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롤챔스 보면 노잼스, 노잼 메타, 수면제 메타 등 단조롭고 늘어지는 경기 양상에 비판을 보내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물론 필자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원인은 무엇일까. 간단하게, 지난 봄의 직스, 룰루, 오리아나, 르블랑 등의 '대 성배 시대'가 열린 이래로 정착된 한국 특유의 안전제일 주의가 손에 꼽힌다.
오브젝트, 그 중에서도 용과 타워 관리가 프로단계에서 핵심 운영법이 된 이래로 미드에 서는 챔피언은 라인 유지 능력과 라인 클리어 능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강력한 타워를 끼고 상대가 타워를 건들지 못하게 수비하면서 타워를 중심으로 미니언을 받아먹으며 시야 장악을 해가는 형태의 운영이 가장 효율적이라는게 증명된 이래로 공격지향 적인 픽, 대표적으로 예전 페이커의 데파 르블랑 같은 "우리 둘다 CS 먹지 말자" 라고 외치는 전투와 킬 위주의 픽은 거의 사장되버린 것이다.
안전한 픽은 무난하기 때문에 해설자들도 '변수만 없으면 유리하다' 라는 소리를 하게 된다. 보다 변수를 만드는, 대세가 아닌 조합은 '변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불리하다' 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결국 승리가 가장 중요한 프로단계에서는 가장 안전한 픽을 고를 수 밖에 없다. '이론적으로' 가장 승률이 높으니까.
내 제안은 이렇다. 아주 오래전, 샤이가 제이스하고 PDD 자크하던 시절에, 포킹조합>장판조합>돌진조합>포킹조합 이라는 구도의 밴픽이 만들어졌던 것 처럼, 서로 물고 물리는, 포켓몬스터의 풀>물>불>풀 같이 가위바위보 싸움이 되게끔 안전 지향 픽의 카운터 조합을 만들어주자.
스타크래프트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초반 빌드오더, 특히 저저전에서의 빌드오더 싸움은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것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된다.
저저전에서의 빌드 오더는 12풀 같은 변칙 빌드를 제외하고 대표적으로 세 가지가 있는데, 9드론, 9오버풀, 12앞마당이 그것이다.
간단하게, 9드론은 조금 더 가난하더라도 스포닝풀을 빨리 올리는 공격지향적인 빌드오더다.(가위)
9오버풀은 어떤 빌드오더든 가장 무난하게 상대할 수 있는 수비지향적인 빌드오더며(바위)
12앞마당은 상대의 공격을 '배제'하고 배를 불리는, 배제형 빌드오더다.(보)
그럼 이 빌드간의 상성은 어떻게 될까?
9드론은 9오버풀에게 잡아먹힌다. 9오버풀보다 가난한데도, 9오버풀의 방어를 뚫을 수 없다.
9오버풀은 12앞마당에게 불리하다. 상대가 배를 불렸지만 그걸 지켜만 봐야하기 때문이다.
12앞마당은 9드론에게 깨진다. 상대가 공격을 왔을 때 막을 수 있는 병력이 없다.
간단하게 이런거다. 공격>배제>수비>공격.
그럼 여기서 현재의 주류픽을 이 빌드오더에 대입하자면 무엇일까? 수비다. 공격지향적인 픽을 잡아먹는다.
그런데 현재 롤에는, '배제'라는 개념이 없다. 그것이 문제이다. 공격지향적인 픽을 잡아먹는 수비적인 픽은 있는데, 수비적인 픽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극단적으로 예시를 들자면,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에 했던 하나빼기를 하는데, 상대와 나 모두 보자기는 없고 가위와 바위밖에 내지 못하는 상태라는 거다. 서로가 가위와 바위만을 들고 있는데 가위를 내는 건 멍청한 짓이다. 결국 둘은 주먹을 내고, 비기기만 하는 것이다. 이게 현재의 롤챔스다.
그러니, 나는 여기서 '보자기'를 서로에게 쥐어주면 어떨까 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세 가지 형태의 서로 다른 지향점을 지닌, 각 성향에 특화된 패시브를 고르게 한다던가.
공격형의 경우 킬에 좀더 보너스를 주고 예전 저항 공성기 마냥 타워를 잠시 멈추게 한다거나.
수비형의 경우 수비가 더욱 쉽도록 미니언에게 가하는 데미지를 늘려준다거나, 포탑의 성능을 향상시켜 준다거나.
배제형의 경우 아무런 보너스도 없지만 오랫동안 데스가 없거나 타워를 지킨다거나 공격을 받지 않을 경우 자연스럽게 유리해지도록 추가 보너스를 준다거나.
* (나는 게임 디자이너가 아니기 때문에, 물론 실제로 위에서 말한 것 처럼 패치가 된다면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것이다.
내가 제안한 건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며 물고 물리는 밴픽 구도를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일종의 큰 틀의 아이디어라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이런 방향의 패치가 이루어 진다면, 지금처럼 나오던 챔피언만 주로 나오는 그런 뻔한 밴픽싸움은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