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비 아포칼립스로 무너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익스트랙션 생존 게임 '낙원: LAST PARADISE(이하 낙원)'는 지난 3월 클로즈 알파 테스트에 27만 명이 넘는 플레이어가 몰리며 주목도를 실감케 했다. 특히 낙원상가, 시내버스, 한글 간판이 걸린 상점가 등 익숙한 서울의 풍경을 생존의 무대로 뒤바꾼 세계관이 핵심이고, 국내 게이머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공간을 설계한 것은 레벨 디자이너들이다. 기획자가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아티스트가 비주얼을 완성한다면, 레벨 디자이너는 그 규칙과 그림이 실제 플레이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공간의 흐름과 동선, 긴장감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낙원의 윤지상 레벨파트장은 직접 낙원상가를 찾아 간판 높이와 통로 폭, 빛의 방향까지 촬영하며 현실 공간의 감각을 게임 안에 담아냈다고 전하기도 했다.
넥슨은 최근 이 공간감을 직접 설계한 윤지상 레벨파트장 이야기를 넥슨 태그 포스트를 통해 공개했다. 현실 공간을 게임 안에 어떻게 옮겨내는 과정과 익스트랙션 장르 특유의 긴장감을 공간으로 어떻게 설계하는지, 그리고 현재 개발 중인 신규 쇼핑몰 맵의 방향까지 레벨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낙원의 세계를 풀어낸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 3월 진행된 낙원: LAST PARADISE(이하 ‘낙원’의 클로즈 알파 테스트에는 무려 27만 명이 넘는 플레이어가 접속했습니다. 좀비로 뒤덮인 서울의 폐허를 탐색하며,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아이템을 챙겨 탈출해야 하는 낙원만의 긴장감 넘치는 세계에 많은 관심이 쏠린 것입니다.
수많은 플레이어가 처음 그 세계의 문을 열기 전, 누군가는 이미 그 길을 수천 번이나 먼저 걸으며 묵묵히 세계의 형태를 다듬고 있었습니다. 플레이어가 마주할 공간의 흐름과 긴장감, 생존의 순간들을 설계하는 사람들. 바로 낙원의 레벨 디자이너입니다.

🧟 한국을 배경으로 한 좀비 아포칼립스 게임의 탄생
레벨 디자이너는 대중에게 조금은 생소한 직군일지 모릅니다. 기획자가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아티스트가 공간의 비주얼을 그려낸다면, 레벨 디자이너는 그 규칙과 그림이 실제 플레이 속에서 생생하게 작동하도록 공간을 설계하고 조율합니다. 한마디로 게임 속 공간을 만들고 동선을 짜는 경험 설계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게임 시스템 위에 지형, 동선, 엄폐물 같은 환경 요소를 짜임새 있게 더해 플레이어가 온몸으로 경험하는 결정적 순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 레벨 디자이너의 몫입니다. 플레이어는 공간을 자유롭게 걷고 뛰지만, 그 자연스러움 뒤에는 수많은 고민과 판단이 숨어 있습니다.
텅 빈 공간에 그네와 철봉, 시소를 배치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듯, 윤지상 레벨파트장은 플레이어가 종횡무진 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설계합니다. 플레이어가 첫발을 내딛는 시작 지점부터 물자를 탐색하는 구역, 복잡하게 얽힌 건물 내부의 세밀한 동선까지.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경험이 레벨 파트의 손을 거쳐 완성됩니다.
그가 낙원 기획팀에 합류해 처음 마주한 것은 종로를 배경으로 한 맵 초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자주 지나다니던 익숙한 공간이었어요.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를 게임 안에서 직접 뛰어다닐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설렜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공간이 생존의 무대로 뒤바뀌는 세계관이 그를 낙원 프로젝트로 이끈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낙원상가, 초록색 시내버스, 경찰차와 주황색 택시 등 게임 속에는 우리가 매일 스쳐 지나가는 서울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한글 간판이 걸린 상점가, 골목 곳곳에 남겨진 낙서, 편의점 냉장고 안에 가지런히 놓인 음료수 캔까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낯익습니다. 다만 이 서울은 좀비 아포칼립스로 무너진 서울입니다.
살아남은 이들이 세운 공동체는 시민들에게 등급을 매기고 계급에 따라 사람을 구분합니다. 반면 외부에서 유입된 이들은 감염자가 가득한 통제구역으로 내몰립니다. 현실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샌드위치 한 조각, 생수 한 병, 작은 천 조각조차 목숨을 걸어야 얻을 수 있는 세계. 낙원이라는 이름이 가진 역설은 그래서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낙원은 익스트랙션 장르의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맵에 진입해 제한된 자원을 수집하고, 살아서 탈출해야 합니다. 탈출에 실패하면 어렵게 모은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단순한 규칙이지만, 그렇기에 매 순간의 선택에는 긴장감이 따라붙습니다.
그리고 낙원은 여기에 자신만의 색깔인 ‘하우징 시스템’을 더했습니다. 사투 끝에 살아 돌아온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숙소로 향합니다. 오늘 가까스로 챙겨온 전리품을 방 한구석에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음 탐사를 준비합니다. 전리품이 곧 생존의 기억이 되는 공간. 그것이 낙원이 익스트랙션 장르 위에 덧입힌 새로운 감각입니다.

🏙️ 실제 도시를 게임 공간으로 구현하는 작업
추운 겨울 어느 날, 지상 님은 카메라를 들고 낙원상가로 향했습니다. 게임 속 실내 공간 구조를 구현하기 위해 직접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간판이 걸린 높이, 통로의 폭, 빛이 들어오는 방향까지. 현실 공간을 구현할 때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실제 공간의 감각을 최대한 그대로 담아내는 것입니다.
현장을 촬영한 사진을 게임 안에 적용하기도 하고, 직접 공간을 걸으며 몸으로 동선을 익히기도 합니다. 플레이어가 느낄 감각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먼저 만드는 사람이 그 공간을 직접 경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목표는 아닙니다. “현실의 건축물은 게임보다 훨씬 정교하고 밀도가 높은 경우가 많아요. 게임에서는 플레이 경험을 위해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오브젝트를 추가하기도 하죠. 그런데 너무 많이 바꾸면 오히려 현실감이 사라집니다.”
레벨 디자이너가 현실 공간 앞에서 반복적으로 고민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입니다. 현실처럼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게임으로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과 좁은 골목, 곳곳에 버려진 자동차들. 현실의 종로가 가진 밀도를 살리면서도 플레이어가 답답함 없이 움직이고 탐색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작업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레벨 디자인은 결코 혼자 완성되는 작업이 아닙니다. 초기 단계의 레벨은 단순한 블록 형태의 구조물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후 아트팀이 그 공간 위에 조형물과 상점, 테마 요소를 더하며 세계를 구체화해 나갑니다.
그는 “단순한 구조물이 제가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공간으로 완성될 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레벨 디자이너가 설계한 공간의 뼈대 위에 아트팀의 디테일이 더해지며 플레이어가 실제로 경험하게 될 세계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죠.

⚠️ 익스트랙션 장르의 긴장감을 설계하는 법
“탈출이 너무 쉬우면 아이템을 잃는다는 공포가 사라져요. 그 공포가 없어지는 순간, 익스트랙션 장르만의 긴장감도 약해지죠.” 팽팽한 긴장감은 익스트랙션 장르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 긴장감을 공간 안에 설계하는 것이 레벨 디자이너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낙원에서 긴장감은 단순히 전투에서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간 자체가 플레이어를 압박합니다. 총기 규제 국가라는 설정에 맞춰 근접 무기가 중심이 되는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눈앞의 적을 모두 상대하기보다, 은밀한 이동 경로를 찾고 꼭 필요한 순간에만 교전을 선택해야 합니다.
엄폐물이 놓인 위치, 탈출 게이트까지의 거리, 좁은 골목과 시야가 트인 공간의 배치까지. 레벨 디자이너는 이 모든 요소를 조합해 플레이어의 긴장감을 조율합니다.
감염자의 특성 역시 공간 설계와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빠르게 달려드는 러너, 괴성을 질러 주변 감염자를 끌어모으는 스크리머, 탐사대원 복장으로 혼란을 주는 게더러. 같은 적이라도 어느 공간에서, 어떤 동선 위에서 마주치느냐에 따라 플레이어가 느끼는 위협은 전혀 달라집니다.
여기에 시간대와 날씨 같은 환경 요소도 더해집니다. 저녁과 새벽의 낮은 시야, 비 오는 날 발소리가 묻히는 상황 등은 플레이 방식 자체를 바꿔놓습니다. 안심하며 탈출구 문을 연 순간, 안쪽에서 감염자가 튀어나오는 상황처럼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도 곳곳에 배치돼 있습니다.

하지만 긴장감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레벨 디자이너는 게임을 수백, 수천 번 반복 플레이합니다. 그렇다 보니 자신에게 익숙한 동선과 해법을 플레이어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것이라 착각하기 쉽습니다. 개발자에게는 적당한 난이도의 공간이 처음 플레이하는 유저에게는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반대로 충분히 쉽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구간이 예상 밖의 난관이 되기도 합니다. 설계자의 의도와 플레이어의 실제 경험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합니다. 그 차이를 좁히기 위해 반복적으로 테스트하고 수정하는 과정 역시 레벨 디자이너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남부맵 경찰서 1층은 그런 고민이 담긴 대표적인 공간입니다. 잠긴 문을 열기 위해서는 외부 발전기를 먼저 작동시켜야 합니다. 발전기까지 이어진 노란 케이블이 핵심 단서지만, 플레이어가 이를 발견하지 못하면 문은 끝내 열리지 않습니다.
설계자에게는 분명한 힌트라도 어둠과 긴장 속에서 움직이는 플레이어에게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테스트 때 플레이어들이 실제로 노란 케이블을 따라가는 걸 보고 정말 안도했어요.” 지상 님의 웃음 뒤에는 자신이 설계한 장치가 의도대로 작동할지 끝까지 확신할 수 없는 개발자의 긴장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을 갖는 공간은 북부맵 세무서의 금고방입니다. 이곳에는 두 가지 진입 방식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열쇠를 구해 4층으로 조용히 들어가는 방법, 다른 하나는 열쇠 없이 3층에서 감염자와 싸우며 돌파하는 방법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서로 다른 경로를 선택한 플레이어들이 특정 순간 금고방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경계할 것인가, 아니면 협력할 것인가. 레벨 디자이너는 그렇게 플레이어의 선택과 긴장감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공간을 설계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플레이어만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수직으로 뻗은 새로운 세계, 다음 '낙원'을 향해
테스트가 끝난 뒤에도 레벨 디자이너의 모니터 위에는 또 다른 생존 무대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기존 종로의 남부맵과 북부맵이 도심 골목을 중심으로 한 수평적 탐색 구조였다면, 현재 개발 중인 신규 쇼핑몰 맵의 핵심은 수직적인 공간감입니다.
“쇼핑몰 맵은 위아래로 이어진 공간을 활용해 감염자를 피하고 돌파하는 경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1층부터 5층까지 시원하게 뚫린 중앙 공간, 지하 1·2층이 연결된 대형 마트 구조까지. 층과 층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간 안에서 플레이어는 앞뒤뿐 아니라 위아래의 위협까지 동시에 살펴야 합니다. 멈춰 선 에스컬레이터와 비어 있는 엘리베이터 통로를 활용한 이동, 개방형 층 구조에서 벌어지는 시야 싸움 등 종로 골목과는 또 다른 방식의 긴장감이 이 공간 안에 설계되고 있습니다.
변화는 단순히 공간 확장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쇼핑몰 맵 외에도 성격이 전혀 다른 신규 맵들이 함께 개발되고 있으며, 플레이어의 생존 방식 역시 더욱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같은 공간이라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플레이어가 체감하는 낙원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지상 님은 지난 클로즈 알파 테스트는 게임의 뼈대를 세우는 과정이었다면서 지금은 그 위에 낙원만의 분위기와 경험을 채워 넣는 단계라고 말합니다.

좀비로 가득 찬 서울 한복판. 숨을 죽인 채 낙원상가 골목을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간신히 탈출구 문을 열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마지막 장면까지.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긴장감의 이면에는 공간을 설계하는 레벨 디자이너의 치밀한 고민이 숨어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테스트에서는 “비슷한 분위기의 대체재를 찾기 어렵다”는 유저들의 반응이 이어질 만큼, 낙원만의 독특한 공간감과 디테일이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27만 명의 플레이어가 처음 발을 디뎠던 그 세계는 이제 더 넓고 깊어진 모습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새롭게 열린 낙원의 무대에서 어떤 선택과 긴장감을 마주하게 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