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AI가 가져온 압도적인 생산성을 인정하면서도, 결과물의 완성도는 결국 인간의 '안목'과 '전문성'에 달려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단순 반복 작업은 사라지겠지만, 좋은 것을 골라내는 '평가자'로서의 역량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단순 노동에서 해방... AI로 '타협' 없는 콘텐츠 구현이 가능해져

개발자들이 현업에서 체감하는 AI의 가장 큰 효용은 '물리적 한계의 극복'이었다. 전유진 시나리오 기획자는 과거 리소스 문제로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했던 경험을 상세히 털어놓으며 AI가 가져올 변화를 설명했다. 그는 과거 새로운 마을을 기획할 때, 마을의 생동감을 위해 30명 이상의 NPC를 배치하고 싶어도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다고 회상했다. 각 캐릭터의 대사를 작성하고 스크립트를 연결하는 물리적인 시간 부족으로 인해, 결국 12명 수준으로 규모를 축소하는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AI가 단순 대사와 기본적인 행동 패턴 생성을 보조해 줌으로써, 기획자가 의도했던 북적이고 풍성한 마을을 타협 없이 온전하게 구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강조했다.
최가운 프로그래머 역시 코딩 보조 도구인 코파일럿(Copilot)의 도입 효과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개발자가 머릿속에 명확한 설계도(Blueprint)만 가지고 있다면, 코드를 타이핑하는 과정에서 AI가 의도를 파악해 미리 코드를 제안한다고 설명했다. 이때 탭(Tab) 키를 한 번 누르는 것만으로 복잡한 코드가 완성되는 경험은 단순한 시간 단축을 넘어선 생산성의 혁명과 같다고 덧붙였다.
이는 개발자가 오타를 수정하거나 반복적인 구문을 작성하는 데 쏟았던 에너지를 아껴, 더 창의적이고 구조적인 문제 해결과 콘텐츠의 질적 향상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맥은 이해 못 하는 AI... '의도'와 '맥락'은 인간의 영역
하지만 AI의 결과물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통계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을 뿐, 게임 세계관의 깊은 맥락과 기획자의 숨은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유진 기획자는 캐릭터에게 '새우 알레르기가 있다'는 구체적인 설정을 입력했음에도, AI가 문맥을 무시하고 "와, 새우 맛있겠다"라는 대사를 생성했던 '할루시네이션(환각)' 사례를 들었다. 일상적인 대화라면 웃고 넘길 수 있지만, 정교한 설정과 세계관의 일관성이 생명인 게임(RPG)에서는 이러한 오류가 몰입을 해치는 치명적인 버그가 될 수 있다. 결국 AI가 생성한 결과물이 세계관 내에서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는지 검증하고, 캐릭터의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아트 영역에서도 비슷한 한계가 지적되었다. 김용남 테크니컬 아티스트(TA)는 AI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이미지는 매우 뛰어난 퀄리티로 생성하지만, 특정 게임 스튜디오만의 독창적인 화풍이나 프로젝트의 고유한 기획 의도를 완벽히 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AI가 70% 정도의 밑그림이나 시안을 빠르게 만들어줄 수는 있어도, 나머지 30%를 리터칭하고 수정하여 게임의 스타일(Edge)을 완성하는 과정은 숙련된 아티스트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술보다 중요한 '안목'... AI 지휘하는 '평가자'의 시대

참석자들은 미래 개발자의 핵심 역량이 '제작(Crafting)'에서 '평가(Evaluation)'로 이동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AI는 사용자의 수준과 질문의 깊이에 맞춰 답변하는 '거울' 같은 특성이 있어, 질문하는 사람이 전문가일수록 더 수준 높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초보자가 질문하면 AI도 일반적인 답변을 내놓지만, 전문가가 전문 용어와 맥락을 섞어 질문하면 AI 또한 전문적인 코드를 내놓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AI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판단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평가자'가 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넥슨 AI 엔지니어 팀장은 AI가 쏟아내는 수많은 결과물 중에서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일치하는 것을 골라내고,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이를 바로잡아 지휘하는 능력은 결국 게임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의 깊은 지식과 기본기에서 나온다고 분석했다.
최가운 프로그래머 또한 개발자 본연의 '주관'과 '통찰력'을 강조했다. 그는 명확한 주관 없이 AI에게 의존할 경우, AI가 제시하는 그럴듯한 코드에 휩쓸려 원래 의도와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AI는 초보자를 전문가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도구가 아니라, 이미 기본기를 갖춘 전문가를 더 효율적이고 강력한 '총괄 디렉터'로 승격시켜 주는 파트너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견해다.
개발 리스크 감소됐으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대담의 마지막은 AI가 가져올 산업 구조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으로 채워졌다. 과거에는 막대한 개발 비용과 인력이 투입되는 게임 산업의 특성상,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려워 보장된 흥행 공식만을 따르는 보수적인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AI 도입으로 개발 리소스와 비용이 줄어든다면, 실패에 대한 부담도 그만큼 낮아지게 된다.
진행자 궤도는 이를 사진기의 발명 이후 등장한 '인상파' 화가들에 비유하며,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사실적 묘사에서 해방시켜 새로운 예술 사조를 낳았듯 게임 또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과거 자본의 논리 때문에 100명이 반대하는 게임은 기획 단계에서 폐기되었지만, 비용 효율이 극대화된 AI 시대에는 '천 명이 반대하는 기괴하고 실험적인 게임'도 과감히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50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저비용 고효율 환경이 조성될 때, 기존의 문법을 파괴하는 진정한 혁신작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술의 발전이 역설적으로 인간 고유의 상상력과 선택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