이가 긴 대부분의 기술들은 활용도가 극도로 떨어지고, 난데없이 보스의 슈퍼아머가 켜지는 경우가 많기에 지정타나 잡기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패턴 간에 존재하는 명백한 빈틈을 노려야 하기에 즉발적으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그냥 강공격 일변도로 전투를 풀어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밖에도, 게임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스템 중 큰 의미 없이 그냥 존재할 뿐인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붉은사막에는 '암살' 시스템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스탠다드한 암살 시스템이고, 이를 보조하기 위해 짚단이나 수풀에 숨는 시스템도 마련되어 있다. 다만, 이 '암살'을 활용할 상황을 게임 내에서 좀처럼 만날 수가 없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처럼 적들의 배치가 암살 친화적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에 암살만으로 게임을 풀어가는 건 당연히 안 되는데다, 적들의 시야 사각이 거의 없기에 적이 혼자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암살은 대부분 들킨다. 게다가 점령 시스템도 선배치된 적을 제거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닌 무한대로 스폰되는 적들을 일정 수 이상 처치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갑자기 등 뒤에서 적이 스폰되어 달려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마저도 수가 적으면 모르겠으나, 붉은사막의 거점들은 300~400명의 적을 처치해야 점령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실제로 쓸 일은 거의 없다.

게임 초반에 배우는 '특정 구역 진입을 위한 의상' 시스템도 초반이 끝나면 의미가 없어지며, 서브 캐릭터인 '웅카'와 '데미안'은 클리프에 비해 기동성도, 퍼즐 풀이 호환성도 떨어지는 데다 성장 트리마저 별개라 사실상 엔딩을 볼 때까지 쓸 이유가 전혀 없다.

캠프로 복귀할 수 있는 귀환석은 존재하지만 엔딩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단 한 번 봤을 정도로 희귀하기에 아무 의미가 없으며, 무역이나 농사는 굳이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나아가 아예 게임의 기본적인 골조 자체가 메인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으면 지역이 적성 세력으로 덮여 있어 다른 퀘스트들을 수행하기 어려운데, 메인 퀘스트를 다 깨고 나면 나머지를 할 동력이 사라져 버려 딱히 게임을 지속할 이유가 없는 모순이 만들어진다. 산발적으로 흩어진 콘텐츠들을 굳이 다 찾아 해야 할 명백한 엔드 콘텐츠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전부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붉은사막에는 너무나 많은 무언가가 있지만, 이 중 대부분은 게임 플레이 과정에 별 영향을 끼치지도 않으며, 오히려 별 의미 없이 게임을 복잡하게만 만든다. 브레인스토밍을 거쳐 만들어진 아이디어를 정제하고 정리하는 과정 없이 그냥 그대로 게임에 전부 넣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명작을 만드는 과정은 더하는 과정이 아닌, 덜어내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다. 붉은사막은 너무나 많은 것이 더해져 있지만, 덜어내기는 좀 더 신경 썼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 수십 시간을 진행해도 끊이지 않는 갈고리
이렇듯, 게임을 이루는 너무나 많은 요소들을 겪으면서 게이머의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의문부호가 켜진다. 붉은사막을 플레이하면서 느낄 가장 큰 감정이 바로 '당혹감'일 정도로 말이다. 의미 없는 요소들은 그냥 안 하면 그만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정돈되지 못한 시스템들이 게임 자체의 불편함으로 다가올 때다.
서브퀘스트 간의 진행도에 따라 한쪽의 진행이 완전 막혀버림에도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거나, 각 지역별 전투 난이도가 천차만별임에도 어려운 쪽을 더 앞서 진행해야 하는 건 붉은사막에서 무척 흔한 일이다. 도무지 어떤 기준으로 배치되었는지 모를, 가끔은 지하 깊숙한 곳에 있거나 중요 위치와 너무 동떨어진 순간 이동 지점 배치나 규칙 자체를 설명해주지 않는 난해한 퍼즐들은 끊임없이 게이머의 인내를 시험한다.

수많은 요소가 있음에도 어떤 것들은 아예 아무 단서 없이 그냥 막연하게 숨겨져 있기만 하고, 때로는 게임의 엔딩을 볼 때까지 이를 찾아낼 수 없다. 내 경우 엔딩을 다 보고 나서도 '원소' 기술은 하나도 찾지 못했고, '웅카'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비활성화되어 있으며, 4명의 마녀 중 하나는 끝내 찾지 못했다.
몬스터, 퍼즐과 함께 붉은사막의 3대 적이라 할 수 있는 '인벤토리'도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붉은사막에는 공식적으로 창고가 없기 때문에 여정 중 얻는 수많은 퀘스트 아이템과 재료들을 그냥 전부 들고 다녀야 하며, 서브 퀘스트용 벽보나 현상수배 전단, 어디에 쓰일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수많은 퀘스트 아이템을 비롯해 각종 재료와 스킬 포인트까지 인벤토리를 차지한다.

여기에 콘텐츠 설계마저 이 빡빡한 인벤토리를 더 압박하는 형태로 짜여져 있다. 잘 쓰지도 않는 서브 캐릭터의 장비와 소모품도 인벤토리를 차지하며, 요리 과정을 거치면 똑같이 '고기'로 소모되는 고기만 해도 '부드러운 고기', '질긴 고기', '기름진 고기', '큼직한 고기', '담백한 고기'로 5종이며, 마찬가지로 그냥 '곡물'로 취급되어 동일하게 소모되는 곡물류도 '콩', '렌틸콩', '보리', '밀', '귀리' 등 수 종이다.
이 재료들을 그냥 버릴 수도 없는 것이, 붉은사막은 요리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하는 게임이다. 붉은사막의 보스전은 앞서 말했듯 '뜨면 죽는' 전투기 때문이다. 체력을 꽤 올려도 한 콤보에 주인공을 절명으로 몰고 가는 즉살 패턴이 너무나 많다 보니 이를 버티는 방법은 '맞으면서 먹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보스전이 언제 어디서 시작될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메인퀘스트 도중 갑자기 시작되는 것은 양반이며, 그냥 길 가다 마주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항상 요리 재료와 요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다닐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나는 게임 플레이 도중 늘 200개 이상의 요리를 상시 휴대하고 다녔다. 이 역시 가방을 차지한다. 그나마 리뷰 중 이뤄진 업데이트로 칸 자체는 크게 늘어 압박이 줄었지만, 여전히 인벤토리를 열 때마다 어질어질한 건 마찬가지다.

하나하나 꼽자면 너무나 하찮고, 또 사소한 문제들이지만, 이런 '약간의 거슬림'을 주는 요소마저도 너무 양이 많다 보니 중대한 문제가 된다. 게임을 시작했을 때 뭔가 목표를 정하면 어렵더라도 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 메인 퀘스트를 제외하면 갑자기 막혀버리거나, 무언가 문제가 있어 진행할 수 없는데 이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다른 퀘스트를 먼저 해야 하거나, 어딘가에서 퀘스트 아이템을 줍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렇다고 이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메인 퀘스트로 가면 이 물음표는 더 커진다. 붉은사막의 서사 라인은 너무나 이상하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말 그대로 이상하다. 12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메인 퀘스트 중 4~5장 정도까지는 그럭저럭 이해가 되고, 6~7장 정도는 진행 자체는 답답해도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8장 이후부터는 이게 도대체 무슨 스토리인지 가늠이 되질 않으며, 서사의 빌드업조차 없다. 최종 보스는 그전까지 언급조차 없던 생판 처음 보는 친구가 나온다. 서브 퀘스트를 미처 다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메인 퀘스트만 해도 이해는 가게끔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결국, 게이머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끊이지 않는다. 붉은사막은 게이머 동선 유도가 없다. 그냥 넓은 오픈월드에 콘텐츠를 산발적으로 뿌려두기만 했을 뿐, 게이머가 어떤 경험을 하길 원한다거나, 지향하는 플레이 방향이 없다. 수많은 마커와 물음표, 그리고 적들로 가득한 넓은 오픈월드 속에서, 게이머는 미아가 된다. 그리고 끝없이 생각한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뭐 때문에 안 되는 거지?"

▼ 고쳐졌어도 여전히 어렵기 그지없는 '조작'
여기에, 붉은사막 특유의 난해한 조작도 발목을 잡는다. 앞서 말한 붉은사막의 장점 중 하나가 '다양한 전투 액션'인데, 일반적인 오픈월드 게임들은 이를 별도의 스킬로 분류해 스킬 메뉴를 배정함으로써 입력의 혼선을 막아두지만 붉은사막은 어떻게든 컨트롤러 안에 커맨드를 다 우겨넣는 식으로 배정했다. 당연히, 버튼 하나에 할당되는 기능이 많으니 조작이 복잡해지고 오입력이 잦아지는 건 필연적이다.
예를 들어 듀얼센스의 ㅁ버튼의 경우 줍기나 조작 등의 상호작용, 점프, 암살, 인사하기에 모두 대응된다. 문제는 이 '한 버튼으로 서로 다른 액션을 하는 과정'에서의 판정이 게이머의 시점과 L1을 통한 하이라이트에 걸려 있기 때문에 수도 없이 오입력이 나온다. 인사하려다 앞에 날아다니는 날파리를 잡고, 적을 암살하려다 뒤에서 폴짝 점프를 뛰거나, 떨어져 있는 아이템을 주우려다 갑자기 앞사람에게 인사를 박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L3'버튼 또한 숨기, 섭리의 힘, 절벽에 매달리기, 슬라이딩이라는 4가지 기능에 대응된다. 때문에 벼랑 끝에서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섭리의 힘을 쓰려다 밑으로 매달리거나, 갑자기 자세를 낮추고 은신하는 등 별일이 다 생긴다. 공중 플랫포머에서 바로 섭리의 힘을 쓰려다 슬라이딩해서 그대로 땅 끝까지 추락(업데이트해서 이제 건져 주긴 한다)한 적도 있다.
전투 상황에서도 붉은사막의 조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복잡함을 자랑한다. L1+L2, L1+R2, R1+L2, R1+R2, L1+R1, L2+R2의 모든 조합식이 각각 다른 기능을 하며, 여기에 '커맨드 입력 장비'까지 더해지면 더 기괴한 조작법까지 요구한다. 예를 들어 목걸이류를 조작하려면 듀얼센스로는 메뉴 키와 터치패드를 동시에 눌러야 하며, XBOX 패드로는 가운데 뷰 버튼과 메뉴 키를 함께 눌러야 하는데, 이 경우 스팀 오버레이(...)가 켜지기도 한다.

여기에 미묘한 물리적 관성과 공중 판정이 끼어들면서 도무지 캐릭터가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를 않는다. 멋대로 나가는 2단 점프, 때때로 제대로 펴지지만, 반대로 종종 누르고 한참 지나야 펴지는 까마귀 날개, 아무리 가운데를 노려도 옆을 때리는 지정타까지, 하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란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아무리 익숙해져도 불편하고 기괴하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액션 어드벤처 게임에서 '조작법'은 게임사와 게이머 간에 어느 정도 약속이 되어 있다. 어느 버튼이 공격이고, 어느 버튼이 회피일 때 가장 편하고 오입력 없이 이를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해 수많은 게임들이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만든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붉은사막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개척했다. 문제는, 이렇게 대세를 따르지 않을 거면 그만큼 새롭고 대단한 경험을 주어야 하는데, 붉은사막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멋져 보이는 외관, 어지럽기 그지없는 내면
리뷰의 엠바고가 다가올수록, 나는 상당한 당혹감을 느꼈다. 현시점에서 붉은사막을 둘러싼 기대와 흥분이 너무 과대하게 커져 있었기 때문이다. 리뷰어로서는 이 자체도 굉장한 부담이다. 마치 지구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소행성을 나 혼자 발견한 기분이라 해야 할까? 내가 플레이한 붉은사막은 그럭저럭 만든 오픈월드 게임이긴 하지만, 지금의 열기에 걸맞은 정도는 아니었다.
때문에, 리뷰를 완성하기 전까지 끝없는 자기 검증의 시간을 거쳤다. 이게 정말 나만 느끼는 문제일지, 아니면 모두가 겪게 될 보편적 문제일지를 고민했고, 이미 엔딩을 보고 끝낸 게임을 켜 파이웰 대륙의 구석구석을 누볐다.

다시 해 봐도, 붉은사막은 여전하다. 멋진 오픈월드와 유려한 액션까지. 붉은사막의 장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펄어비스가 공개한 수많은 영상들은 이 장점들을 극도로 부각하는 형태로 이뤄져 있기에, 그 내면의 속사정을 파악하기엔 어렵다. 6시간의 프리뷰 플레이도 마찬가지다. 붉은사막은 너무나 거대한 세계에 너무나 많은 콘텐츠가 마련되어 있기에, 6시간만으로는 그 겉조차 제대로 핥을 수 없다.
게임을 거듭하고, 생각을 정리해 본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붉은사막의 모든 문제는 게임 내에 있다. 해보지 않고는 절대 느낄 수도, 인지할 수도 없는 수많은 모순과 충돌들이 너무나 멋지게 다듬어진 오픈월드와 호쾌한 액션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그렇기에, '현재'의 붉은사막은 멋진 오픈월드와 액션을 지녔음에도 완성된 '오픈월드 액션' 게임으로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현재'를 강조한다는 건 미래는 다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붉은사막의 단점은 매우 명확하다. 세 파트로 나눠 설명하긴 했지만, 이는 결국 덜어내지 않고 뭔가가 너무 많은 상황에서, 각 요소들이 정돈되지 않고 어지럽게 늘어져 발생한 문제들이다. 어렵겠지만, 하나하나 차분히 정리해 질서를 갖출 수 있다면, 수많은 콘텐츠를 끝까지 파먹는 오픈월드 게임 팬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타이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리뷰의 시점은 '현재'다. 현시점의 붉은사막은 명백히 장점만큼이나 도드라지는 단점을 지닌 게임이며, 지금의 기대치를 채워 줄 만한 '대단한 게임'까지는 갈 길이 더 남은 게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