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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하반x이세트] 사막 모래 장미. 002

아이콘 소다맛밀키스
조회: 983
2015-08-23 21:58:37
- 매 회 앞부분은 현실에서 부활한 이세트의 시점을, 두번째 부분은 과거의 이세트의 시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

수천년의 세월은 나의 기억을 조각내고 박살내기 충분했다. 어느 것 하나도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희미한 기억의 흔적을 더듬어 보고 있노라면 떠오르는 것들은 작열하는 태양과 사막의 타는 듯한 열기, 한때 내가 아버지라 불렀던 남자의 불호령, 그리고 그리움이 가득 묻어나는 이름 하나 뿐이었다.

하반.

그의 이름도 기억난다. 그의 모습도, 다정했던 목소리도 어렴풋이 기억의 한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단편적인 한 장면에 불과할 뿐, 날카롭게 잘려나간 기억 앞에서 나는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어째서,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이토록 그대를 그리고 있는데, 어째서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아직 저릿한 기운이 남아 있는 두 다리를 이끌고 비틀거리며 어두운 묘실을 빠져나왔다.

*

"태양신의 무녀가 된다는 것은, 신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오른다는 뜻입니다. 긍지를 가지세요."

하얀 옷의 남자가 나의 손을 잡고 어두침침한 복도를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큰 키와 얼굴을 가린 베일 때문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버지와는 달리 그의 목소리에서 위압적이고 강압적인 느낌은 묻어나지 않아 조금이나마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애써 용기를 내어 그에게 물었다.

"무녀가 되면... 전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열 여덟 살이 되시기 전까지는 신탁을 받기 위한 수련을 합니다. 지금까지는 공주님께서 훌륭한 여왕이 되시기 위한 공부를 하신 것이라면, 이제부터는 훌륭한 무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이지요."

"어떤 공부를 하나요?"

"아직은 공주님께서 어린 나이이시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은 것부터 차근 차근 할 예정입니다. 경전이나 예언에 대한 공부를 비롯해서 별의 움직임을 읽는 법, 신탁에서 의미하는 상징성을 해석하는 방법도 배우지요."

새로운 것에 대해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던 나는 그 말을 듣자 조금 안심이 되었다. 무녀가 되면 적어도 배우는 즐거움은 잃지 않을 수 있겠구나. 하지만 책에서 읽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태양신의 무녀는 한평생을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보낸다. 외로움이 싫었던 나는 이 말이 계속해서 머릿 속에서 맴돌아 한번 더 입을 열었다.

"태양신의 무녀는 평생을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보낸다고 들었어요."

하얀 옷의 남자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괜한 것을 물어본 것일까 하여 사과의 말을 올리려 했지만, 그 순간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왜 그런거죠?"

"태양신의 무녀가 되면 공주님의 가족이신 아버님을 비롯해 작은 어머님들과 앞으로 태어나실 동생들을 자주 만날 기회가 없습니다. 국가의 중대사때나 축제 기간에는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신전에서 신관들과 있어야 하지요. 또 무녀가 되면 혼인할 수 없습니다. 태양신의 무녀는 항상 순결해야 한다는 것이 신의 계명 중 하나이니까요. 하지만 무녀는 고결한 존재인만큼 만 백성에게 사랑받고 떠받들어지는 법입니다. 축제 기간 동안 왕께서 행차를 할 때 태양신의 무녀도 동행하게 되는데, 무녀에게 쏟아지는 칭송과 찬사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지요.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될 터인데 어째서 외롭겠습니까?"

만 백성에게 사랑받는 대신 가족과 연인에게 사랑받지는 못한다라... 무서운 아버지와 쌀쌀맞은 작은 어머니를 떠올린다면 차라리 신전에 혼자 있는 것이 낫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태어나게 될 동생은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친해져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반대로 동생이 엄청난 말썽꾸러기라면 차라리 떨어져 지내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결혼이라... 나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의 형체와 아버지를 떠올렸다. 내가 짐작컨대 두 분은 서로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책 속 남녀 주인공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을 하지만, 대부분의 왕위 계승자는 선대 왕이나 여왕이 정해준 상대와 정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왕위 계승자로 남았더라면, 나는 아버지가 골라주신 사람과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유모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 중에는, '공주님은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나는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를 나이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 아버지가 골라주신 사람과 사느니 혼자 남는 것이 나을 것이다.

"...어려운 이야기지만, 알 것 같아요."

"공주님께서도 차차 이해해 나가실 겁니다. 공주님께서 고결하고 훌륭한 무녀가 되실 수 있도록 제가 항상 곁에서 보살펴드리죠."

하얀 옷의 남자가 나의 어깨를 다독였다. 다정함이 묻어나는 그 손짓에 나는 배시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남자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런데, 아저씨... 아니, 사제님은 이름이 뭐에요?"

"알테론이라고 합니다. 이 신전의 제사장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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