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02-

사내는 금색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털 장식이 된 망토를 두른 사내는 딱딱하고 차가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사내는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멀리, 솟아있는 종탑이 보인다.

여기서 봐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지금 종탑은 무너지고 있었다. 종탑을 기어오르고 있는 하얀 물체도 보였다.

 

"-쯧."

 

짧게 혀를 찬 사내는 시선을 돌렸다. 그의 앞에는 젊은 기사가 서 있었다. 젊은 기사는 무언가 불만에 가득한 표정이었다. 사내는 못마땅하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가 용병단에게 발리스타를 차출해주지 않은것에 문제라도 있나?"

"-용병단에게 발리스타를 차출해 주었다면 지금쯤 상황이 정리되었을 겁니다."

 

놀랍게도, 기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언뜻 보기에 준수한 외모의 청년이라고 생각될 법한 기사는 실은 여성이었던 것이다. 짧게 자른 머리와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그녀의 성별을 분간하기 힘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내는 살짝 한 숨을 쉬었다. 그리고 기사를 향해 말했다.

 

"내가 누누이 말했을 터다, 드윈. 기사단은 법황청의 검이여, 검에게 의지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루더렉 님."

"그만. 네가 기사단장님의 부관이라고 해서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건......"

 

드윈이라 불린 여기사는 무언가 말을 꺼내려 했지만 사내, 루더렉은 손을 들어 그를 가볍게 저지했다. 그리고 단호한 눈빛으로 드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과 마주한 드윈은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기사단의 부단장인 루더렉은 기사단장 카단을 제외하면 기사단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자다. 드윈의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루더렉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은 자명했다.

 

"물러가라."

 

잠시 드윈을 바라보던 루더렉의 입에서 축객령이 떨어졌다. 드윈은 여전히 시선을 떨군채 예를 취하고 루더렉의 방에서 물러났다. 왕국기사단 사무실이 위치한 탑의 꼭대기에 위치한 루더렉의 집무실은 집무실에서 멀리까지 보인다는 이유로 루더렉이 직접 고른 곳이었다.

드윈은 한숨을 내쉬며 탑을 걸어내려갔다. 한참을 걸어내려 가던 도중, 드윈은 계단을 급하게 걸어올라오는 한 병사와 마주쳤다.

병사는 드윈을 보자마자 급하게 예를 취했다.

 

"아, 드윈 님. 고생하십니다."

"음. 무슨 일인가, 병사."

 

드윈은 손을 들어 병사의 예를 받아주고 물었다. 다급해 보이는 모습에 호기심이 동한 탓이었다.

 

"정문 쪽에서 일이 좀 생겼습니다."

"정문? 누가 습격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아, 아닙니다. 습격, 까지는 아니지만 저희만으로 처리하기에는 조금 곤란한 상황이라 루더렉 님께 보고를 드리러 가는 중입니다."

 

병사의 대답에 드윈의 한 쪽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대체 어떤 보고 체계가 병사가 바로 부단장에게 보고하도록 되어 있단 말인가? 일단 병사가 소속된 곳의 대장을 거치고, 부관을 거쳐 부단장에게 올라가는 것이 순서가 아니던가?

그러한 생각이 여실히 표정에 드러났는지, 병사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이, 이러한 보고 체계는 루더렉님이 직접 명하신 일입니다. 정문 경비대와 선착장 경비대는 곧바로 보고를 올리라고 하셨습니다. 직접 판단하시겠다고, 사소한 일이라도 빼놓지 말라고......"

 

병사의 말에 드윈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러한 것이라면 자신이 관여할 필요는 없었다. 드윈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병사 올라갈 수 있도록 한쪽으로 비켜서주었다.

 

"고생하십시오, 드윈 님."

 

예를 올린 병사는 발걸음을 서둘러 계단을 올라갔다. 절그럭 거리는 갑옷 소리가 멀어져가고 드윈은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나 그 걸음이 향하는 곳은 애초의 목적지였던 그녀의 집무실이 아니었다.

사건이 일어난 정문. 왠지 모르게 드윈은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