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넥슨의 보폭은 크고도 넓었다.
숫자가 이를 증명했다.
12월 초, 넥슨의 시가총액은 29조 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4분기를 제외한 세 분기의 매출이 다 합쳐 3,683억 엔. 환율을 보수적으로 잡아도 한화로 약 3조 3,400억 원에 달한다. 4분기 매출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연 매출 최종값이 결정되겠지만, 지난 세 분기의 평균 정도만 나와도 4조 원은 가뿐히 넘어선다. 상징적 숫자라 할 수 있는 '5조 원'이 가시권에 들어온 셈이다.
그리고, '콘텐츠 사업'이라는 분야에서 매출 5조 원을 달성한 기업은 사실상 CJ ENM 하나 정도다. 세계에서 이름을 알리는 주요 엔터사도 그 정도는 넘지 못했으, 카카오 그룹은 콘텐츠 외 사업 부분까지 연결 매출로 잡아야 5조 원을 넘어선다.
'3N'으로 묶였던 게임 산업 공룡들과 비교해도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은 연 매출 3조 원을 넘어선 적이 없었다. 넥슨이 현재 밟고 있는 영역은, 국내 게임 개발사에게는 미답지(未踏地)라는 뜻이다.

짚고 넘어갈 점은, 이 전무후무한 돌진이 그냥 '될 만 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살짝 주춤했었지만, 최근 몇 년 간 넥슨은 꾸준히 연 매출을 경신했다. 그리고, 통념상 '황금기'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이 시점에, 넥슨은 체질 개선을 단행했다. 뭔가가 안 풀리거나, 수익 구조가 막혔을 때나 고려할 방향성의 재설정을, 가장 찬란하게 빛난다 여기는 순간에 실행해 버린 것이다.
2024년 9월에 진행된 넥슨 일본 법인의 CMB(Capital Markets Briefing)에서, 넥슨은 그 방향을 발표했다. '종적 확장(Vertical Expansion)'과 '횡적 확장(Horizontal Expansion)'의 병행. 이를 통해 2027년까지 매출 7,500 엔을 달성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 방향성이 지난 1년 간 어떤 형태로 전개되었고, 2025년 한 해 넥슨이 어떤 유, 무형의 가치들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해 하나씩 풀어내볼까 한다.
'종(縱)적 성장' - 중국, 그리고 라이브 서비스

넥슨이 설명한 '종적 성장'은 기존 핵심 IP인 '던전앤파이터'나 '메이플스토리' 등의 플랫폼, 장르, 지역을 확장해나가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내는 개념이다. 흔히 대치되는 개념인 '안정'과 '도전' 중 하나에 대입하면 '안정'을 더 강조하는 방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종적 성장'에서 가장 대표되는 사례가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이다. 2012년, 동시 접속자 3백만 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던 던전앤파이터 IP의 힘을 그대로 물려받은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은 2024년 5월 서비스를 시작해 기록적인 흥행을 올렸다. 센서타워의 조사에 따르면 첫 달 매출이 한화 약 3,700억 원에 육박했으며, 2024년 한 해에만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의 누적 매출이 약 3조 원을 넘어섰다는 분석도 나왔다.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의 중국 진출 효과는 2025년 1분기까지 이어졌는데, 올해 1분기 중국 매출은 총 매출의 33%에 달한다. 이후 매출이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국내 매출 비중이 다소 올라가긴 했지만, 여전히 인기 IP로 다시 문을 두드렸을 때,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그런가 하면, 기존 게임의 라이브 서비스 역량도 강화되었다. 이미 서비스 20년을 넘긴 '메이플스토리'는 3분기에 프랜차이즈 매출에서 전년 동기 대비 61%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역시 기존 IP를 계승해 만들어진 '마비노기 모바일'은 올해 3월 출시해 10월까지 약 3천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넥슨의 든든한 썰매견이 되어 주었다.

기업 성장의 모범적인 사례가 '잘하던 것 잘하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임을 생각하면, 기존 잘하던 것도 기대 이상으로 잘 해냈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기존 IP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넥슨의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후술할 '퍼스트 버서커: 카잔'의 뒤를 잇는 던전앤파이터 IP의 '프로젝트 오버킬'과 '던전앤파이터: 아라드'가 개발되고 있으며, 마비노기 영웅전의 IP를 활용한 '빈딕투스: 디파잉 페이트'도 앞선 공개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기대감을 고조하고 있다.
'횡(橫)적 성장' - 끊임없는 발굴과 시도

최근 몇 년 간, 넥슨에 대한 게이머층의 여론은 계속해서 바뀌었다. 물론, 게이머층도 여러 형태로 분류가 가능할 만큼 다양하기에 모두의 총의라 보긴 어렵겠지만, 이 모두를 아우르는 거대한 흐름은 분명 존재한다. 10년 전을 기준으로 보면, 넥슨 관련 기사에 달리는 댓글은 다소 부정적인 향이 짙었다. '돈슨'이라는 멸칭이 가장 널리 사용되던 시기가 201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넥슨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호전되었는데, 이를 적절히 정리하면 '아직 미운 구석이 있지만, 이렇게 여러 가지 게임 출시를 계속 시도하는 곳은 넥슨 뿐이다'라는 문장으로 나타낼 수 있다. 2022년 화려하게 등장한 '데이브 더 다이버'가 기수가 되어 이미지 재고에 기여한 점도 있지만, 주된 이유는 넥슨의 사업 개척 방향 중 하나가 새로운 IP를 만들거나 발굴해내면서 포트폴리오를 늘리는 '횡적 성장'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넥슨게임즈의 '퍼스트 디센던트'는 이 과정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타이틀이다. 서비스 시점에서 메타크리틱 점수 60점대라는, PD 본인도 자학적 개그로 써먹을 만한 점수를 받았음에도 퍼스트 디센던트는 꾸준히 서비스를 이어갔으며, 1년 반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활발히 업데이트를 이어가고 있다. 공식적인 수치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최근까지도 업데이트에 따른 유저 증가세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현 시점까지 누적 매출이 기대치에 미쳤냐, 그렇지 않냐와는 관계 없이 장기 서비스를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는 뜻이며, 갈수록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퍼스트 디센던트'와 함께 주목받은 점이 바로 '스팀' 진출과 콘솔 동반이다.
넥슨은 이제 '넥슨 플레이'만을 중심으로 두지 않고, 글로벌 기준에 따라 스팀과도 발을 맞추고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던전앤파이터 IP의 본격적인 확장이라 볼 수 있는 '퍼스트 버서커: 카잔(이하 카잔)'이다. '카잔'은 그간 넥슨이 걸어오던 길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게임인데, 성과를 말하자면 '성공적인 도어노킹'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판매량이 정확히 발표되진 않았지만, 1백 만 장 이상의 판매고는 거둔 것으로 분석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서구권 게임 시장에 분명한 인상과 던전앤파이터 IP에 대한 인식을 남겼다. 카잔 그 자체로 시장을 때려부수고 들어가 트로피를 들어올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넥슨은 카잔을 제작하고 출시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유, 무형의 데이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시도를 할 만한 경로를 개척해냈다. 시장의 문을 뚫어내는 공성추로서는 충분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방이라 할 수 있는 '아크 레이더스'가 있다. 넥슨의 4분기 매출, 그리고 연간 매출이 기존에 설정한 가이던스를 넘어간다면 아마 '아크 레이더스'의 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크 레이더스의 흥행세는 엄청났다. 11월이라는 출시 시기가 아쉬웠을 정도로 말이다.
'아크 레이더스'가 넥슨의 새로운 기둥이 되어가는 과정의 뒤에는 '믿음'이 있었다. 기자는 실제로 출시 직전에 개발사인 엠바크 스튜디오를 방문해 이야기를 나눈 바 있는데, 넥슨은 엠바크 스튜디오의 개발 과정을 지원했을 뿐, 그들의 창작권을 침해하지 않았다.
이는 상당히 모험적인 결정인데, 의외로 국내 뿐만 아니라 서구권 게임 시장에서도 퍼블리셔나 모회사의 입김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개발사의 잠재력을 믿고 기다릴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넥슨이 굉장히 올바르고 모범적인 형태로 IP를 확보해나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잘 해왔던 것'을 더 잘하기 위해
넥슨의 변화는 단순히 '확장'이라는 키워드만으로 정의하긴 부족하다. 애초에 확장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닌 건 맞다. 두 팔을 활짝 벌려 더 큰 것을 안으려면 일단 팔이 길어야 하듯, 충분히 내실이 쌓여 있어야 확장도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이 된다. 무리한 사세확장으로 위기에 빠진 기업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그저 확장만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체질 개선'이나 '새로운 전략'이라 부르지 않는다. 종적, 횡적 성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지만, 넥슨은 그 이상으로 더 다양한 시도와 모험을 함께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라고 할 수 있다.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는 개발중인 블록체인 MMORPG인 '메이플스토리N'을 포함한 메이플스토리 IP의 통합 플랫폼인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블록체인 게임 생태계와는 방향이 상당히 다르다. 기존 게임들이 블록체인 망 위에 게임을 얹는 형태였다면,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는 '메이플스토리'라는 IP의 운영 방식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재설계하는 시도에 가깝다.

일종의 실험이다. 넥슨 측에서도 아직 이와 관련해 수익성을 거론한 적은 없으며, 그저 중장기 IP 확장 전략의 일환으로만 소개했다. 그리고 이 말은, 이미 20년이 넘은 IP를 계속해서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보다 근본적인 부분부터 수정하는 실험을 해나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크게 보면 '종적 성장'의 일환이겠지만, 단순히 같은 IP에서 신작과 업데이트를 이어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접근이라 볼 수 있다.
별도 법인으로 분리된 민트로켓에서 시작해 다시 넥슨의 품으로 돌아온 '낙원: 라스트 파라다이스'나 최근 화제가 되었던 '우치 더 웨이페어러'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의 걸음이다. 이를 포함한 신규 프로젝트인 '프로젝트 DX'이나 '프로젝트 RX'모두 공통점이 있는데, 국내보다는 글로벌 기준에 맞춘 정서의 게임들이라는 점이다.

현 시점, 게이머들의 정서는 글로벌에 상당히 맞닿아있지만, 여전히 업계 내에서는 국내 게이머들과 글로벌 게이머를 구분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세계 권역 별로 게임 플레이 및 소비 패턴은 상당히 다르며, 국내 게임 시장은 분명하게 차별화되는 특징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넥슨은 이미 잡고 있는 내수 시장이 아닌, 더 먼 곳을 바라보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해외 매출 비중이 늘어서라기엔, 아직도 국내 매출이 과반 이상인 넥슨이다. 이미 먹고 있는 음식을 더 먹기보단, 새로운 식탁을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Next Station은 어디인가?
2025년, 넥슨은 더 없이 좋은 한 해를 보냈다. 작년에 발표한 성장 전략은 블러핑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그 실행 과정과 성과를 보여주었으며, 숫자가 이를 증명했다. 물론, 넥슨 입장에서는 늘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 간, 넥슨 또한 그럴싸한 실패를 겪었고, 몇몇 타이틀은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서비스가 종료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표는 꾸준히 우상향을 그렸고 이제 '5조 원'이라는 하나의 타이틀을 눈 앞에 두고 있다. 2024년은 가까스로 4조 원을 넘기고 마무리되었지만, 올 해는 이미 4조 원은 진작 돌파했다는 여론이 우세이며, 이제 5조 원이라는, 게임 업계 사상 누구도 발을 딛지 못한 미답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정헌 대표가 천명한 2027년의 매출 7,500억 엔에 닿을 수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지금의 기세가 더 지속되리라는 건 꽤 희망적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아크 레이더스의 성과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이고, 장기적으로는 앞서 말한 수많은 신작 외에도 '던전앤파이터: 아라드'나 '프로젝트 오버킬' 같은 기존 IP의 확장도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이미 증명된 '종적, 횡적 성장'의 과정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진다는 뜻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넥슨이라는 기업이 이제 몇 번의 실패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이 정도 이 정도 체급이면 휘청이거나 넘어질지언정, 쓰러지진 않을 정도는 된다. 30년을 이어온 '넥슨'이 이제 다음 30년을 바라볼 준비를 마친 셈이다.
그리고, 관건은 2027년 이후, 누구도 밟지 못한 그 곳에 선 넥슨이 무엇을 바라보는가이다. 지난 3분기 실적발표에서, 이정헌 대표는 담백하게 '핵심 프랜차이즈와 신규 IP 모두의 성장에 가속도를 높일 계획'이라 말했다. 앞서 말한 2027년까지는 지금 이어가고 있는 이 확장 전략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의 목표 매출인 7,500억 엔을 달성하면 넥슨의 입지는 글로벌에서도 공룡이 된다. 범접할 수 없는 덩치의 텐센트나 소니 정도는 어렵겠지만, '테이크투'나 '밸브', 'EA'에는 어느 정도 비벼볼 수 있는 체급을 갖추게 된다. '국내 톱'에서 나아가 세계에서도 인정할 급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이정헌 대표의 '공언(公言)'이 '공언(空言)'으로만 남을 가능성도 없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적어도 올 해는 증명했다. 지금, 넥슨의 날씨는 분명할 정도로 '매우 맑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