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4월 10일, 저녁.
바람이 바뀌고 있었다.
올때 순풍이었던 바람이 내가 머문 사이 바뀌고 있는것이다.
항해사 제논의 말대로 바람은 다시 동풍으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제논과 선원들을 불러들여 내일 출항을 준비하도록 했다.
선원들이 특별하게 고생한것은 없지만 그간 배를 지킨 공로를 인정해
주점에서 술을 조금 마시도록 배려했다.
저녁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저녁식사시간에, 에이미는 우리(...)의 새로운 가족으로서 새끼고양이를 소개했다.
선원들은 파란 베갯잇을 입은 작은 고양이를 보고 실소를 금치못했다.
사실 배에서 동물을 기른다는것 자체가 전혀 문제될것은 없었다.
달걀을 위해 암탉이나 취미 생활로 관상용 조류를 키우기도 하고 개나 고양이는 기본이었다.
그렇지만 이 고양이는 옷 때문에 털이 몸에 붙어 튀어나온 머리와 다리만 도드러지게 보였기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고양이는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옷은 좋든 싫든 감기가 나을동안 계속 입어야했다.
에이미가 그걸 벗겨줄 생각을 안했기때문이다.
...
아침엔 식당에서 진한 육수로 끓여낸 감자수프를 모두 한대접씩 먹었다.
양파와 감자를 가득넣어 만든, 뜨겁고 구수한 수프는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이었고
아직은 쌀쌀한 4월의 아침을 깨우는 원동력이되어 주었다.
이 수프엔 귀한 흑후추도 약간이지만 들어가 있어서, 먹는 사람들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곧 출항하는 함부르크의 마지막 식사였다.
-땡땡땡
종을 울리고 출항했다.
바사는 다시금 묵직하게 출항했다.
그러나 저번에처럼 주괴들만큼 무거운 것은 아니라서 그럭저럭 움직이고 있었다.
선창은 착착 접은 면원단이 차곡차곡 쌓여있고, 그 옆으론 지푸라기를 넣은 나무상자에 은방울꽃 향료가 있다.
안타깝게도, 이 물건들때문에 선원들의 공간이 매우 협소해져서 선장으로서 상당히 부담감을 느끼게했다.
항상느끼는거지만 배만 좀 크면 좋겠다!
배라도 좀 크면 갑판위에 쌓아서 범포라도 덮어놓으면 되는데,
바사는 배가 너무 작아서 그럴 공간도 없다.
게다가 요동도 너무 커서, 그랬다간 당장에 이 낮은 난간을 부수고 바다로 떨어질 것이다.
결국 별다른 방도가 없는것이다.
교대로 쉬는 선원들은, 이 면원단의 틈바구니로 들어가서 향료상자 옆에 해먹에 눕곤했다.
어쩔수 없이, 내 자리도 물품이 찼기때문에 내가 지금 앉은 바닥에도 면원단이 세겹으로 깔려있다.
비록 주괴 종류들은 무거웠지만 부피는 작았고, 이것들은 부피가 대단한 것들이니...
어쨌든 이런 우여곡절에도, 바사는 서쪽을 향해 바람을 타고 나아갔다.
아마도 순풍을 계속 탄다면, 내일 모레 점심때쯤이면 도착할것 같았다.
...
4월 12일 오전.
거친 선원들에게 음식을 시켜봤자 제대로 된 것이 나올리가 없었기때문에
할 수 없이 에이미가 전담하고 있었다.
배가 크다면 전속 요리사가 있지만, 선원수가 별로되지 않으니...
에이미는 그럭저럭 요리에 실력이 있는지라 몇가지 수프종류와 생선요리등을 할줄알았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한가한 사람들은 모두 낚시를 했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고목처럼 가만히있자, 고양이의 갈색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고양이는 거의 다 나아 건강해져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타겟으로 제논을 잡았다.
고양이는 올이 굵은 선원용의 바짓가랑이를 잡더니 발톱으로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제법 빠른속도로 올라간 고양이는 결국 어깨까지 타고 올라갔다.
"하하!"
그 꼴을 보고 내가 웃으니, 제논은 담배 피우던 손을 내려놓곤 담담한 표정으로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고양이는 아랑곳 하지않고 다시 제논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
...
"우왓! 이거 보십시오!"
선원한명의 낚시에 무언가 큰게 걸린 모양이었다.
다른 선원 한명이 그를 도와 줄을 잡고 잡아당겼으나, 반대편에서도 당기는 힘이 매우 강해서
영 만만치 않았다.
한 몇분가량을 실랑이를 하다가, 줄이 중간쯤에서 끊어져버렸다.
명주실의 튼튼한 낚싯줄이었는데도 말이다.
"정어리를 미끼로 했으니, 다랑어종류 일겁니다. 다랑어는 떼로 다니니, 아마 또 잡힐걸요."
곧 다시 신호가 왔다.
굵은 갈대로 만든 찌가 바다 깊은 곳으로 쑤욱 들어가는것을 보니 힘이 대단한 물고기같았다.
"힘을 빼놔야해!"
이번엔 전략을 바꿔서 선원 둘이 붙들고 풀어줬다 나줬다를 반복했다.
10여분가량 그렇게 반복하다보니 선원도 지치고 물고기도 지치는듯 했다.
"교대!"
재빨리 교대한 인원들이 낚싯줄을 잡고 잡아당기니, 아까완 다르게 쉽사리 딸려올라왔다.
"크다! 커!"
바닷물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빠르게 원을그리며 돌다가 결국엔 속절없이 갑판위로 올라왔다.
"얍!"
재빠르게 에이미가 갈고리의 손잡이로 물고기의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켰다.
물고기는 등이 검푸르고 은빛나는 큰 가다랑어였다.
크기만해도 7-80cm는 되어 보였는데, 크기에 비해 힘이 아주 대단한 물고기였다.
가다랑어는 곧 제논이 익숙한 칼질로 금새 내장이 꺼내지고 뼈가 발라내졌다.
그리고 고양이 '양배추'는 에이미에 의해 이 신선한 붉은 살코기를 제일 처음 먹는 영광을 얻었다.
"오- 먹어도 되는 물고기였군."
고양이가 어금니로 큰 덩어리의 한쪽 귀퉁이를 잘근잘근 씹어대자 제논이 우스겟소리를 한다.
사람보다 고양이가 먼저먹는걸보고 독이 들었나 확인시키기라도 했다는것 처럼말이다.
어쨌든 이 큰 가다랑어는 얇게 포가 뜨여져서 바구니에 담겨 말려지게되었다.
촉촉한 고깃덩이는 맑은 날 햇볕아래 반나절 만에 말라버렸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씩 주워먹었다.
물론 고양이는 에이미가 정성스레 찢어 입에 넣어주었다.
"맛있지? 응?"
그러면 고양이는 눈을 꼭 감고 맛을 음미하듯 짭짭대며 먹는것이다.
"저놈의 고양이!"
"선장님, 이렇게 귀여운데..."
나로서도 그녀가 고양이때문에 일을 소홀히 하는건 아니니 애교로 넘어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