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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향신료전쟁의 베니스 (3)

아이콘 늑대늑대
댓글: 3 개
조회: 525
2009-02-15 15:12:04
1562년 4월 22일, 베니스.

인도섬까지 나와 함께 할 선원을 찾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회에서 내어준 목록대로 직접 찾아가거나 그들의 소문을 들으면 신기하게도 단 세 가지 이유로 나와 함께 하지 못했다.
죽거나
실종됐거나
저주받을 페르세포네의 배에 탑승하기로 되어있거나!
스테이크를 썰다가 울컥 화가 나서 나이프를 던지듯 접시에 내려놓자 21살의 여동생 아그네스는 히스테리에 걸린 40대 노처녀처럼 지랄같이 화를 냈다. 화를 내면서 문득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어주었을 때는 그녀를 갈비뼈가 아작 날 정도로 힘껏 안아주었지만 말이다.
굳이 상회에서 제시한 목록대로 사람을 모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을 모으는 방법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서신을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난 원래가 넋놓고 답장을 기다릴 만큼 태평한 사람이 아니었고 시간이 남아 도는 것도 아니었기에 고민 할 것도 없이 일일히 찾아다니기로 했다. 물론 비서를 시켜서 서신을 보내도록 지시했지만 답장을 기대하진 않았다.
가장 먼저 찾아간 것은 미쳤다는 소문이 자자한 의사 베라치오였다. 그를 추천한 것은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의심스러운 나의 여동생 아그네스 베르티였다. 그를 만나기 위해 그녀와 함께 마차에 탔을 때도 끊임없이 베라치오는 배에 탈 인물이 아니라고 설득했다. 그는 이미 늙었고 미쳤다는 소문 때문에 배에 오른 선원들의 항의가 빗발쳐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빠한테 그 사람은 생명의 은인이잖아. 그렇지?”

“아니.. 꼭 그렇지는…”

'않아'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녀의 미간이 세모꼴로 사납게 바뀌자 곧장 수긍하고 말았다.
어릴 적, 내가 열이 펄펄 끓고 있을 때였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는데 당시만해도 명의였던 베라치오가 와서 나의 피를 뽑고 육두구와 메이스를 달인 약을 먹여서 병을 치료해주었다. 베라치오는 이 시절에 아테네로 유학까지 다녀온 베니스의 명의로 통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사람에게 이상이 생기면 직접 배를 열어 직접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야 한다는 미친 논문을 발표하고서 명의의 명성은 한 순간에 사람에게 칼을 들이미는 미친 사람으로 추락해버리고 말았다. 이후에도 이상한 실험을 사람에게 해서 정신이 나가버린 폐인을 만든다고 소문이 났다. 심지어 귀족 아줌마들의 대화에서 언급되기론 악마와 계약을 맫었다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그의 허름하고 음산한 집 앞에서 나는 문을 두드릴지 말지 고민했다. 그 사이를 못 참고 아그네스는 가고일 문양 청동 손잡이를 쾅쾅 두들기며 ‘아그네스 베르티가 왔습니다. 선생님!’ 이러면서 소리쳤다. 그러자 잠시 후 안에서 쿵쿵거리는 부산한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문이 빼꼼히 열려 충혈된 눈으로 우리를 경계하듯 빠릿하게 쳐다보았다. 백발에 말라비틀어진 송장같은 모습의 노인이 눈알만 빠릿하게 돌아가는 폼이 영락없는 미친 사람같았다. 그래서 곧장 다른 사람을 알아보러 가고 싶었지만 아그네스는 정말로 기쁜 듯 미소지으며 그의 안부를 물은 뒤 안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작지만 선물도 있습니다.”

그녀가 꺼낸 것은 엄지손가락만한 원통형 통에 들어있는 수북한 바늘들이었다.

“동방에서 이것을 보고 ‘침’ 이라고 부른답니다. 이걸로 사람을 치료한데요.”

그러자 박사는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묵묵히 문을 열고 우리를 맞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음산하고 이름 모를 장비들이 거실에 가득 놓여있었다. 따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방은 없는 것인지 거실의 쇼파에 앉기를 청한 뒤 부인에게 차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환자가 와 있어. 실례하겠네."

그런 뒤 환자가 있다는 방으로 향했다. 도중에 순간 생각났는지 아그네스를 불렀다.

"아직도 날 스승으로 여긴다면 따라와도 좋네."

그 말에 대답하는 아그네스의 표정은 아마도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 입이 귀까지 찢어져서는 고개를 세 번이나 끄덕였다. 그러더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을 잡고 반 강제적으로 박사의 치료실로 끌고갔다.

"왜 이래? 싫어!"

내가 작게 소리쳤지만 아그네스는 막무가내였다.
거실 구석에 흰색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치료실에는 땀을 비오듯이 흘리는 남자가 누워 있었다. 피부색을 보니 이슬람교도 같았다. 베라치오는 그에게 이슬람어로 아직도 배가 아프냐고 물어보았다. 직접 배를 만지면서 이 부분이 아픈 게 확실하냐고 물어보았고 환자는 그곳이 숨이 막힐 정도로 아프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고생해서 밀입국 했는데 말은 안통하지, 돈은 없지.. 더군다나 이 병의 이름을 아는 사람도 흔치 않지. 이 환자는 엄청난 고생끝에 이곳에 왔네."

아마도 나에게 말하는 건 아닌듯 했다. 그의 제자인 아그네스가 옆에 있으니까 말이다. 아그네스는 그의 말을 경청하며 들었다.

"아그네스,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네 가지 액체를 말해보아라."

계속 아픔에 신음하는 환자가 신경쓰이는지 그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레 대답했다.

"음.. 심장에서 혈액, 위와 간에서 황담즙과 흑담즙, 마지막으로 점액이 있습니다."

"이 환자의 병을 직접 확인해보지 않겠나?"

아그네스는 조심스레 환자에게 다가가 입을 벌려 보거나 배를 만져보고 가슴에 귀를 대보는 등 희안한 방법으로 사람을 관찰했다. 그 모습이 난 영 못마땅했다. 사이비들이나 하는 것을..... 미숙한 이슬람어로 설사를 했나, 언제부터 아팠는가 물었다. 그러자 아픈 것은 오늘 새벽부터라고 했고 설사같은 건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열은 없지만 땀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혈액이 많이 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식은땀을 흘리고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니 혈액을 뜨겁게 변질시키는 황담즙이 필요 이상으로 분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황담즙을 뽑아내야 하고 배가 아프기 때문에 물은 주어선 안될 것 같습니다. 치료제로는 통후추를 다린 물이 좋을 것 같네요."

베라치오는 그녀를 보며 흡족하게 미소지었다.

"좋군. 내가 가르친 보람이 있어. 하지만 이 병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에 문제가 있네."

그러더니 그는 레어로 익힌 스테이크를 써는 뾰족한 나이프를 꺼내어 불에 달구었다. 그리고 환자에게 말했다.

"이것은 내가 만든 특수한 마취제라네. 쭉 들이키게."

이슬람어로 말한 뒤 누가봐도 위스키인 것을 그에게 먹였다. 이슬람교도에게 술은 금기되는 것이지만 그는 술이란 것은 구경도 못했을 터. 베라치오의 말만 믿고서 마취제라고 한 술을 몽땅 들이켰다.

"아파도 참게."

순간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칼로 옆구리를 짼 것이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환자는 아픈듯 신음했다.

"칼로... 베다니.."

환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슬람어로 중얼거렸다. 아그네스도 이 모습은 적지않게 놀란 듯이 보였다. 베라치오는 그 순간에도 태연하게 치료에 임했다.

"이 환자는 맹장이라는 부위가 파열된 것이라네. 그 부분이 아프다면 어떻게하면 될까. 신체에선 필요 없는 부위야."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그것을 인정하기는 싫었다. 아그네스는 제발 이것이 답이기를 빌듯이 조심스레 말했다.

"...피를 뽑습니까?"

"그 부분을 도려내야지."

주먹만한 덩어리를 환자의 배에서 꺼내어 손 전체가 피로 물들었을 땐 순간 정신이 아찔해져서 잠시 휘청거렸다. 고개를 들고서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환자는 알라신을 찾으며 기절해버렸다.

잠시 뒤...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베라치오와 우리들은 테이블에 앉아서 차를 훌쩍거렸다. 나는 영 못마땅했지만 아그네스는 그와 얘기를 나누는 게 즐거운 듯 보였다. 그녀가 가져온 선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아그네스에게 침의 사용방법이나 어느 지방에서 주로 사용하는지를 쉬지 않고 물어보았다. 그 와중에 나는 아까 치료를 받은 환자가 죽지 않았나해서 치료실을 조심스레 쳐다보았다.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새근새근 환자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이다. 죽었다면 당장이라도 이교도 재판에 회부되었을 것이다. 아니, 지금 이런 치료 행위를 고발해도 당장에 감옥행이다.

“그나저나 마르코는 상당히 오랜만이군. 거의 16년만인가?”

베라치오가 나에게 형식적인지 정말인지 모를 관심을 보이자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곧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자주 찾아뵜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나야 이 도시에선 미친놈이고 자네는 잘나가는 상인이니까 내가 자네여도 날 찾아오진 않았을 거라네. 아무리 예의상이라도 마음에도 없는 말은 사양해주게나."

하고 씁쓸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나 역시도 기분이 씁쓸해졌다.

"자, 나를 찾아온 용건이 뭔가? 용건은 아그네스가 아닌 자네에게 있는 것 같은데."

의표를 찔려버렸기에 움찔했지만 웃어 넘긴 뒤 얘기를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항해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자 그는 아내가 내온 차를 묵묵히 마셔가며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이 항해는 박사님의 의학 논문을 선원들에게 활용해볼 좋은 기회이며 개발하셨지만 검증 되지 않은 약도 선원들에게 사용해도 좋다며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계속해서 늘어놓았다. 다른 박사를 설득할 때에도 같은 조건을 제시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시조건을 거들먹거리면 마치 이 사람에게만 특별 대우를 해준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그도 이러한 제안이 큰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를 다 끝마쳤을 땐 차는 이미 식어있었고 그는 잠시 고민하는 척 하더니 이내 말문을 떼었다.

“자네의 제안은 받아들이기 힘들군.”

나는 잠시 생각하는 척 하며 손을 턱에 괸 뒤 실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거 참으로 유감이군요.”

이 말을 끝으로 몇 번 더 형식적인 인사를 건낸 뒤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가 나와 함께 배를 탄다는 것이 꺼름칙스러웠기 때문이다. 말로는 설득했지만 아그네스가 간절히 청했기에 한 것 뿐이고 실제로는 전부가 빗말이었다. 그 말고도 유능한 의사는 많은데 굳이 소문이 좋지 않은 사람을 배에 태우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람에게 직접 칼을 데다니? 미친 사람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그네스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유를 듣고 싶네요.”

그러자 그는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듯 부인에게 새로운 차를 받아 한 모금 마시고 얘기를 시작했다.

“마르코군이 제시한 조건은 마음에 들어. 선원을 치료하면서 논문을 입증해보이는 것 말일세.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내 생에 마지막 항해가 되리란 것 또한 나도 잘 알고 있어. 배에서 내가 쓴 논문이 사실이란 걸 입증하는 것도 무척이나 기쁠 걸세. 하지만 나는 전쟁이 끝나길 기다려야 하네. 아테네의 학회에 논문을 발표하기 전까진 베니스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어.”

“서신으로 보내면 될텐데요.”

“이미 1년 전부터 보름마다 한 번씩 보냈지만 답장이 오질 않아. 전쟁 중이니까 할 수 없지....”

아그네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나와 눈을 마주보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녀가 하려는 말이 어떤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였으므로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청개구리 유전자를 타고 난 아그네스가 내 말에 동의할 이유는 없었다.

“저희가 직접 논문을 전하겠어요. 학회장에게 답장까지 받아오죠.”

이럴 때 보면 아그네스가 나와 한 핏줄이 아니길 믿는다.

마차로 돌아와서 나는 아그네스에게 버럭 소리쳤다.

“빌어먹을! 전쟁이 한창인 지역에 가다니?!”

“겸사겸사야. 어차피 이얀 토마스도 섭외하러 가야하니까.”

“이얀 토마스? 그 전쟁광? 상회에서 알면 기절 할 텐데?! 아니, 그보다 나와는 앙숙이야 그 사람은!”

“나와는 친하지. 전 약혼자였으니까.”

그러자 그녀는 나를 향해 활짝 미소 지었다. 고급 드레스나 사치품을 원할 때 짓는 회심의 미소이다.

“안돼 이번 만큼은 절대로 안돼. 이안을 원한다면 서신을 보내! 러브레터라도 쓰던가!”

“하지만… 육지에 언제 상륙할지 모르는 사람인걸…….”

남자가 봤다면 실로 애달프고 상처받은 토끼처럼 말 끝을 흐리는 그녀를 보며 살살 녹아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달콤함 속에 마녀만큼 추악한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순박한 표정을 짓다가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거란 것을 알았는지 표정을 확 바꾸고 마부에게 말했다.

“시장으로 가주세요. 구제 옷을 살거에요.”

“잠깐! 거기엔 가지 않아! 당장 내 집으로 돌려.”

마부에게 소리치자 아그네스는 나를 어린애 타이르듯 이렇게 말했다.

“이 마차는 내꺼니까. 투정부리면 안된단다.”

그녀가 승리를 확신한 미소를 띄우자 나는

“오 나의 하나님… 빌어먹을 아그네스!!”

마차에서의 절규가 베니스 전체에 울려 퍼졌을 것이다.

Lv9 늑대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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