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많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가 있지만, "가장 재미있게 즐긴 작품은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아마 올드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소 갈릴 거다. 누군가는 최근 출시된 신화 3부작이나 섀도우즈를 꼽을 것이고, '유니티'나 '미라지'를 꼽는 소수도 존재는 하겠지. 하지만,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도 손꼽히는 '투 톱'은 바로 이탈리아 배경의 에지오 3부작과 '블랙 플래그'일 것이다.
이 중 에지오 3부작이 '어쌔신 크리드'라는 시리즈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한다면, '블랙 플래그'는 다소 독특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암살자이면서 동시에 해적인 복잡다난한 주인공, 전작 3편에서 맛보기만 보여줬다면 이제 완전히 완성된 형태의 해상전과 항해 시스템, 그리고 화사한 캐리비안의 복잡한 군도를 다룬 오픈 월드까지, 이전까지의 어쌔신 크리드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바로 '블랙 플래그'였다.
나에게도, 블랙 플래그는 무척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인벤 입사 후 처음 썼던 기사가 블랙 플래그 관련 기사였으며,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중 가장 열심히 플레이 한 작품도 블랙 플래그니까. 4척의 전설의 배를 하나씩 깨부술 때 느꼈던 희열은 지금도 생생할 정도다.
그리고, 이 '블랙 플래그'를 다시 하기 위해 유비소프트 싱가포르 스튜디오에 이르렀다. 13년 만에 '리싱크드'라는 이름을 달고 부활한 그 작품을 직접 해 보기 위해 말이다.

리메이크와 리마스터, 그 중간에서
'리싱크드'의 존재를 처음 알았을 때, 가장 궁금했던 건 그래서 이게 '리마스터'와 '리메이크'중 어떤 것에 더 가깝냐는 것이었다. 비슷해 보이지만 게이머들이라면 다 아는 엄연히 다른 개념. 일반적으로 '리마스터'는 비주얼 개선이 주력이지만, '리메이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비주얼 뿐만 아니라, 게임 시스템과 내부까지 쭉 손을 보는 게 일반적인 '리메이크'니까.
문제는, 작품이 '리싱크드'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를 달고 나와버렸다는 거다.

그리고, 싱가포르까지 직접 날아가 플레이해 본 감상은, 이 둘 중 어느 쪽에도 확실하지 않은, 굉장히 묘한 위치에 놓인 게임이라는 것이었다.
'리싱크드'는 리마스터와 리메이크의 딱 중간 지점에 있다. 비주얼만 바뀌었다기엔, 게임 시스템 일체도 손을 봤지만, 그래서 완전히 다시 만든 게임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여전히 블랙 플래그이지만, 연식만 바뀐 느낌. 오래 된 명차를 다시 복각했는데, 내장재와 엔진은 싹 갈아치운 그런 결과물을 보는 느낌. 어째서 리마스터도, 리메이크도 아닌 제3의 단어를 사용했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게임 내적 변화의 대표는 '전투'다. 오리진 이후 이어진 신화 3부작처럼, 리싱크드는 R2와 L2의 조합키에서 파생되는 일종의 '스킬'같은 기술들이 생겼다. 신화 3부작처럼 여러 스킬 중에 원하는 스킬을 지정해서 쓰는 형태는 아닌, 스킬이 정해져 있는 형태긴 하지만 여튼 전투 중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요소가 생겼다.
지정된 스킬은 권총 사격과 승표 투척, 그리고 발차기 2종. 싸우던 와중 기습적으로 권총을 꺼내 쏠 수도 있고, 멀리 떨어진 적을 승표로 끌고 올 수도 있다. 발차기 2종의 경우 상대를 밀어내는 프론트 킥과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스윕 킥으로 나뉘어 있는데, 스윕 킥의 경우 곧장 처형으로 연계할 수 있기에 활용도가 무척 높다.


카운터 대신 '패링'이 생겨버리면서 전투의 흐름도 무척 달라졌다. 원작이 나올 당시까지 어쌔신 크리드의 전투 양상은 먼저 때리기보다는 적의 공격을 기다려 카운터를 치는 형태로 이뤄졌으며, 이게 효율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운이 좋으면 다중 카운터로 멋진 그림도 뽑을 수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 어쩌면 평범하고, 조금 다르게 말하면 현대적인 전투의 흐름을 띈다. 적을 공격해 체간을 소모시켜 가드를 깨부수거나, 적 공격의 정확한 타이밍에 패링을 해내 처형으로 이어가던가, 패링 불가 속성의 공격을 가드로 피하면서 싸우는 등, 매우 익숙한 형태의 액션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게임이 완전히 다른 게임이 되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전투의 흐름은 달라졌지만, 전투의 난이도 자체는 이전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수월한 편이며, 레벨의 개념이 딱히 없기에 최근 작품들처럼 육성 없이 공략이 어려운 적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결국 블랙 플래그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 딱 그 정도다.
모든 이야기는 '에드워드'로 통한다.
의외로 리싱크드에서 많이 달라진 부분 중 하나는 '서사', 그 중에서도 '서사의 무게중심'이다.
이야기의 구성은 똑같다. 온갖 풍파를 겪다 결국 해적질까지 하게 된 에드워드 켄웨이가 어쩌다 보니 뒤가 구려 보이는 암살자 던컨 월폴 씨를 만나고, 월폴 씨의 신분을 훔쳐 야매 암살자가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여기서 달라지는 건, 전체적인 편집의 방향이 예전에는 '에드워드와 암살단,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오롯이 '에드워드의 이야기'로 초점이 맞춰졌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부분이 전투 중 '암살검'을 메인으로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인데, 원작의 경우 두 자루 칼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암살검만으로 전투를 풀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리싱크드에서는 두 자루 칼이 완전한 메인 무기의 자리를 차지했고, 암살검은 처형이나, 특정 모션에서만 사용하게 된다.
개발자에게 이유를 물으니, 에드워드 자체에 집중하다 보니 칼 두 자루를 유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암살검을 들고 전투에 나서는 건 멋지긴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에드워드스러움'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면서 말이다.
'아데웰'이 주인공이 되는 '프리덤 크라이'는 따로 추가 계획조차 없다. 아데웰이 주인공이 되어 버리면 초점이 흐트러지니까. 대신, 리싱크드 본편에 아데웰과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끼워넣음으로서 이 부족감을 다소 해소했다.
이 밖에도 리싱크드에는 새롭게 추가된 '부관', 그리고 에드워드와 과거 등이 얽힌 본편에 없었던 추가 콘텐츠와 챕터가 추가되는데, 이 모든 것 또한 '에드워드'가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예를 들어 '루시 볼드윈'을 영입하는 퀘스트는 에드워드가 직접 루시를 구하고, 루시를 배로 데려오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 '에드워드 중심이 서사'는 현장에서 만난 개발자들이 꾸준히 강조한 내용이며, 분량이 제한된 핸즈온 세션에서도 어느 정도는 느껴지는 변화였다. 물론, 게임의 전체적 구성에서 이 변화가 유리하게 작용할 지는 본편이 출시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비주얼 만큼은 '완전 현대화' 완료
게임 시스템과 서사가 '원작을 유지하면서도 바뀐'듯한 선을 유지한다면, 비주얼은 말 그대로 격세지변. 13년 전 게임의 느낌을 거의 완벽하게 지워냈다 싶을 정도로 좋은 퀄리티를 보여준다. 빛의 활용이나 반사광, 그림자 등의 효과도 최고 수준. 유비소프트의 게임들이 늘 비주얼 퀄리티를 보통 이상으로 뽑아내긴 했지만, 리싱크드는 그 중에서도 돋보일 정도다.

역동적 날씨 시스템도 완전히 녹아들어 있다. 비가 오면 지표면이 젖으면서 진흙이 되고, 다시 날이 개면 땅이 말라가며 모래가 되는 과정을 시연에서 직접 볼 수 있었던 정도. 날씨가 격해지면 용오름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번개가 내리꽂히기도 하는데, 이 번개에도 피해 판정이 있다. 내가 겪지는 못했지만, 다른 시연자 들 중에는 번개에 맞고 사망한 이도 있었다.

하여튼, 비주얼 측면에서는 흠 잡을 곳이 없다. 불안한 부분이라면, '최적화'에 대한 부분인데, 일단 개발자 오피셜로는 모든 플랫폼에서 퍼포먼스 모드 시 60FPS 고정이 가능하게 설계했다고 말했다. 시연 과정에서는 4K 환경에서 다소 프레임 드랍이 느껴지긴 했지만, 아직 완성된 빌드가 아니기에 실제로 어떠할지는 확언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리하면, '블랙 플래그 리싱크드'는 전작과 같지만 분명한 진보를 이뤄낸, 다소 복잡미묘한 포지션의 게임이다. 에드워드 중심으로 연출된 서사, 현대화된 전투 시스템, 놀라운 비주얼 등은 분명 좋은 개선이지만, '리메이크'라 할 정도로 게임이 완전히 다듬어졌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여전히 월폴 씨를 만나고, 스티드 보넷과 함께 하바나로 향하는 여정의 시작부터 이야기는 완전히 동일하니까.
하지만, 둘 중 하나를 할 때 무엇을 할래? 라고 묻는다면 난 리싱크드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