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내가 플레이하고 싶었던 게임을 만든다 - 한국 작가주의 PD의 라이브 서비스 운영기
강연자: 김용하, 김지훈, 정우철 - 넥슨게임즈 / 프로젝트 문 / 디스이즈게임
발표분야: 게임기획 / IP
권장 대상: 게임의 모습과 방향을 설정하는 개발자
관심태그: #NDC25 #서브컬처 #작가주의 #라이브서비스
[🚨 강연 주제] 상반된 색깔의 '블루 아카이브'와 '림버스 컴퍼니'를 통해, 창작자의 취향과 고집이 라이브 서비스 환경에서 어떻게 유지되고 변화하는지 살펴본다. 유저 피드백, 글로벌 팬덤, AI 시대의 창작 환경 속에서 한국 작가주의 PD의 방향성을 이야기한다.
국내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두 창작자가 만났다. '마법도서관 큐라레'로 시작해 '블루아카이브'를 대흥행시키고, '프로젝트 RX'를 준비 중인 넥슨게임즈의 김용하 본부장. 그리고 '로보토미 코퍼레이션'부터 '림버스 컴퍼니'까지 독특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 가고 있는 프로젝트 문의 김지훈 대표.
강연 시작 전부터 긴 사인 대기줄이 만들어질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끄는 두 사람이 함께 연단에 올랐다. 두 사람의 공통된 특징은 그 엄청난 인기 이전에, 각자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어냈다는 것. 김용하 본부장은 과거부터 유명했던 본인의 넓고 깊은 '덕력'을 게임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냈으며, 김지훈 대표는 문학적 개념과 입체적인 인물들로 이뤄진 세계관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팬덤을 이끌어냈다.
모더레이터는 게임 전문 매체 디스이즈게임의 정우철 편집장. 이 날 대담의 주제는 '작가주의 PD의 라이브 서비스 운영기'였지만, 사실 현장의 대담은 이 주제와는 다소 다르게 흘러갔다. 처음부터 '작가주의'는 부정한 두 개발자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야기. 그냥 본인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 본 기사는 가독성 향상을 위해 대화의 흐름을 유지한 채 최소한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정우철: 먼저, 오늘의 주제인 '작가주의'에 대해 말해 봅시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게임을 직접 만드는 것. 작가주의에 대해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용하: 작가주의라는 말이 붙으니 저도 부담스럽습니다. 사실 작가주의를 의식하고 게임을 개발한 적은 없습니다. 처음 개발을 시작했을 때는 어떤 게임이든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장르를 좋아했고 많이 플레이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누구나 좋아할 만한 공식을 만드는 건 잘 못하더라고요. 누군가가 왜 좋아할지를 계속 예측하면서 만들다 보면 점점 길을 잃게 됐습니다. 이게 좋은 건지 누군가에게 물어보면서 개발하다 보니 좋은 결과도 잘 나오지 않았고요.
어느 정도 실패를 겪고 나서 이렇게 계속 개발하면 결국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게임만 만들다가 끝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실패하더라도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걸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게임이 '큐라레'였습니다. 그 이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걸 보여줬을 때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알게 됐고,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김지훈: 저도 비슷합니다. 작가주의라는 거창한 생각으로 게임을 만든 건 아닙니다. 그냥 제가 재미있을 것 같고 만들고 싶었던 게임을 만들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됐습니다.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생겼고, 또 그분들이 원하는 방향도 보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저 역시 조금씩 바뀌어 왔고요. 그래서 작가주의라는 사조를 의식했다기보다는 그냥 하다 보니 제가 만들고 싶었던 것이 만들어졌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는 있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김용하: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처음부터 만들고 싶었던 이상적인 게임의 모습이 있으셨나요?
김지훈: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을 만들 때는 확실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게임 플레이 자체는 제가 원하는 모습으로 잘 안 나오는 편입니다.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를 만들 때도 사실은 자동 전투가 벌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형태를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덱빌딩 게임이 됐습니다.
김용하: 그 전에 '슬레이 더 스파이어'를 하셨던 거죠?
김지훈: 맞습니다. 그 시기가 마침 슬더스 라이크가 막 태동하던 때였습니다.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여러 가지를 시도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도 제가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나 주제, 특정 장면은 분명했습니다. 게임 플레이 자체보다는 그런 것들을 담는 데 더 집중했습니다. 플레이는 제가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경험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림버스 컴퍼니'에서는 좀 더 원했던 전투의 모습에 가까워졌고, '루이나' 때 느꼈던 아쉬움도 많이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김용하: 저도 비슷합니다. 처음부터 체험 중심으로 게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닙니다. '큐라레' 때는 기존 미소녀 컬렉션 게임의 문법을 확장해서 다른 재미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습니다. 그러다가 VR 게임인 '포커스 온 유'를 만들게 됐는데, 그 게임을 만들면서 체험이라는 부분을 더 깊게 고민하게 됐습니다. VR에서는 플레이어가 정말 그 세계 안에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게 중요했거든요. 어떻게 하면 캐릭터의 존재감이나 세계의 실제감을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김지훈: 그래서 '포커스 온 유'가 계기가 돼서 플레이 경험 중심의 방향이 더 확실하게 잡힌 건가요?
김용하: 그렇습니다. '포커스 온 유'는 1인칭 VR 게임이었고, 반면 '큐라레'는 플레이어와 별개의 주인공들이 존재하는 구조였습니다. VR을 통해 플레이어가 세계 안에 존재하는 감각을 경험하고 나니 그 연장선에서 '블루 아카이브'를 바라보게 됐습니다. 저희 본부의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가 '들어가고 싶은 이 세계를 만든다'인데요. 플레이어가 정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세계를 어떻게 실제감 있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플레이어가 어떤 사람으로서 세계 안의 인물들과 관계를 맺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고요.

김지훈: '블루 아카이브'를 하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습니다. 스마트폰 UI 자체가 선생님이 사용하는 화면이라는 콘셉트라든가, 어른의 카드 같은 요소들 말입니다.
김용하: 그렇죠. 실제 카드처럼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김지훈: 그런 요소들이 현실감 있게 붙어 있으면서 특유의 맛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잘 만드셨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런 맛을 유지하는 건 엄청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기대됩니다.
김용하: 쉽지 않습니다. 게임에는 게임만의 형식이 있으니까요. 실제감을 주려고 너무 불편하게 만들면 오히려 몰입이 깨질 수도 있습니다. 항상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게임을 요리에 많이 비유하는데, 결국 제가 맛있다고 느끼는 부분을 어디까지 타협하면서도 유지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인 '프로젝트 RX'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지훈: '프로젝트 RX'에서도 그 맛을 느낄 수 있겠네요.
김용하: '프로젝트 RX'는 또 다른 방식의 맛을 내야 해서 정말 어렵습니다.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유저 피드백은 창작의 적일까
정우철: 피드백에 대해서도 말 해 봅시다. 두 분 다 작가주의는 아니라 하셨지만, 게임 개발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과 철학을 지니고 계신데, 유저들의 피드백에 따라 게임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지훈: 실제로 수정을 했던 사례도 있습니다. 프로젝트 문 팬분들이라면 아실 텐데,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 당시 완전 개방과 관련된 부분이 그랬습니다. 그래도 창작자로서 제가 만들고 싶은 세계와 모습, 그리고 자존심 같은 게 있다 보니 '이건 꼭 보여주고 싶다', '이건 재미있을 것 같다'는 뼈대는 확실히 있습니다. 다만 그 뼈대 위에 살을 붙이는 과정에서는 트렌드에 맞춰야 할 때도 있고, 제가 잘못 생각해서 설정 오류가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마음이 아프고 부끄럽지만 수정합니다.
김용하: 실제로 많이 갈아엎어 본 경험도 있으신 거죠?
김지훈: 있습니다.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 엔딩 당시 제가 욕심을 냈고 큰 설정 오류를 범했습니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큰 문제였습니다. 원래 만들려던 것보다 더 많은 걸 넣으려다가 설정적인 충돌이 생겼고, 저도 나중에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결국 일주일 동안 보스전과 스크립트를 새로 만들면서 수정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 지금은 최대한 안 바꾸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절대 안 바꾸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김용하: 계획은 늘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죠. 유저 피드백 이야기가 나왔는데, 대표님은 자체 퍼블리싱과 자체 서비스를 하시니까 상대적으로 덜 흔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지훈: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원래 반응 보는 걸 좋아합니다. 사실 게임을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업데이트를 하면 반응을 찾아보고, 어떤 글이 올라오는지 보고, 스트리머들이 플레이하는 영상도 찾아봅니다. 특히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어떤 반응을 하는지 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러다가 아쉬운 부분이 보이면 또 수정하게 되고요.

김용하: 저는 오히려 퍼블리셔의 피드백이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퍼블리셔와 계속 의견을 맞춰야 했습니다. 우리는 괜찮다고 생각한 캐릭터가 있었는데 퍼블리셔는 다른 국가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피드백이 반복되다 보면 오히려 유저보다 퍼블리셔 쪽이 더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김지훈: 적어도 그 부분에서는 자유로운 게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이야기하는 건 현재 이야기는 아닙니다.
김용하: 그렇죠. 지금 이야기는 아닙니다.
김지훈: 중요한 건 결국 플레이어들의 반응이 있어야 게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예술 작품이 아니라 상품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팔려야 하고 소비돼야 하니까요. 그래서 플레이어들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는 반드시 참고합니다. 다만 바로 반영하지는 않습니다. 괜히 자존심도 상하고요. 또 너무 빠르게 반응하면 목소리가 큰 사람들의 의견만 따라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김용하: 피드백을 너무 빨리 받아들이는 것도 위험할 수 있죠.
김지훈: 맞습니다. 댓글을 직접 쓰는 사람보다 조용히 플레이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래 댓글도 잘 안 쓰는 사람이라 그런 입장을 더 의식하는 편입니다.
김용하 본부장은 지금도 도게자할 수 있다. '버튜버' 때문이라면...
김용하: 피드백을 받아서 가장 빠르게 방향을 바꿨던 사례가 있습니다. 저의 그... 버튜버였는데요. 이건 지금도 바로 도게자 할 수 있습니다.
해명 겸 설명을 좀 드리자면 저는 원래 방송에 직접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워낙 내향적인 성격이기도 하고요. 선생님들도 개발자가 직접 나오는 것보다는 다른 형태를 더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마침 저도 버튜버 콘텐츠를 좋아했고, 블루 아카이브와 연관된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준비했습니다.
김지훈: 굉장히 열심히 준비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용하: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저희 판단이 틀렸습니다. 실시간으로 상황을 지켜봤고, 제가 사과문을 올린 날도 원래는 휴가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안 되겠더군요. 이건 바로 접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김지훈: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때 왜 블루 아카이브 캐릭터를 활용하지 않으셨나요?
김용하: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일단 한국에서만 진행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블루 아카이브와 너무 밀접하게 연결하면 다른 서비스 권역에도 영향을 줄 수 있었습니다. 또 블루 아카이브 안에서 하기 어려운 상호작용을 구현하려면 별도의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블루 아카이브가 가진 역할과 이루아가 해야 할 역할을 분리하고 싶었습니다.
김지훈: 개인적으로는 블루 아카이브 캐릭터를 사용했으면 반응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김용하: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다만 반대로 기존 캐릭터가 원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소비될 위험도 있었습니다. 여러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결국 중요한 건 선생님들이 받아들여 주시는가였습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저희 판단이 틀린 것이고, 그래서 빠르게 접었습니다.
멘탈 관리는 결국 안 된다
김용하: 사실 멘탈 관리라는 게 쉽지 않습니다. 라이브 서비스를 오래 할수록 더 어렵고요. 사고라는 건 항상 예상치 못한 순간에 터집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오더군요.
정우철: 그래서 청계천을 만드신 겁니까.
김용하: 그건 아닙니다.(웃음) 블루 아카이브 서비스를 시작하고 안정성 이슈가 있었을 때가 기억납니다. 그 시간 동안 게시판만 계속 보고 있을 수도 없고, 문제를 해결하는 개발자들에게 계속 이야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뭔가 다른 데 집중할 게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키보드 조립을 시작했습니다.
김지훈: 에고서치는 안 하셨습니까?
김용하: 충분히 했습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더 힘들어집니다. 보긴 보는데, 그걸 조금 떨어뜨려 놓고 봐야 하더군요. 키보드 스위치를 하나씩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명상하듯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 조금 진정이 됩니다. 그 뒤에는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고요.
김지훈: 저는 오히려 그걸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멘탈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지요. 저는 10년 전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을 만들 때도, 5년 전 '라이브러리 오브 루이나'를 만들 때도 몇 년 지나면 멘탈이 강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똑같습니다. 여전히 흔들리고, 스트레스를 받고, 반응을 찾아봅니다.

김용하: 쉽지 않죠.
김지훈: 상담을 받으면 거리를 두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잘 안 됩니다. 오히려 반응을 안 보고 있으면 일을 안 하는 것 같고, 게임에 대한 애정이 줄어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계속 보게 됩니다.
김용하: '림버스 컴퍼니' 자체가 지옥을 직시하는 이야기인데, 대표님도 계속 지옥을 보고 계신 것 같습니다.
김지훈: 맞습니다. 계속 지옥을 보고 있습니다.(웃음) 그래서 회사가 어느 정도 커진 뒤에는 다른 대표님들을 만나면 꼭 물어봅니다. 멘탈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지요. 그런데 다들 똑같더군요. 연차가 많아도 힘들다고 하십니다.
김용하: 저도 익숙해진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도피할 취미가 하나씩 늘어날 뿐입니다.
김지훈: 그래도 취미에 몰입하는 동안에는 잠시 잊을 수 있지 않습니까.
김용하: 맞습니다. 잠깐은요.
김지훈: 결국 다시 돌아오지만요.
김용하: 결국 다시 돌아옵니다.
반응을 보기 위해 방송을 한다
정우철: 결국 멘탈 관리는 안 된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런데도 두 분 모두 라이브 방송을 하고 계십니다. 실시간으로 반응을 받는다는 건 스트레스를 더 받는 일이기도 한데요. 그럼에도 방송을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지훈: 저는 게임 개발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시작한 건 아닙니다. 원래 버튜버 콘텐츠를 좋아했습니다. 그냥 좋아하니까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해보니까 오히려 스트레스가 풀리더군요. 실시간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업데이트를 하고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으면 답답한데, 방송에서는 바로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김용하: 재능도 있으시던데요.
김지훈: 감사합니다.(웃음) 팬분들을 실제로 만나면 슈나쟝 목소리는 똑같은데 왜 얼굴이 이러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의도치 않게 빨간약에 상처를 받으시고... 네 그렇습니다. 아무튼 저한테는 방송이 오히려 멘탈 관리에 도움이 됩니다. 덕분에 게임 개발을 계속 이어갈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김용하: 저는 원래 방송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김지훈: 버튜버는 좋아하시잖아요.
정우철: 이전에 KBS에도 한 번 나오셨지 않나요?
김용하: 버튜버는 좋아합니다만 제가 나오는 건 좋아하지 않습니다. KBS 그건 어쩌다 보니 한 번 나가게 됐는데, 그게 인생의 큰 오점이라고 해야 할지.(웃음) 한 번 인터넷에 올라가면 지울 수가 없더군요.

김지훈: 거의 로스트 미디어 취급이던데요...
김용하: 처음에는 진짜 지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안 되더군요. 그래서 지금도 새로운 흑역사가 생길까 봐 조심합니다. 사실 이런 자리도 제가 먼저 나가고 싶어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요청이 오면 거절하지 말고 일단 해보자는 쪽이지만 늘 후회합니다. 그리고 막상 나와서 이야기를 해보면 또 힘을 얻습니다.
김지훈: 반응이 좋으니까요.
김용하: 맞습니다. 블루 아카이브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직접 이야기를 해주시고, 애정을 가지고 플레이하고 있다는 걸 보면 힘이 납니다. 저뿐만 아니라 개발팀 전체가 그렇습니다. 방송뿐 아니라 오프라인 행사도 많이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김지훈: 실제로 만나면 또 다르죠.
김용하: 그렇습니다. 오프라인 행사에 가면 대부분 웃는 얼굴로 찾아와 주십니다. 아직까지는 칼을 들고 오신 분은 없었습니다.
김지훈: 아직까지는요.
김용하: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해외 팬들은 무엇에 반응했을까
정우철: 두 분 모두 글로벌 팬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노리고 만든 게임이라기보다는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었는데 해외에서도 크게 성공한 사례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해외 이용자들은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용하: 운도 많이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큐라레'도 해외 서비스를 했지만 잘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더 신경 썼어야 했던 부분도 많고, 저희가 부족했던 점도 많았습니다. 그런 경험을 되짚어 보면서 '블루 아카이브'는 처음부터 일본 시장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습니다.
김지훈: 일본을 먼저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요?
김용하: 대표님께서 이 장르는 일본에서 성공해야 다른 지역에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세계관과 시스템을 설계할 때도 시장의 트렌드와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 사이의 교집합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원물이라는 소재를 선택하게 됐고요.
김지훈: 학원물 자체는 일본에서 익숙한 장르죠.
김용하: 맞습니다. 대신 그 안에서 우리만의 맛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물론 저희 힘만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일본 퍼블리셔도 정말 열심히 해주셨고, 여러 조건이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정우철: 프로젝트 문은 서사와 텍스트 비중이 높습니다. 해외 서비스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김지훈: 그 전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는 블루 아카이브가 일본에서 성공한 이유 중 하나가 특유의 청량감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원물은 많지만 블루 아카이브가 주는 분위기는 정말 독특합니다. 그 감각은 다른 작품에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김용하: 감사합니다. 저희는 이상향 같은 세계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이상적이기만 하면 가짜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부분도 적절히 섞어서 플레이어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김지훈: 프로젝트 문도 결국은 운이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희가 의식적으로 노력한 부분은 있습니다. 회사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내부 번역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외주 번역이 일반적이었는데, 저희는 글로벌 동시 출시를 해야 했기 때문에 내부 대응이 필요했습니다.
김용하: 그런데 시나리오가 나와야 번역도 가능한 거 아닙니까?
김지훈: 맞습니다. 그래서 번역팀이 굉장히 힘들어합니다.(웃음) 그래도 다들 세계관에 대한 애정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작업해 주고 있습니다.
김용하: 내부 번역팀은 언제부터 운영하셨나요?
김지훈: 전작부터 일본어와 영어는 내부 대응을 했습니다. 다른 언어권은 팬 번역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제가 일본어와 영어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 두 언어는 제가 직접 읽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번역이 이상한지 아닌지를 알 수 없는 언어는 제가 관리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용하: 프로젝트 문 작품은 고유명사도 많지 않습니까.
김지훈: 맞습니다. 그래서 번역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세계관의 결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단어를 영어식으로 의역할 수도 있지만, 저는 원문이 가진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 싶습니다. 결국 제가 한국에서 살아오며 경험한 것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신선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남을 따라 하기보다 제가 만들 수 있는 걸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용하: 프로젝트 문은 전작부터 세계관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번역가분들도 개발팀과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 있을 것 같습니다.
김지훈: 맞습니다. 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따라와 주시고, 맥락을 이해해 주시고, 함께 세계관을 쌓아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외 팬들이 보내온 편지, 그리고 게임이 가진 의미
정우철: 두 분 모두 해외에서 성공한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매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외 팬들을 직접 만났을 때, 혹은 반응을 접했을 때 "아, 우리 게임이 정말 성공했구나"라고 느낀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지훈: 한국에서도 그렇고 일본에서도 오프라인 행사에 부스를 내면 줄이 정말 길게 서곤 합니다. 어떤 행사에서는 시작한 지 20~30분 만에 폐장 시간까지의 대기열이 전부 차서 줄을 마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물리적인 풍경을 보면 인기를 실감하게 되죠.
김지훈: 그런데 저한테 더 크게 남는 건 팬레터입니다. 해외에서도 정말 많은 편지를 보내주십니다. 물론 전부 답장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하나하나 읽어보려고 노력합니다. 그중에는 불치병으로 투병 중인 분도 있었고, 가정폭력을 겪고 계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이 이야기가 궁금해서 살아보고 싶어졌다", "이 게임이 버틸 힘이 됐다"고 말씀해 주실 때가 있습니다.

김지훈: 그럴 때 이 게임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원래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도 그런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페르소나 4'를 플레이했는데, 당시 사회성이 많이 부족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게임 안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쌓고, 커뮤니티를 완성하고, 인물들과 교류하는 과정을 보면서 현실에서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김용하: 게임에서 받은 영향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고 계신 셈이네요.
김지훈: 맞습니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습니다.
김용하: 저도 비슷합니다. 해외 행사에 나가거나 팬레터를 받을 때 그런 감정을 느낍니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편지를 받는데, 그 안에는 이 게임이 삶의 위로가 됐다거나, 블루 아카이브를 계기로 진로를 정했다거나, 실제로 선생님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김용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계속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개인적으로는 2차 창작이 많이 나올 때도 굉장히 기쁩니다. 저 역시 어릴 때부터 동인 문화를 좋아했고, 존경하던 일러스트레이터나 작가분들이 블루 아카이브 팬아트를 그려주시거나 언급해 주시는 걸 보면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김지훈: 코미케에서도 엄청나죠.
김용하: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또 새로운 굿즈들이 많이 나와서 직접 가보려고 합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
목표는 세웠지만, 결과는 운도 따라야 한다
정우철: 블루 아카이브는 이제 코미케에서 단독 장르 코드가 생길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규모를 기대하셨던 건가요?
김용하: 목표로는 당연히 생각했습니다. 다만 목표와 결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코미케에서 장르 코드가 나올 정도의 규모가 되려면 어떤 세계관을 만들어야 하고,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김용하: 하지만 그런 고민을 했다고 반드시 결과가 따라오는 건 아닙니다. 저희 장르 자체도 그렇고요. 결국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고,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우철: 그래도 목표는 있었던 거군요.
김용하: 그렇습니다. 일종의 버킷리스트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를 이루면 또 다음 목표가 생깁니다. 라이브 서비스는 멈출 수가 없거든요. 익숙한 맛은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하고, 또 이전과 똑같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김지훈: 익숙한 맛이면서도 다른 맛이어야 하니까요.
김용하: 네, 그게 가장 어렵습니다.
AI는 도구일 뿐, 창작자를 대신할 수는 없다
정우철: 이제는 AI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게임 업계에서도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과, 창작 영역에서는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두 분은 AI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김용하: 게임은 양면성을 가진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이기도 하고 예술이기도 합니다. 기술적인 영역에서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복 업무를 빠르게 처리한다거나, 코딩을 보조한다거나,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 같은 것들은 AI가 굉장히 잘합니다.
김용하: 하지만 게임은 결국 창작물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가진 개성이나 팀의 색깔, 창작자의 취향이 들어가야 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까지 AI가 대신하면서 희석된다면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용하: 그래서 저는 기술적인 영역과 예술적인 영역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이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우리만의 맛을 만들어야 하는 영역은 훨씬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지훈: 저는 사람들이 게임이나 영화를 소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창작자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창작자의 고통이 농축된 결과물을 소비하는 거죠. 제 게임을 하는 분들은 김지훈의 눈물 맛을 보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김용하: 고통스러울수록 좋아하시더라고요.
김지훈: 맞습니다.(웃음) 물론 고통 자체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 안에 담긴 고민이나 진정성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AI가 만든 결과물은 그 과정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빠르게 나오니까요.

김지훈: 언젠가는 게임에도 유기농 마크 같은 게 붙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게임은 AI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식으로요. 슬로우 푸드처럼 천천히 만들었지만 그만큼 창작자의 시간이 들어갔다는 걸 강조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용하: 저는 AI가 여러 아이디어를 빠르게 시험해 보는 데에는 굉장히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실제로 좋은 결과물을 선택하고 구현하는 건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지훈: 10시간 동안 100개를 할 수 있던 사람이 AI 덕분에 1,000개를 해볼 수 있게 된다면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 덕분에 1시간만 일하게 되는 건 사람들이 원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창작자가 얼마나 시간을 들여 고민했느냐 아닐까요.
김용하: AI는 너무 모범적인 답을 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일 답장을 쓰거나 문서를 정리할 때도 그렇습니다. 굉장히 훌륭한 문장을 써주는데, 막상 읽어보면 제가 쓴 것 같지 않습니다. 결국 제가 다시 쓰게 되고요.
김지훈: 사람만의 결이 없는 거죠.
김용하: 맞습니다. 인간적인 결함이나 편향, 취향 같은 게 결국 사람의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게 적당히 들어가 있어야 창작물도 살아 있는 느낌이 나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 더 중요한 건 자기만의 것
정우철: 앞으로 AI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두 분은 어떤 기준으로 AI를 활용하게 될까요?
김지훈: 저는 기술을 선도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게임을 만들고 싶은 이유도 기술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게임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AI가 업계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좋은 활용 사례가 쌓인다면 그때 저희 방식에 맞게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우철: 이미 대기업들이 앞에서 길을 만들고 있으니까요.
김용하: 저는 지금도 기술적인 영역에서는 AI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리서치를 한다거나, 자료를 정리한다거나, 문서를 만드는 일에는 굉장히 유용합니다. 코딩을 보조하거나 버그를 찾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고요.
김용하: 그런 부분에서 시간을 아낄 수 있다면 더 중요한 콘텐츠 제작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일러스트나 캐릭터 디자인, 스토리처럼 창작의 핵심 영역은 훨씬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우철: 결국 창작자의 의도를 구현하는 도구로서 사용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김용하: 네. 그 선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우철: 그렇다면 AI 시대에 창업이라는 선택지는 어떻게 보시나요? 지금보다 훨씬 적은 인원으로도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올 텐데요.
김지훈: 도움은 분명히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팀이 등장하면서 게임 유통의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졌고, 유니티나 언리얼 엔진 덕분에 개발 자체도 훨씬 쉬워졌습니다. AI는 그 장벽을 한 번 더 낮춰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지훈: 예전에는 만들고 싶어도 기술이 없어서 포기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도전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다만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된다고 해서 아무나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겠죠.
김용하: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요즘은 AI가 액션 게임 프로토타입 정도는 금방 만들어 주더군요. 누구나 비슷한 걸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면 오히려 자기만의 색깔이 더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김용하: 결국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자기만의 것이 될 겁니다. 창업도 하나의 방법이고, 회사 안에서 경험을 쌓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저는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성장할 수 있다는 장점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맛을 끝까지 갈고닦아야 한다
정우철: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는 언젠가 두 분과 같은 위치에서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하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씩 조언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작가주의라는 주제에 맞춰 이야기한다면,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김용하: 오늘 계속 맛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결국 그 이야기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더욱 많이 하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영어로는 '테이스트(Taste)'라고 하죠. 게임 업계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결국 테이스트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김용하: 테이스트는 취향일 수도 있고, 안목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게임을 좋아해서 게임 개발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어떤 게임을 좋아하는가.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가. 어떤 시스템을 좋아하는가. 어떤 세계관과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김용하: 그런 질문을 반복하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맛이 무엇인지 더 뾰족하게 다듬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본인만이 낼 수 있는 맛을 찾고, 그것을 더 고도화하는 과정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김지훈: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창업이라는 관점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용하님께서도 여러 번 운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 역시 돌이켜 보면 결국 운이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지훈: 회사가 올해로 10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저보다 훨씬 열심히 하신 분들도 있었고 저보다 능력이 뛰어난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회사를 정리하거나 팀이 해체된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결국 성공하느냐 못하느냐에는 운이라는 요소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김지훈: 그런데 운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건 운이 올 때까지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입니다. 정신적인 체력, 육체적인 체력, 그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중요합니다.
김지훈: 저는 종종 물에 떠 있는 것에 비유합니다. 물 위에 계속 떠 있으려면 끊임없이 물장구를 쳐야 합니다. 발버둥을 멈추는 순간 가라앉게 되죠.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물장구를 칠 수 있느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정말 어렵습니다. 지금도 저 역시 답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김용하: 결국 인생도 가챠라는 생각이 드네요.
김지훈: 맞습니다.(웃음)
김용하: 다만 가챠도 많이 뽑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계속 시도하는 것이겠죠. 확률을 조금씩 높여 가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