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이 노를 저으면 저을수록 보트는 함대와 가까워졌다. 그녀는 우사 대륙의 군함을 처음 보는지 산들바람 호를 비롯한 첫 번째 그룹의 함선들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라우 대륙이나 이우 대륙은 서로 자그마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그 교류가 우사 대륙에 비하면 아주 많은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양 대륙의 함선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생겼지만 우사 대륙은 그들과는 교류가 거의 없었기에 함선의 모양 또한 그들의 배와는 천양지차였다.
“레이디 먼저.”
배에서 보트 쪽으로 자그마한 다리를 내리자 병사들이 그녀를 먼저 다리의 위로 올려 보냈다. 그러자 그녀는 병사들에게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으로 다리의 위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의외라는 듯 그 모습을 쳐다보더니 너무 많이 맞아서 제대로 몸을 겨누지도 못하는 선원들을 계단으로 올려 보냈다. 하지만 그들은 보트가 있던 해안가까지 걸어서 온 것이 기적이었던 듯 걸어 올라가기는커녕 계단으로 올라가지도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던 한스는 자신이 다리의 위로 올라가 보트에서 그 선원들을 받아 올렸다. 선원들은 한스가 자신들의 몸에 손을 댈 때마다 아까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 듯 움찔했지만 한스는 그런 선원들을 보며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다른 병사들과 함께 그 선원들을 부축해 갑판으로 올라온 한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갑판에 서 있는 그녀와 자신들을 바라보는 얀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피떡이 된 선원들을 보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한스에게 말했다.
“저자들은 어떻게 된 겐가?”
“이곳에 계신 레이디를 겁탈하려는 것을 보고 저희가 패 주었습니다.”
한스의 말에 맞아도 싸다는 얼굴로 선원들을 바라보던 얀은 문득 아무렇지도 않았던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든 것을 보며 작게 웃었다. 우사 대륙의 말을 모르는 것 같았던 그녀가 한스의 말을 알아듣고 있는 것이었다.
“저는 엠펠 영지의 가신이자 해군 제독 얀 드 레온하트입니다. 동방의 대륙에서 오신 레이디의 존함은 무엇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우아한 움직임으로 인사를 하며 이름을 물어오는 얀의 모습에 그녀는 부끄러운 얼굴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한숨을 내쉬더니 작게 말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레온하트님. 전 동방의 이우에서 건너온 세리스 드 모네시스입니다.”
“혹시 세비노프 드미트리히 제독의 함대원이셨습니까?”
“그를 아시나요?”
침울한 얼굴이었던 세리스가 갑작스럽게 반색하며 얀에게 말했다. 얀은 그런 그녀의 얼굴 표정에 세비노프가 말했던 생존자들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알고는 예상보다 쉽게 일을 끝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드미트리히 제독이 저희에게 생존자의 수색을 부탁했습니다. 혹시 레이디를 제외한 다른 생존자들이 더 있을 것 같습니까?”
얀의 말에 세리스가 다시 침울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선원들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해적들과 싸우다가 모두 전사했기 때문이었다. 얀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푸욱 내쉬며 한스를 바라보았다.
“수고했네. 돌아가서 푹 쉬도록.”
옷에 잔뜩 묻은 피 때문인지 찝찝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 있던 한스와 다른 병사들을 보고 얀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병사들은 얀에게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선실로 들어갔다.
“레이디께서도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본 함에는 저희 엠펠 영지의 공자님께서 계십니다.”
작은 영지를 갖고 있는 힘없는 백작의 자제도 아닌, 타 대륙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강력한 귀족 가문의 자제가 대부분의 귀족들이 기피하는 군대에, 그것도 해군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에 세리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를 사관들이 사용하는 선실의 복도로 안내하며 그녀가 놀라는 모습을 본 얀은 작게 미소 지었다. 샤라인이 초계함대나 전투함대를 돌아다니며 바다에 나가는 것을 알게 된 대부분의 귀족들은 그녀처럼 놀란 표정을 짓곤 했기 때문이다.
문득 그녀가 더 놀라게 해볼까 하며 짓궂은 생각을 하던 얀은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샤라인은 남들이 자신의 하는 행동에 대해서 옳지 않은 것이나 바르지 못한 것을 지적하는 것에는 관대했지만 그 이외에 대해서는 예민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고급스럽게 치장된 사관들의 복도를 지나 엠펠 영지의 함대 기함이라면 어떤 배이던지 갖추고 있는 특실의 앞에서 얀은 멈춰 섰다. 세리스는 얀이 멈춰 서자 자신의 앞에 있는 방이 공자의 방일 것이라 생각하고는 방문 너머에 쳐져있는 커튼을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방 밖과는 안쪽을 굳게 가로막는 듯한 모습의 얇은 커튼은 얀의 손짓에 힘없이 흔들렸다. 한번 두 번 노크를 할 때마다 커튼은 앞뒤로 흔들리며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아, 얀 경. 무슨 일인가요?”
샤라인이 문을 열고 나와 노크를 한 것이 얀이라는 것을 보고는 의외라는 얼굴로 말했다. 그리곤 얀의 옆에 서 있는 세리스를 보고 갑자기 궁금해진다는 표정을 하며 얀의 말을 기다렸다.
“드미트리히 제독이 말했던 생존자를 찾았습니다. 여기 이분입니다.”
“동방에서 온 세리스 드 모네시스라고 해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일단 두 분 다 들어오시죠.”
샤라인의 말에 세리스와 얀은 샤라인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샤라인은 그들에게 테이블의 주변에 놓여있는 소파에 자리를 권하고는 그들이 앉는 모습을 보며 방금 전까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병법서입니까?”
침대 위에 놓여져 있던 책의 모양을 유심히 본 얀이 물었다. 평소에도 샤라인은 병법서를 주로 읽었기 때문에 지레짐작하며 말한 것이었다.
“지난번 동방에서 건너온 상인들에게 산책입니다. 제목이 손자병법서인데, 고대에 쓰인 병법서를 옮겨 적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육상 전을 다룬 것인데 아주 좋습니다.”
“그렇군요.”
얀의 말을 끝으로 그들의 사이에선 어색한 정적이 고요히 흘렀다. 샤라인과 얀이야 샤라인이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전혀 어색한 감이 없었지만 문제는 세리스였다.
여자라고는 어머니와 시녀들밖에 모르는 샤라인과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혼자 사는 얀에게 있어 보기 드문 미녀인 세리스는 상대하기가 황제가 보낸 칙사보다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다른 생존자는….”
다른 생존자들이 더 있냐고 물어보려 하던 샤라인은 굉음과 함께 갑작스레 배가 크게 흔들리자 놀라 소파를 붙잡으며 말을 멈췄다. 배의 가구들은 기본적으로 파도가 심하면 이리저리 움직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배에 완전히 고정시켜놓는 것이 일반적기 때문이었다.
“해적의 강습인가…. 레이디께서는 여기에서 기다리고 계시지요. 얀 경.”
샤라인이 투덜대며 말하자 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세리스에게 작게 목례를 하며 샤라인과 함께 복도로 나왔다. 다른 사관들도 해적이 강습해온 것을 알아챘는지 급히 달려 나가고 있었다.
“어서 닻을 올리고, 적의 대응에 대응하지 말고 탈출에 집중해야 하네.”
얀이 다급해진 얼굴로 갑판에서 그의 명령을 기다리던 함장에게 말했다. 함장은 갑작스럽게 닥친 위기상황이라 마음이 급한지 얀에게 짧게 경례를 붙이곤 선원들의 사이로 사라졌다.
그들이 지금 닻을 내리고 정박해있는 곳은 두 섬의 사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해적들이 작정하고 앞뒤를 모두 막아버린다면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전열함도 아니고 숫자도 적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제독. 확인된 적의 규모입니다.”
한 사관이 얀의 옆으로 다가와 작은 쪽지를 내밀며 말했다. 얀은 그에게 쪽지를 빼앗듯 받아들고는 그 것을 읽기 시작했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의 소란스러운 상황이라 아래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마스트의 위에서 주변을 살피던 병사가 적은 것이었다.
-적의 규모는 갤리온 3척, 정급 4척, 프리깃 14척이며 계속 숫자가 늘어나고 있음.
쪽지를 다 읽은 얀은, 자신이 생존자를 구해온 직후 해역을 탈출하라 명령하는 것을 잊은 것을 저주했다. 만약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얕은 바다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한 채 해적에게 패배하는 치욕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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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참 달성..후후 -ㅂ-
예전에 써논걸 올려놓긴 했는데.. 이제 비축분은 3회 분량밖에 안남았네요
그나저나.. 같이 연달아 올려서 그런지 조회수가 좀 더 오른듯.
리플좀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