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고양이
4월 9일 밤.
작은 고양이는 벽난로 앞에서도 계속해서 오들오들 떨었다.
이미 에이미가 수건으로 잘 닦아주었음에도.
털이 성긴 고양이는 불의 온기에 뿌숭뿌숭 털이 부풀어 올랐다.
이 작은 고양이는 발과 턱이 하얗고 갈색 줄무늬가 있는 전형적인 노란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주점주인에게 얻어온 우유를 겨우 조금 먹었을뿐이었다.
아마도 계속해서 오랫동안 쇠약해져있었고 비도 맞은 탓이리라.
"선장님, 이 고양이 키워요. 네?"
"..."
나는 동물을 키운다는거 자체가 익숙치 않았기때문에 조금 뜸을 들였다.
아니 뭐, 배에 붉은게가 한마리 사는건 열외로 치자.
"고양이는 쥐도 잘 잡잖아요. 많이 먹지도 않고."
"그래, 그럼."
차마 에이미의 눈빛을 거절할 수는 없고, 이걸 어디다 맡기거나 죽게 놔둘수도 없는지라
나는 그만 승락하고 말았다.
"꺄! 감사합니다!"
...
4월 10일, 아침.
나는 이 노란 고양이가 당장 죽더라도 이상할게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고양이는 계속해서 덜덜 떨었다.
이따끔 재채기를 하는데, 그것마저도 너무너무 기운없이 했기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고양이는 밤을 무사히 넘기고 살아남았다.
아마도 감기가 심하게 든 모양인데, 내가 의사도 아니고 수의사도 아니지만
고양이가 콧물을 흘리고 덜덜떠는걸로봐선 그런것 같았다.
고양이는 밤새 에이미의 침대의 머리맡에있었는데, 에이미가 그걸 안고
내려오는걸 본 여관주인의 표정이 영 좋아보이지 않았다.
에이미는 이른아침부터 내가 자고있는 동안 서투르게 이 작은 고양이...
"이름이 뭐라고?"
"양배추요."
"맙소사... 그 많고 많은 이름중에 양배추라니..."
어쨌든 에이미는 이 고양이의 옷을 서투르게나마 만들어 입혔다.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고양이는 떠는것이 좀 사그라든것 같았다.
"이거... 익숙한 재질인데..."
고양이의 옷을 만든 재질은 알고보니 베갯잇이었다.
에이미는 자신의 여분의 푸른빛이 도는 베갯잇을 서투르게 꿰매고, 머리부분과 다리부분에 구멍을 내어
옷 비슷하게 만들었다.
고양이는 그래도 좀 뭘 먹고 쉬어서 그런지 어제 보단 확실히 건강해보였다.
어제의 비에 젖고 어두컴컴한 벽난로앞에서 본 거랑 햇빛아래서 본거랑 차이도 있겠지만.
"먹어봐. 이거."
양배추라고 자신이 발견된 곳의 이름을 딴 고양이는 에이미의 무릎에 앉아
지진 대구의 하얀살을 주는대로 받아먹었다.
에이미가 말한 '고양이는 많이 먹지도 않잖아요.' 라는 말과는 다르게 한도 끝도 없이 먹었다!
발라내어 준 살을 죄다 먹고는 약간의 우유도 찻잔받침에 따라주는것을 핥았다.
그리곤 베갯잇의 푸른옷을 입고 에이미의 품에안겨 시장을 따라나왔다.
...
우리는 독일의 시장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순무들, 생선과 고기들... 많은 사람이 오가고 시끄러웠지만
런던과 다르게 꽤 깨끗했다는것이 놀라웠다.
에이미와 나는 저장이 가능한 염장 돼지고기와 훈제한 햄등을 샀다.
이것은 배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것으로, 배에 일꾼을 시켜 가져다 놓게 했다.
사람들은 이따끔 지나갈때 푸른옷의 노란고양이를 보곤 했으나
다들 그저 '에이미가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는구나'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 다행이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저기 상품을 찾던차에 향품가게에 들렸다가 괜찮은 것을 찾아냈다.
그것은 정제한 라드(돼지기름)에 은방울꽃의 향기를 담은 향료였다.
수백송이의 은방울꽃이 이 라드 한방울에 향기를 담아 낸 것으로, 이것을 만드는 공정을 듣고나니
이것이 비싼것이 이해가 간다.
게다가 이것은 함부르크의 특산으로 다른곳에서 취급하지 않는 상품이었다.
이 고아한 향기를 내는 향료는, 작은 유리병에 담겨 마개를 꼭 닫았음에도 그 향을 은은하게 풍겼다.
상당히 마음에 드는 물건이었다.
아마도 지체높은 귀부인이나 점잖은 신사들이 쓸듯한 고가품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가격이었다.
제조공정이 어렵고, 특산품이라는것이 맞물려 있었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은방울꽃의 채취시기는 5월부터였고 이제 이 묵은것을 팔아야할때였다.
곧 햇것을 찾는 사람이 많아질테고, 묵은것은 당연히 가격이 떨어진다.
"가게엔 스무상자가 있습니다."
"45상자 사려고 합니다. 좀 더 싸게 안되나요?"
가게 주인은 내가 영국인인걸 알고 일부러 쉬운 단어로, 천천히 말했다.
"가격은 좀 깍기가..."
"어차피 재고 정리할것 아닌가요. 싸게 해주시죠. 가게의 것 다 사고, 더 있으면 더 살텐데."
"그렇다면."
나는 발주서를 한장 써주었고, 주인은 교역소로 발주서를 보내 스물다섯 상자가 더 필요하다고 알렸다.
결국 나는 총 45상자를 80%가량으로 싸게 살 수 있었다.
자금의 절반가량이 날아가버렸지만, 배에는 은방울꽃의 향료와 면원단이 가득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