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생각나기도 하고 해서 좀 길게 써봤습니다. 앞으로는 음슴체로 쓰겠습니다.
1. 서론
인벤 역게 글 중 실바나스의 트레일러 대사에 대한 의미를 추측하는 글이 올라왔고, 이 글에서는 이전 확장팩에서의 얼라/호드 연합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강해지는 법을 잊었다는 해석이 받아들여짐(글 링크 :
http://www.inven.co.kr/board/wow/1054/35572). 하지만 실제로 그런가? 라는 생각을 해봤을 때, 여전히 납득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에 대한 이유를 적어보자 함.
2. 얼라와 호드의 '강해지는 법'
1) 판다리아의 교훈
판다리아 스토리 마지막을 보면 래시온이 바리안 왕이 호드를 마무리짓지 못한 것에 대한 불평을 토로하고, 이에 장막의 여관 판다렌 통이 얼라 및 호드가 상호 존재하면서 경쟁하고 이 과정에서 강해지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음(참고 링크 :
http://www.inven.co.kr/board/wow/1054/35569). 이는 어느 한쪽 세력이 일방적으로 아제로스를 점령하는 것 보다, 얼라와 호드가 상호 견제와 균형 속에서 서로의 힘을 강하게 키워가고 있음에 대한 표현이었고, 판다리아 확장팩 스토리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였던 "균형"을 드러내는 스토리라고 볼 수 있음. 즉, 가장 중요한 것은 양 측이 모두 "존재"하고, "공존"하며, 때로는 서로 "경쟁"하는 균형 상태에서 서로의 힘이 강해진다는 것임. 이는 일방적으로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없앤다는 것 또는 그런 시나리오를 짜는 것과 전혀 다른 것임.
2) 드레노어의 전쟁군주
드군 초반은 카드가와 얼/호 연합군을 중심으로 강철 호드를 막아내는 흐름으로 전개됨. 그리고 이는 쭉 이어져 심지어 마지막 아키몬드를 죽이고 난 후에는 강철호드와 드레나이의 평화 및 공존을 시사하는 형식으로 스토리를 마무리지음. 물론 그롬공주님부터 해서 별별 욕먹는 전개가 하도 많았고 실제로 욕할 만 했지만, 어쨌든 드군 스토리만큼은 얼/호의 연합에 초점을 둔 것은 분명함. 그래서인지 이후 격아 스토리 중 하나인 호드의 마그하르 영입에서 빛의 힘에 광신도가 되어버린 드레나이와 몇몇 오크, 그리고 이로 인하여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늙은 그롬의 모습까지 나오는 것은 이러한 연합이 깨지는 것을 시사한다는 데 의의가 있음.
3) 군단
군단 또한 얼/호 연합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 얼/호 연합의 측면은 굉장히 얕았음. 그 이유로
첫째, 군단을 막는 것에서 얼/호 연합이 구성된 것은 스토리 맨 첫단계인 부서진 섬의 악마를 막는 부분밖에 없고
둘째, 스톰하임에서의 언데드와 늑인의 극에 이르는 갈등이 계속 존재하였으며,
셋째, 이후 군단을 막는 스토리는 주로 일리단과 악마사냥꾼, 아르거스에서 탈출하고 이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던 드레나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플레이어를 기준으로 했을 때 플레이어의 '직업'에 기초한 "연맹"이라는 세 조직을 중심으로 돌아갔음. 사실상 군단을 막는 데 얼/호 연합은 초반 빼고는 전혀 그 역할을 하지 못했음.
정리하자면, 판다리아에서 얼라와 호드의 경쟁이 그들을 강해지게 끔 하는 원동력임을 드러냈고, 드군 때는 확실히 경쟁이 아닌 공동의 적(강철호드)를 막기 위한 연합의 측면이 강했으며, 군단은 이와 관련된 제 3세력과 직업 연맹 중심으로 일어났지 얼/호 연합은 드러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얕고 국지적인 수준의 갈등은 지속되었음.
3. 실바나스의 '강해지는 법'과 판다리아의 교훈
만약 실바나스의 강해지는 법이 얼라와 호드의 경쟁이 사라져서 그로 인하여 이것을 잊었다라고 얘기하려면, 적어도 드군~군단 시점에서 강한 하나의 얼/호 연합 세력이 존재해야 함. 하지만 두 확장팩 모두 그렇게 강한 하나의 연합 세력이 존재했다고 볼 수는 없음. 그저 카드가를 중심으로 한 원정 세력, 또는 군단과의 대결에 집중하고 있는 조직들에 의해 이루어졌지 어디에도 얼라/호드가 강하고 지속적인 공동조직을 구성하지는 않았음. 딱 한번, 군단 초기에 그랬으나 그 또한 금방 깨져버리고 맘.
또한 실바나스의 '강해지는 법'이 얼라와 호드의 견제와 균형에 의한 성장, 즉 판다리아의 교훈과 같은 성장이라면 실바나스가 얘기한, 다르나서스를 태워버리거나 얼라이언스를 파괴하는 것과 맞지 않음("좋은 전쟁" 8~14페이지). 얼라/호드의 경쟁에 의한 균형은 판다리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쪽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 그것 때문에 가로쉬가 폐위되었고, 그것 때문에 바리안이 호드의 새 대족장으로 볼진이 추대되는 것을 보고 그저 군사를 물렸던 것임.
4. 그렇다면 실바나스의 '강해지는 법'은 무엇인가?
결국 위의 관점에서 본다면, 실바나스의 '강해지는 법'은 판다리아의 교훈과 전혀 다른 맥락임. 필요한 충돌과 필요한 갈등은 강해지는 데 도움을 주지만, 한쪽이 완전히 없어지도록 만들기 위한 전략을 짜고 침공을 벌이며 전쟁을 하는 것은 판다리아의 교훈과 맥을 같이 하지 않음. 물론 "그렇다면 필요한 충돌과 갈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선뜻 대답할 수 없음. 어디까지가 서로가 강해지기 위한 갈등 수준인가에 대한 질문은 굉장히 어려운 것임은 분명함. 그럼에도 지금 실바나스가 시작한 전쟁은, 다시한번 강조하자면 판다리아의 교훈과는 다른 길임.
사실 실바나스의 트레일러 대사를 보면 답은 나옴. 전체 대사는 다음과 같음:
"우리는 증오의 굴레에 갇혔다. 어제의 아군도 오늘의 적이 된다. 이 세계를 나눠 가진 대가를 치뤘고, 그렇게 강해지는 법을 잊었다."
실바나스의 관점에서 얼라와 호드가 서로를 양분하고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약하다는 시각임. 즉, 실바나스는 이러한 양분에 의한 견제와 균형, 갈등이 오히려 약해지는 이유라고 보고 있음. 즉, 실바나스는 래시온, 가로쉬 등과 같이 하나로의 통합이 강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임. 더 나아가
실바나스의 '강해지는 법'은 실바나스가 죽은 자이고, 죽은 자의 관점에서 사고한다고 생각하면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음. 사실 실바나스의 강해지는 법은 어찌 보면 아서스의 관점과 같을 수 있음. 결국 살아있는 자들, 다양한 감정과 유한한 삶을 살수밖에 없는 육신을 가진 존재들은 절대 강해질 수 없음. 그렇기 때문에 사울팽의 "명예"를 비난했고, 아군 호드를 해골로 일으키는 데 아무 죄책감도 없으며, 나머지 두 윈드러너 자매가 죽음으로서 자신을 섬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함. 이러한 시각을 강화시키는 추론이 아서스와 같이 등장하거나 오마주되는 장면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임(참고 링크 : http://www.inven.co.kr/board/wow/1054/35479?p=3).
또한 증오의 굴레에 갇혔다거나, 어제의 아군도 오늘의 적이 된다는 표현은 얼/호 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 결국 깨진다는 시각으로 보면 안됨. 왜냐하면 증오의 굴레에 가둔 것도, 그것을 을 깬 것도 본인이기 때문. 즉, 이것은 누구든지 언제나 적이 될 수 있다는 시각으로 봐야 함. 그리고 영원한 아군은, 자신을 섬기는 죽은 시체들일 뿐.
5. 결론
실바나스는 단언컨데, 전혀 판다리아의 교훈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음. 실바나스는 그저 죽은 자들로서 하나로 통합된 것만이 강함 그리고 옳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음. 아서스가 공허에 맞서기 위해 그러하였듯이, 실바나스 또한 그러한 길만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농후함. 물론 호드에는 살아있는 자들(오크, 트롤, 고블린, 블엘 등등...)이 존재하지만, 결국 실바나스 입장에서 이들은 그러한 자신의 길로 가기 위한 수단이자 소모품일 뿐임. 그리고 실바나스가 이야기하는 호드는, 결국 그 방향만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 그렇기에 그 이후의 호드의 운명은, 결국 호드의 살아있는 자들에 의해 진행될 가능성이 높음. 노병 시네마틱에서 볼 수 있었듯이, 살기 위해서,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그 살아남는다는 것은, 호드라는 진영의 생존 뿐만이 아닌 죽음에 맞서 살아남는 것 또한 내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