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네덜란드
4월 7일, 이른 아침.
부지런한 네덜란드의 식당주인이 아침을 내오느라고 부산히 움직였다.
그러나 이런 서늘한 아침부터 바쁜건 주인뿐이고,
나머지들은 한가로운 아침의 냉랭한 공기를 만끽했다.
너무 서두르지않고 9시쯤 떠나기로 했기때문에 모두들 느긋했다.
아직은 이른시간.
식당은 나와 내 일행 외에 두어명의 사람만이 아침식사를 기다리고 있을뿐이었다.
달고 차가운 공기가 창가에서 가득 불어와 부엌에서 나는 구수한 스프냄새를 이리저리 흩었다.
가까운 곳에서는 항해사 제논이 느긋한 표정으로 엽궐련을 피우고 있었다.
따뜻한 카리브의 바다, 그 비옥한 하바나에서 자라는 담배는 그 나름의 달면서도 씁쓰름한 향내를
간직하고 있었다.
물론, 가까이가면 매캐하고 독하지만말이다.
"맛있게 드십시오."
주인이 아침으로 내온 음식은 샛노랗고 둥근 원형치즈와 에르텐 수프, 그리고 빵등이었다.
식당주인이 왠종일 저어댔을듯한 수프는 감자와 콩이 푹 물러서 매우 뜨거웠는데
그 으깨진 감자와 양파의 풍미가 일품이었다.
그리고 치즈는 낙농국가답게 치즈특유의 향미가 살아있어 이것 또만 별미다.
빵은 크게 베어물어 뜯으면 차가운 공기속에 뜨거운김을 무럭무럭 올리는 갓구운 빵이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않을것 같아."
내 말을 들은 식당주인은 크게 기뻐하는것 같았다.
...
운하를 따라 쌀쌀한 아침 공기속을 걸었다.
암스테르담은 런던과 달리 안개가 없어서 상당히 깨끗하고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는 운하를 따라 늘어선 교역소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선원들은 배를 지키고, 에이미와 제논은 나를 따라 단단한 포석 도로를 따라 걸었다.
아침은 조용했다.
일찍 나온 운하의 배들과 우유마차는 이따끔씩 종을 울리고, 빵바구니를 든 사람들이
종종 나타나 내가 모르는 골목으로 사라졌다.
통통한 갈매기는 노란발을 종종거리며 따라오다가 이내 흥미를 잃고 돌아간다.
나는 여러군데에서 물건들과 가격을 알아보고는, 암스테르담의 특산품중에 유리구슬이
가격이 낮아졌다는것을 알았다.
이유야 모르지만 정상가의 8%이하 인걸로 봐선 소비가 줄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렇지만 이것은 상당히 고가 였다.
보석이나 귀금속도 아니고, 가격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유리장인들이 하나하나
색을 입혀 만들어내는 것으로 대부분의 가격이 수공한 값일것이다.
이것은 레이스의 장식이나, 각종 기구들, 생활도구들, 혹은 목걸이 용으로 쓰였다.
나이가 지긋한 초로의 제논은 이 영롱한 유리구슬을 보고도 별 감흥이 없었지만
에이미는 이것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거나, 한웅큼 햇빛에 비춰보거나 하느라 정신이없었다.
어쨌든, 나는 이 유리알들을 어느 이슬 맺힌 빨간꽃 화분이 있는 교역소에서 스무상자쯤을 샀다.
물론 내가 가진 모든 금액을 사용한다면 더 살 수도 있겠지만 나름의 생각해 둔게 있었다.
값을 치르고, 선원들이 이 동글동글 예쁘고 빛나는것들을 운하로 가까이 끌어온 배로 가져갔다.
연푸르고, 혹은 붉고, 혹은 속에 색을 넣은것들은 아침햇빛속에서 서로 굴절되며 정말로 예쁘게 빛났다.
...
"그로닝겐으로 출항!"
배는 올때와는 다르게 가볍게 나아갔다.
내 계획은 동쪽으로 연이은 도시들을따라 가격이 좋은 물건을 사 모을 예정이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다.
우리가 운하를 빠져나가 바다로 들어설 무렵, 항구로 들어서는 갤리온 선단이 있었다.
그 크고 육중한 갤리온의 흘수선이 한계까지 다다라있었다.
갤리온이 세척, 그리고 무거운 화물.
예전에 도착했어야할 그 네덜란드의 선단인 모양이었다.
아마 내가 어제 비싸게 팔은 금속 재제를 이제서야 늦게 가져온 모양이다.
선단중에 긴 기가 달려 기함임을 알려주는 갤리온이 메인마스트가 부러져있었다.
대체 무슨일인지는 모르나 그것이 이들의 시일을 늦춘모양이었다.
나로서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
어제 사온 물품과 배를 둘러보았다.
바사가 커봤자 그저 조각배 수준밖에 안되기때문에 볼것도 없었다.
돛 하나, 그리고 여러개의 삭구(밧줄이나 사슬 꾸러미), 내부의 작은 창고겸 선실.
구석엔 요리용 간이 화로가 있고, 그 옆으론 물통과 아까 사둔 유리알과 구슬꿰미등이 상자로있다.
"도통 배답지 않아..."
나는 찬장을 열어 에이미가 갈무리해둔 정어리의 작은 어육을 한쪽 뜯어먹었다.
벽에 붙은 작은 찬장안에는 아주 딱딱한- 동그랗거나 네모난 쉽비스켓이 차곡차곡 들어있었다.
근해무역하는 동안엔 이걸 먹을일이 거의없을것이다.
나는 이것을 처음 먹어볼때, 멋모르고 콱 씹었다가 이빨이 부러지는줄 알았기때문에
이것을 대할때는 항상 조심스러워졌다.
그래봤자 항해학교에서 그저 예시로 먹어본게 다지만.
어쨌든 내가 보기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먹는다면 손에 쥐고 어디 단단한 모서리에 내려쳐서
입에 넣을 만큼 부숴 어금니로 깨무는게 나을것같다.
음... 그리곤 작은 소금통, 곡식가루...
쉽비스켓 옆으론 종이봉지에 싼, 이제 슬슬 곪으려고하는 진녹색의 라임몇개가 얌전히 들어있다.
"에이미! 이거 먹어야겠어!"
...
4월 7일, 오후 2시경.
무거운 짐을 벗은 바사는 빠르게 가까운 도시인 그로닝겐에 도착했다.
암스테르담과는 달리 그로닝겐은 소도시기때문에 항구에 정박하고 나서도
한참을 교역소를 찾아야했다.
교역소는 찾기도 힘들뿐아니라 물품의 양도 많지는 않았다.
게다가 물품들의 시세차이가 심하게 났다.
대표적으로 꼽은 물건으로는 향나무열매로 향을 낸 술, 진과 모피, 꿀정도였다.
그나마도 진은 특산품이긴해도 생산량이 많질 못해서 가격이 비쌌고,
모피는 이제 4월인데 가격이 내렸어도 이걸 제값주고 팔지나 미지수다.
결국 작년 작황이 좋아서 꿀의 재고가 많았기때문에 아직 햇 꿀이 나오지 않은 지금도
가격이 평균인 꿀을 조금 샀다.
이것은 비싼 설탕대신 조미료로 많이쓰이니까, 조금은 사는게 좋을것같다.
독특하게도, 열댓병을 산 꿀을 나를때 그동안 전연 밑에 선원들을 시키던 제논이
스스로 나서서 꿀을 날랐다.
그는 자기돈으로 작은 꿀병을 샀다.
그리곤 꿀을 조금찍어 엽궐련을 말때 바르거나 썰은 담배를 담배파이프에 넣을때
엄지손가락에 침을 묻혀 조금씩 축여서 넣곤 했다.
다음도시는 독일의 브레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