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우디가 거절한 ‘IOC의 손’, 굳이 우리가 잡아야 할까

칼럼 | 김병호 기자 |


▲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관한 ‘2023 올림픽 e스포츠 시리즈’(출처: IOC)

대한체육회가 ‘올림픽 e스포츠 게임즈(OEG)’ 유치를 위한 실무단(워킹그룹)을 띄웠다. 정부의 관심과 체육회의 의지가 결합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물론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 국제 흐름을 주도하겠다는 포부는 높이 살 만하다. 단, 우리가 쥐려는 것이 ‘알맹이’인지, 아니면 ‘껍데기’인지는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우려의 근거는 IOC가 지난 수년 e스포츠를 대하며 남긴 뚜렷한 ‘실패의 궤적’에 있다. IOC는 올림픽의 노쇠화를 막기 위해 ‘올림픽 버추얼 시리즈’ 등을 시도했으나, 게이머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채 빈축만 샀다.

실무단이 직시해야 할 대목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손절’이다. 오일머니를 앞세워 e스포츠 패권국을 노리는 사우디가 왜 ‘올림픽’이라는 화려한 간판을 마다하고 독자적인 ‘e스포츠 월드컵(EWC)’으로 선회했을까?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주도권’이다. IOC e스포츠 담당자들을 취재하며 느꼈던 건, 그들이 e스포츠 생태계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면서 ‘올림픽’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만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었다. 실질적인 자본과 실행력을 가진 사우디 입장에서, 콧대 높은 IOC의 통제를 받느니 독자 노선을 걷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결국 사우디가 걷어찬 그 카드가 돌고 돌아 한국의 테이블 위에 놓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e스포츠는 경기장 건설 비용이 안 드니 적자 위험이 적다"며 안도한다. 하지만 진입 장벽이 낮다고 해서 덥석 무는 순간, ‘개최’라는 타이틀만 남고 실속은 IOC가 챙겨가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위험이 크다.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인프라와 노하우가 정당한 대우를 받느냐의 문제다.

다행히 내부에서도 경계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국회 토론회에서 농심 레드포스 오지환 대표가 “사우디가 독자 대회를 성공시킨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며 명분보다 실리를 강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실무단 역시 이 지적을 충분히 고려했을 거라 믿는다.

IOC의 권위에 눌려 끌려다니는 유치는 의미가 없다. 우리의 경험과 노하우를 제공하는 만큼, 확실한 지분을 챙기고 국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사우디가 왜 IOC와 헤어질 결심을 했는지, 그 냉철한 셈법을 철저히 복기해야 한다. ‘올림픽’이라는 감투에 취하기엔, 한국 e스포츠의 가치가 너무나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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