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ORPG에 대한 토픽이 상단에 올라와 있길래...
평소 펼치던 지론을 다시 한번 써둘까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MMORPG를 즐긴다하시는 분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영웅놀이를 좋아하시는 분들과
모험을 즐기시는 분들이죠.
전자의 경우에는 국산 MMORPG가 딱 맞아 떨어질 테고,
후자의 경우에는 국산 MMORPG의 변혁을 바라게 되십니다.
사실 제가 평소 이 곳에다 남기는
MMORPG는 RPG 본연의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라고 하는 부분도
위에서 언급한 후자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죠.
지금의 MMORPG에 감히 RPG라고 붙이는 것부터가 좀 거북스럽습니다.
전혀 RPG가 아닌데 왜 굳이 MMORPG라고 하는 것인지...
레벨이 있고, 아이템이 있고, 스킬이 있으면 MMORPG다라는 식인데...
음... 꽤 오래전에도 이런 글을 썼던 기억이 나는데
저런 게 RPG의 요소라면 맞고도 RPG, CCR의 포트리스도 RPG입니다.
RPG라는 것은 한마디로 그 게임 안의 일원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역할극입니다.
뭐... MMORPG 시대에 들어 MMORPG만 해오신 분들에게는
굳이 알 필요도 없는 RPG의 의미겠지만요.
사실 재미있는 게 MMORPG의 변혁을 바라시는 분들 상당히 많은데요.
그 분들이 여지껏 국산 MMORPG에서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아이디어라고 꺼내드시는 거?
그런 거 제가 이미 2000년대 초반에 다 해봤던 것들이라는 게 우습죠.
MMORPG에서 모험적인 요소, 즉 PC가 NPC화 되는 듯 녹아들어가는 느낌이 사라진 것은
"게임은 상업 상품이다."라는 개념이 대기업들에 의해 확고해졌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재미보다는 더 많은 유저를 게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난이도의 장벽을 확 낮추었던 것이죠.
그러면서 퀘스트도 그냥 단순 노동이 되어 버리고,
레벨링 자체도 반복적인 노동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실 게임의 재미로 따지자면 RPG를 원래부터 좋아하던 유저들은
지도 한 장 없이 덩그러니 세계에 떨어져
이 세계에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NPC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내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정한 뒤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걸 좋아합니다.
하지만, RPG가 뭔지도 모르는 상당수의 유저들은
그런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죠. "뭘 하라는 거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퀘스트 가이드 시스템들이고,
MMORPG라면서 정작 RPG를 즐기는 유저들은 등을 돌리게 한 것이죠.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국산, 외산 구분해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나오는 외산 MMORPG도 단지 돈을 더 벌기 위해
유저 편의라는 명목으로 RPG임을 포기하고 있으니까요.
현장의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MMORPG와 RPG는
전혀 다른 장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올 정도이니...
MMORPG가 얼마나 RPG임을 거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합니다.
MMORPG 중에 RPG라고 할 수 있는 게임이
국산과 외산 다 합해 몇 개나 될까요?
아마 열 손가락도 다 못 채울 겁니다.
유저 편의, 진입 장벽 완화...
이 두 가지의 기치 아래 더 이상의 RPG인 MMORPG는 나오지 못할 겁니다.
유저들은 단순 명료하게 무얼 해야하는지 가르쳐 주길 바라고,
또 그 길이 틀림 없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모험을 하는 RPG가 그리우시다면,
돈 모아서 직접 게임을 만들거나
그냥 저처럼 고전 게임들이나 뒤적거리는 게 나을 겁니다.
이제 이런 이슈는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