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산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자그마한 섬. 그 섬의 해안가에는 보통의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괴상한 모습의 건물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산에서 분수 있는 거대한 나무들보다도 몇 배는 더 높은 건물들.
그리고 그 건물들의 벽에 있는 유리는 깨지거나 빠져나가 건물의 안쪽과 밖의 공기가 통해지며 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 섬의 대부분 건물들이 그런 상황이었기에 바람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하지만 모처럼 그 바람소리는 다른 소리에 묻혀 사람들이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해적들과 엠펠 영지의 해군의 전투로 온갖 폭음이 섬의 주변에서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섬의 한쪽 구석에 모여 있는 엠펠 영지의 초계함대 첫 번째 그룹은 수세에 몰려서 해적들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고 있었다. 대부분 배에서는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고 배 위에서 병사들이 해적들의 배를 향해 필사적으로 총과 대포를 쏘며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확실했다. 열 척의 함선들 중 이미 세척이 완파되어 쓰러져 있었고 대부분의 배가 해안가의 얕은 바닥에 배를 깔고서는 죽을힘을 다해 해적들을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산들바람호도 다른 배들과는 마찬가지여서 이미 돛은 불타버려 바다에 떨어트린 지 오래였고 포탄도 거의 바닥나서 이제는 남아있는 탄환의 수를 손으로 셀 지경이었다.
갑판에는 해적들의 화살과 총탄에 맞아 전사한 병사들이 널려있었고 이제는 얀과 샤라인을 비롯한 다른 사관들까지 직접 머스캣 총을 들고 나서서 해적들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한계의 상황이었다.
“아…… 비다.”
어설픈 손놀림으로 총탄을 장전하고 있던 샤라인이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비 덕분에 갑판과 마스트를 불태우고 있던 불이 점차 꺼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샤라인은 자신들의 마지막 무기마저 무력화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빗물 때문에 화약이 젖어서 총탄을 발사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갑판에서 최후의 저항을 하던 병사들과 사관들, 샤라인과 얀은 절망적인 표정을 하고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해적들은 해군의 저항이 뚝 그친 것을 보며 공격을 멈추었다. 해군 병사들을 포로로 잡아 몸값을 요구하려는 이유에서였다.
“젠장!”
난간에 걸터앉아 머스캣을 들고 있던 한스가 괴성을 지르며 갑판을 주먹으로 내려졌다. 거구의 남자가 있는 힘을 다해 내려친다고 해서 부서질 정도로 약한 갑판이 아니었기에 한스는 주먹에 극심한 고통을 느꼈지만 그는 정상이 아니었다.
몇 남지 않은 선원들과 사관들 그리고 샤라인과 얀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런 한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 수만 있다면 해적들을 모두 해치우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
빗방울이 바닷물에 떨어져 그 수면을 흔드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던 샤라인이 멀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얀과 다른 이들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샤라인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쿠아아앙!
멀리에서 희미하게만 들려오던 폭음이 산들바람호의 근처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이들은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영지에 지원을 요청했던 전투함대의 함선들 중 하나인 전열함 한 척이 엄청난 수의 포탄을 해적들의 함선에 쏟아 붓고 있었다.
“오오!”
원군이 왔다는 사실에 병사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일까. 해적들의 공격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으며 힘없이 죽어가던 함선들에서 해적들에게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얀은 문득 배의 무기고 안쪽에는 화살과 활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었다. 영지가 부유해진 이후, 비싸긴 하지만 그 위력이 강력한 머스캣을 사용하며 창고에 넣어두고 썩히기만 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비 때문에 더 이상 머스캣을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비록 미약하지만 조금이라도 반격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얀과 다른 이들에게 있어 활은 더 이상 쓸모없는 무기가 아니었다.
“무기고의 활을!”
얀이 외치며 배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샤라인과 한스가 얀을 따라 무기고를 향해 움직였다. 무기고는 사관 선실의 바로 옆에 있었다.
“젠장…….”
비에 온 몸이 젖은데다가 피까지 뒤집어써서 비참해질 대로 비참해진 몰골의 샤라인이 선실들이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보고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무엇인가 생각난 듯 갑자기 눈이 동그래지며 불타고 있는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놀란 얀과 한스가 샤라인을 잡으려 했지만 샤라인은 이미 불길 속으로 들어간 뒤였다.
“공자!”
얀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굴이 하얘지며 한스와 함께 복도로 들어간 샤라인을 뒤쫓기 시작했다. 이미 선실이 타들어가며 나오는 매캐한 연기에 제대로 숨을 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레이디 세리스!”
샤라인이 연기를 들이마시곤 콜록거리며 소리쳤다. 그리곤 한걸음에 내달려온 자신의 방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불길에 손잡이가 녹았는지 문은 열리지 않고 있었다.
“젠장!”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며 샤라인이 나지막한 욕설을 내뱉었다. 아직 방 안쪽에는 불길이 번지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연기는 점점 방을 향해 쏟아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가 방문을 어깨로 들이치며 문을 열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17세밖에 되지 않은 소년의 힘으로 굳게 닫혀있는 문을 부수기에는 무리였는지 문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그의 힘을 받아내었다. 이미 복도에는 연기가 가득 차 숨쉬기도 어려웠다.
“공자! 레이디!”
어느새 달려온 얀이 그가 문을 부수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것을 보고는 세리스가 방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곤 한스와 함께 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문은 건장한 성인 남자와 우락부락한 남자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곧 손잡이가 부러져 버리며 방 안쪽으로 활짝 열렸다. 그러자 얀과 샤라인, 한스가 방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서 레이디를 밖으로!”
이미 지원함대의 도착으로 전세는 기울어져 있었기에 위력이 떨어지는 활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 점을 알고 있는 얀은 놀란 표정으로 서 있는 한스를 바라보며 세리스를 덥석 안아 그에게 넘겨주었다.
“공자님도 어서 밖으로 나가십시오. 이곳은 위험합니다.”
얀의 말에 샤라인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한스를 따라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복도는 방금 전 보다 불길이 더 거세져 있었고 그들의 몸을 적시고 있던 빗물은 이미 거의 대부분이 증발해버린 상태였다.
“전세가 역전된 이 상황에서 불에 타 죽어야 한다는 말인가.”
얀이 불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복도를 집어삼켜 버린 불길은 샤라인과 그 일행이 갑판으로 나가는 길을 완전 차단해버린 채 자신과 함께 죽자며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느끼며 다시 샤라인의 선실로 들어갔다. 비록 연기는 많이 차 있었지만 불길은 아직 그곳까지는 침범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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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댓글에서도 말했지만;
손자병법서는 실수가 아닙니다 ㄱ-;
앞으로는.. 일일(1,1)연재나 일이(1,2)연재가 될듯합니다.
다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 폭풍 피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